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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재 Aug 14. 2017

전라북도 전주, 너를 쓰다

더는 옛날의 정취를 느낄 수 없었던 전주에 대한 씁쓸한 기억을 쓰다.  


도시는 상업화를 피해 가지 못했다. 자진해서 받아들인 것인지, 시대의 흐름으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 것인지 알 길은 없었다. 조금씩 변해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안타까워할 뿐이었다. 그렇게 좋아하는 도시를 하나 잃었다. 서글픔에 마음이 울었다. 조용하게 걸었던 골목길의 정취가 사라졌다는 사실이 아파서.  


전라북도 전주. 버스표 예매가 완료되었다는 문자가 핸드폰을 처음 두드린 건 2010년이었다. 강아지가 감겨있던 눈을 뜨고 세상의 빛을 받아들이면서 성장해가듯이, 나 또한 국내 여행의 즐거움에 눈을 뜨며 세상을 접해가고 있던 때였다. 


우연히 전주에 사는 친구를 알게 되었고, 그 친구로 가이드 삼아 전주를 여행하기로 했다. 한옥마을을 시작으로 하여 경기전, 동물원, 오목대, 전주 객사, 전동 성당, 덕진 공원까지. 고수는 초짜에게 정해진 시간에 최고의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코스를 짰고, 초짜는 코스를 꽤 마음에 들어 했다. 


시작이었다. 누구나 알고 있는 진리를 몸소 깨달은 게. 이제는 '전주'라는 도시에 빠지지 않는 하나의 키워드가 된, '베테랑'에서였다. 고수는 고민 없이 초짜를 그곳으로 데리고 갔다. "베테랑이라니, 가게 이름 참 재미있다. 어디 얼마나 베테랑인가 맛 좀 볼까?" 생각보다 허름한 식당이었지만, 맛집은 원래 허름하다는 말이 통하는 곳이었다. 

초짜는 베테랑 칼국수를 먹으면서 앵무새처럼 반복되는 말만 했다. "역시! 음식은 전라도야!"라고. 저렴한 가격(당시에는 3,500원이었던 걸로 기억한다)과 고소한 국물 속 쫄깃한 면을 후루룩 흡입할 때마다 저절로 나오는 전라도 예찬이었다. 예찬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는데, 피날레는 풍년 제과의 초코파이가 장식을 해주었다. 


"나는 초코파이를 좋아하지 않는데."
"이거 한번 먹어봐, 네가 지금까지 먹어본 초코파이랑은 차원이 다르다고." 


TV에서 보면 아주머니, 아저씨가 친근한 목소리로 "에이 그러지 말고, 자 일단 한번 자셔봐~"라고 하는 장면을 심심치 않게 봐왔다. 순간 TV를 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그 친구는 능청스럽게 초코파이를 하나 건네주었다. 


바스락거리는 봉지 속에서 동그란 초코파이를 꺼내 한입 베어 물었다. 처음 든 생각은 '아, 안 먹었으면 정말 후회할 뻔했다.' 

초코파이를 좋아하지 않았던 건 마시멜로의 이중성이 영 별로였기 때문이었다.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게 쫄깃한 식감을 가졌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부드럽게 녹아내리려면 일관성 있게 녹아내려야지, 그 와중에 쫄깃쫄깃할 건 또 뭐람. 하지만 이건 좀 다르다고, 딸기잼이 초콜릿의 달콤함을 배가시켜주었다고 고수에게 짤막하지만, 진심을 담은 감상평을 전했다. 


그냥, 사람 사는 동네였다. 전주도.
베테랑 칼국수. 저렴하면서도 깊이있는 맛이 좋았다. 
하루의 마지막 일정을 덕진공원에서 음악분수와 함께 했다 



여름의 낮은 밤을 이겼다. 승자의 배려로 가로등 불빛 없이도 자연의 풍경을 볼 수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내가 여름을 좋아하는 이유다. 여름 특유의 가벼운 공기가 여행의 들뜬 마음을 한껏 끌어올려 주기 때문이다. 들뜬 마음은 낯선 곳을 놓치지 말고 담아내라고 했다. 나의 두 눈, 두 귀, 코, 입, 손과 발에 끊임없이 움직이라고 재촉을 멈추지 않았다. "다음은 어디로 가니?" 초짜는 고수에게 빨리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해달라고 보채었다. 여행에서 많이 담는 것만큼 중요한 건, 비워내는 것이라는 사실 몰랐던 시절이었다. 


역시, 고수는 고수였다. 초짜에게 하루를 낭만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는 코스가 있다며 이젠 조금 여유로워지자, 라고 했다. 


"자, 오늘의 마지막 코스야! 기대해도 좋아."


연꽃이 가득한 곳으로 나를 이끌었다. 덕진공원이라고 했다. 연꽃이라니, 꽤 낭만적이잖아. 거기다가 연못을 가득 채우고 있는 연꽃이라니. 소담한 멋이 좋았다. 그윽한 색감이 좋았다. 연'꽃'도 좋아하지만, 연'근'과 연'잎밥', 연'잎차'는 더욱 좋아하는 나였다. 연꽃이 가득한 연못 위를 걸었다. 연꽃을 바라보며 조용히 고백했다. 아주 많이, 정말 많이 너를 좋아하고 있다고. 너의 모든 걸 항상 함께하고 있다고. 


그때의 전주는 조용했고 고즈넉한 맛이 있었으며 여유로웠다. 친구는 "늙으면 다시 전주에 돌아와서 살 거야. 전주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살기 좋은 도시로 꼽혔대." 라며 고향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었다. 나 또한 동의했다. "그러게, 정말 그럴 것 같아. 좋은 곳이다, 여기." 


2011년에는 남부시장에 다녀왔었다. 문전성시 프로젝트로 청년들이 특색있는 장터를 만들어나갔다.
2010년에도, 2011년에도, 2012년에도 같은 모습이었다. 시간이 멈춘 듯 말이다. 
오목대에서 바라본 한옥마을. 



1박 2일 동안 행복했던 기억만을 안고 서울로 출발하는 버스를 탔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일상으로 돌아온 후, 다음 해인 2011년에 이어 2012년 여름에도 전주를 찾았다. 그게 끝이었다. 전주 여행 세 번째 만에 변해버린 전주와 마주해버렸던 나는 적잖은 실망을 하였다. 변화가 싫었던 게 아니다. 전주의 색깔을 찾아 특색있게 살렸다면 전주를 더욱 좋아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 눈에는 그렇지 않았다. 전주는 너무나 상업화가 되어 있었다. 누군가는 '먹방 여행'이라고 부를 만큼 맛있는 음식을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했지만, 내가 기억하는 그리고 내가 좋아했던 전주는 먹방의 도시라고 하기에는 아쉬운 도시였다. 

그곳에 두고 온 추억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은데, 단순히 먹방 여행의 도시로 불리는게 싫었다. 천천히, 느림의 미학이 참 잘 어울리는 도시라고 생각했는데. 


물론 여행에 있어 좋고 나쁨이란 없다. 개인의 취향에 따라 움직이게 마련이니까. 안타까운 건, 고유의 색을 지키지 못했다는 것이다. 지금도 전주를 떠올리면 헛헛하고 서글픈 마음이 앞선다.

나에게 전주는 손에 쥐면 손가락 사이로 추억이 빠져나갈까 봐 두 손을 고이 모아들고 있어야 하는 그런 애틋한 도시였다. 누군가에게 말할 때면 자연스레 입꼬리가 올라가게끔 만들어줬던 도시였다. 좋아하는 곳이라고, 꼭 한번 가보면 좋겠다고. 





상업화라는 이름으로 야금야금 갉아먹어 가는 누군가의 추억을 기억해주지 못함이 야속했다. 특색있던 국내 여행의 즐거움이 뭉개지는 것 같아 슬펐다. 때로는 사진 찍기에 예쁜 카페보다, 다듬어지지 않은,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기는 거리가 더욱 눈이 가는 법이다. 그게 전주를 특별히 아꼈던 이유였다. 


전주만이 갖고 있던 여유로움과 고즈넉함은 자취를 감추었다.

조용하던 길가는 가게들이 자리 잡았고,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10년이 채 되지 않은 일이지만, 전주는 너무 많은 변화를 겪었다. 이제는 내 사진과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는 고즈넉한 전주의 모습에 가슴 한편이 아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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