아나운서는 왜 어려운 발음 연습을 할까?

잰말놀이

by 말하는 즐거움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틀리지 않고 읽기 미션을 했는데요.

그 때, 주어진 문장이 '어려운 발음 문장'이었습니다.




저기 저 뜀틀이 내가 뛸 뜀틀인가 내가 안 뛸 뜀틀인가
간장공장 공장장은 강공장장이고, 된장 공장 공장장은 공공장장이다
고려고 교복은 고급 교복이고, 고려고 교복은 고급 원단을 사용했다.
이 분은 백 법학박사이고, 저 분은 백 법학박사이다.




눈으로 읽을 땐 크게 어려운 발음은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이 미션을 수행하는 연예인들은 자꾸 틀리면서 읽어요.


'저걸 왜 못해?'하면서 나도 같이 소리내어 읽어봅니다.


아...! 생각만큼 쉽지 않습니다.


'뛸 뜀틀'이 '띰틀'처럼 발음하게 되고, '고려고 교복'을 발음할 때는 입술 굳은 것 같이 느껴집니다.




'익숙하지 않은 문장이라 그래. 2번짼 더 잘 읽을거야'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천천히 또박또박 읽어봅니다.

그런데, 역시나 이번에도 마음 같지 않습니다.

천천히 읽어도, 빨리 읽어도 발음이 안 되기는 마찬가집니다.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잘 안 되니 답답합니다.

그러다, 문득 궁금해집니다.


'이 문장은 왜 만든거야?'

'진짜 이 문장들 잘 읽으면 진짜 발음이 좋아지나?'

'아나운서들은 한 번도 안 틀리면서 읽는 거 맞아?'






먼저 궁금증에 대한 답을 드리자면,


이 문장들은 발음 훈련을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이 문장을 잘 읽으면, 정확하고 또렷하게 발음하게 됩니다.

아나운서들은 한 번도 안 틀리면서 이 문장들을 읽습니다.

아나운서들은 아나운서 준비생 시절부터 이 문장 읽기 훈련을 합니다.



아나운서나 방송인들에게 정확한 발음은 필수입니다.


참취나물, 시립교향악단, 한국식물병리학회, 프라야 마노빠 니띠타다(태국 초대 총리 이름)와 같은 글자를 어렵다고 대충 발음할 수 없습니다. 특히 단체나 사람 이름을 더더욱 잘못 발음하면 안 됩니다. 라디오에 사연을 보냈는데, 진행자가 내 이름을 틀리면서 읽으면 참 속상할 겁니다.


그래서, 방송인이라면 어떤 발음이 주어져도 정확하게 발음해야 하는데요.

이를 위해 발음 훈련을 합니다.




사실, 이 문장들은 간단하고 쉬워보이지만 과학적인 원리가 숨어 있습니다.


발음을 잘하는 사람은 입술, 턱, 혀, 뺨 근육을 유연하면서도 정확하게 움직입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발음 '적당히' 근육을 움직입니다.

'뜀틀'보다는 '띰틀'이 발음하기 쉽고, '한강'보다는 '항강'이 더 발음하기 편합니다.


그래서 적당히 입술과 턱, 혀를 움직이면서 말하는데요.

하지만, 회의, 미팅, 전화업무, 발표 등의 자리에서는 발음을 대충하면 '성의 없는 말투'로 인식됩니다.

자신감 없어 보이기도 하구요.

잘 안 들려요... 같은 피드백을 받기도 합니다.

목소리 크기가 아니라 발음이 명료하지 않아서 받는 피드백입니다.



그 때 발음에 신경써서 또박또박 말하면 이상합니다.

속도는 느려지고, 입모양은 어색하고..

그러니 평소에 연습해 두는 겁니다.

어려운 발음 문장으로요.






이 어려운 발음 문장을 읽으면 2가지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1. 근육 강화


간장공장 공장장... 처럼 ㄱ,ㅈ 자음이 반복되는 문장은 혀 근육이 미세하고 빠르게 움직여야 합니다. ㄱ은 혀의 뒷부분이 움직이고, ㅈ은 혀의 앞 면이 입 천장에 붙어야 하거든요. 만약 입술이나 혀 근육이 잘 발달되지 않으면 빠르고 자연스럽게 움직이기 어려워요. 그래서 이 문장들을 읽으면서 혀 근육의 힘을 길러주는 겁니다.



2. 유연성 확보


발음을 잘 하려면 입술과 턱, 혀 근육이 유연하게 움직여야 합니다. 발음이 잘 들리는 사람들의 입모양은 자연스럽잖아요. 유연하게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입술을 모았다 펼쳐야 하는 단어 '고려고'를 발음할 때 '려'에서 입을 벌리지 않으면 답답하고 둔탁한 소리가 나구요. 뒤로 갈수록 발음이 더 안 된다고 느껴질 거예요. 따라서 어려운 발음 문장들은 평소 쓰지 않는 범위까지 근육을 쓰게 만들어 어떤 발음을 하더라도 입술과 혀가 굳지 않고 유연하게 대처하도록 만들어 줍니다.






테니스, 발레, 골프 등의 운동을 잘하려면 근력과 유연성 모두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근육을 정확하게 사용했을 때 에너지 소모는 줄이면서 원하는 동작을 할 수 있게 되는데요.


발음도 운동입니다. 조음 기관의 근력과 유연성이 모두 필요해요. 근력이 없으면 힘없는 발음을 하게 되구요. 유연성이 부족하면 침이 고이고 둔탁한 발음을 하게 됩니다. 모두 전달력이 떨어져 듣는 사람을 피곤하게 만들어요.


어려운 발음 문장 읽기를 다른 말로 '잰말놀이'라고도 하는데요.

발음 연습이라기 보다 '놀이'라고 생각하면서 문장을 읽어보세요.



**어려운 발음 연습 문장


저기 있는 저 상장사가 새 상장사냐, 헌 상장사냐

들판의 들풀은 들쭉날쭉 들풀인가, 덜 삐쭉날쭉 들풀인가

박 법학박사님 댁 옆집 백 법학박사님

철수 책상 철책상

서울 특별시 특허허과가 허가과장 허과장

내가 그린 기린 그림은 잘 그린 기린 그림인가 잘 못 그린 기린 그림인가

앞집 뒷창살은 홑겹창살이고, 옆집 뒷창살은 겹홑창살이다.



천천히 읽다보면 근력이 붙고, 유연성이 생겨 '어?이 발음을 내가 왜 어려워했지?'라고 생각하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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