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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재 Dec 16. 2018

아이야, 나는 네 웃음소리가 좋다.

# 비눗방울.  [ 자코파네 , 폴란드 ]


분명히 투명한데 말이야, 그 안에 오묘한 빛깔을 모두 품고 있단 말이야. 세상을 가득 담고 있는 것 같은데, 어떻게 하늘을 자유롭게 날 수 있는 걸까?



어른이 되기 이전의, 어린이의 기억이 몽글몽글 만들어지고 있을 때, 그 속에는 비눗방울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학교 앞 문방구에는 다양한 종류의 비눗방울이 있었다. 기다랗거나 알 수 없는 캐릭터 모양의 통에 담겨 있었고, 동전 몇 개와 바꿀 수 있었다. 굳이 지폐가 없어도, 동전만으로도 문방구에서 장난감을 살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아, 집에서 직접 비눗방울을 만들기도 했다. 흔히 '퐁퐁'이라고 부르는 주방세제와 물, 액을 담을 통, 그리고 빨대만 있으면 준비 끝. 퐁퐁 약간에 물을 섞어 적당히 거품을 낼 만큼 조합을 한다. 물이 너무 많아도, 너무 적어도 안 된다. 적절한 수준의 농도를 맞추는 게 관건이다. 


빨대는 목 부분에 주름이 있는, 빨간 줄무늬가 길게 그려져 있던 큰 빨대여야 한다. 바나나 맛 항아리 우유에 꽂아 먹던 하얀색 얇은 빨대는 비눗방울을 만들기에는 너무 얇으니까. 빨대 한쪽 끝을 가위로 자른다. 5~6번 정도면 충분하다. 그리고는 바깥쪽으로 잘 접으면 완성이다.  




퐁퐁 물을 빨대 끝에 골고루 묻힌다. 되었다, 싶으면 이제 방울 구슬을 만들 차례다. 입에 빨대를 물었다면 집중력을 절대로 흩트려서는 안 된다. 숨을 내뱉어야 한다. 반드시. 들이마시면 어떻게 되냐고? 퐁퐁 물을 찔끔 마시는 거지. 퐁퐁 물을 맛본 적 있느냐고? 물론. 하지만 혼자만의 비밀이다, 절대로. 엄마에게 말했다가는 두 번 다시 비눗방울을 가지고 놀 수 없었을지도 모르니까. 


기대감에 부풀어 후- 하고 불어보지만 사실 생각처럼 잘 되지는 않는다. 여러 개가 한 번에 나오지 않아 별로 효과적이지도 않고. 노력은 가상하나 성과는 없는, 그런 순간이다. 결국 문구점으로 달려가고야 마는 것이다. 엄마에게 졸라 얻어낸 동전 몇 개를 가지고서. 가장 효과적이고 안전한 방법으로 결국 되돌아가고야 만다. 


그렇게 손에 얻은 비눗방울을 후-하고 불면 동그란 투명한 구슬이 뽕, 뽕, 뽕 하고 나오기도 하고 쭈루루룩 길게 늘어나 나오기도 했다. 아이의 꿈이, 아이의 소망이, 아이의 바람이. 그렇게 톡, 톡, 하늘로 날아가는 것이었다. 웃음을 실어 나르면서. 


골목골목을 누비며 친구들과 참 열심히 불고 다녔다. 하늘로 솟아 올라가는 비눗방울을 잡아보겠다고 깡충깡충 뛰면서 손을 뻗어 보기도 했다. 손이 닿자마자 톡, 하고 터져버리는 비눗방울을 누가 더 많이 잡는지 내기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언제나 웃음이 끊이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세상의 모든 것이 재미난 놀이터였던, 나의 기억, 그리고 우리의 기억이었다. 



유럽을 여행하며 비눗방울이 하나씩 날아 들어오는 때가 있었다. 길을 걷다가, 혹은 공원에 앉아 있다가. 어디서 불어오는지 시작을 찾아 두리번거리는 나였다. 처음엔 한두 개였다가, 대여섯 개였다가, 열 몇 개가 되고 셀 수 없을 만큼 많아져 결국 비눗방울이 시작되는 곳까지 가곤 했다.


그 주변엔 언제나 아이들이 있었다. 높은 톤의 아이 웃음소리가 까르르 울려 퍼졌다. 제각각의 목소리로 같은 감정을 표현하고 있었다. “나 지금 엄청 재미있어요! 저거 봐요! 같이 잡아보지 않을래요?” 

알아들을 수 없는 제 나라의 말로 떠들며 뛰어다니지만, 감정은 고스란히 묻어나온다. 자지러지게 뿜어져 나오는 웃음소리는 내 얼굴에도 환하게, 미소를 선물해주었다. 



신기한 건, 아이들만 하늘을 나는 구슬을 잡겠다고 뛰어다니는 게 아니란 것이다. 투명한 구슬을 만들어 내는 어른도 즐거워한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그를 웃게 만드는 건지, 자신이 만든 멋진 비눗방울이 웃게 만드는 건지는 알 수는 없지만. 비눗방울 근처에서는 모두가 웃고 있다. 웃음을 멈출 수 없는 마법이 걸린 어느 동화 속 이야기처럼, 비눗방울은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마법사일지도! 


어린 시절, 비눗방울을 가지고 놀던 나 역시도 마법에 걸렸었나 보다. 친구들과 신나게 뛰어놀던 내 모습이 떠올라 한참을 비눗방울 앞에서 머물렀다.




여행은 새로운 것을 보고 듣기 위해 떠나기도 하지만

기억되지 않았던, 너무나 사소해 무심결에 지나쳐버린,

나의 소중한 일부분을 보기 위함이기도 하다. 


지금의 내가 나의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는

과거의 이야기를 따뜻한 시선으로 살펴볼 수 있게 해주는 선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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