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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재 Dec 24. 2018

평범한 곳이 특별해질 수 있는 이유

# 밤바다. [ 여수 , 대한민국 ]



이 이야기는 픽션이다. 아무 근거 없는, 다만 특정 집단에 속했던 몇몇 사람들에게서만 전해지던, 그저 그런 픽션이다.  



‘여수 밤바다’라는 노래는 2012년 꽃피는 3월에 발표되었다. 같은 해 5월, 여수에서는 국가적인 행사, 여수세계박람회(이하 여수엑스포)가 3개월간 열렸다. 이를 위해 서울 용산역에서 여수 EXPO 역까지 KTX가 개통되어 3시간 30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게 되었다. 전국에서 관광객을 맞이할 준비를 하나씩 하고 있었다. 이제 ‘여수’라는 도시를 홍보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당시 유명했던 한 그룹에게 “여수를 소재로 한 노래를 써 달라”라고 의뢰를 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노래가 바로 ‘여수밤바다’라는 노래라고. 다시 말하지만, 픽션이다.



덕분에 당시 여수 밤바다를 거니는 수많은 젊은 청춘들의 핸드폰에서는 여수밤바다 노래가 흘러나왔다. 벤치에 앉아 바다에 흔들리는 불빛을 아련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여기서도 여수밤바다 저기서도 여수밤바다가 메들리처럼 들릴 정도였다.


서울에 있던 친구는 대체 여수 밤바다에 뭐가 있길래 그렇게들 호들갑이냐고 했다. 글쎄, 여수밤바다에 있던 건 뭐였을까?  








난 여수엑스포 운영요원으로 4개월을 일했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을 떠나서 살아본 적 없던 내가, 처음으로 서울이 아닌 다른 지방에서 일하고, 잠을 자고, 밥을 먹는 그런 나날들이었다. 도대체 여수 밤바다가 어떤 곳인지, 정말 가사처럼 낭만적인 곳인지, 매일매일 가보겠노라 다짐했다.


4월부터 8월까지 남도의 햇살은 상상보다 뜨거웠고 따가웠다. 흥미로운 건 날씨만 뜨거웠던 게 아니란 사실. 엑스포 내에서도 많은 커플이 탄생하고, 헤어지고를 반복하고 있었으니 한마디로 청춘들의 열기가 여수를 뜨겁게 달궜다, 식혔다, 를 반복하고 있었다.

노래에 무슨 약이라도 탔던 걸까, 청춘은 말 그대로 청춘이었던 걸까.  


나도 질세라 청춘사업에 합류했고, 그렇게 엑스포에서 남편을 만났다. 우리에게 여수는 애틋한 장소로 남았다. 엑스포는 끝났지만, 우리가 머물렀던 흔적은 그대로 남아있었기에.


여수 엑스포 랜드마크 하나. 스카이타워
여수 엑스포 랜드마크 둘. 빅오
엑스포에 있는 동안 평생 볼 불꽃놀이를 다 본 것 같다. 그만큼 자주, 참 화려하게 했었다.



그 후로 가끔, 여행으로 여수를 찾았다. 연애 때에도 결혼 후에도. 혼자서 때로는 둘이서. 여수 밤바다를 걸을 때는 꼭 여수밤바다 노래가 있어야 할 것만 같은 생각에 주섬주섬 핸드폰을 꺼냈다. 습관처럼. 그리고는 조용히 이야기했지, “아, 노래 진짜 잘 만들었어.”


모르긴 몰라도 여수 밤바다에 맺힌 사랑과 이별과 웃음과 눈물이 꽤 많으리라. 벌써 6년이 넘었으니, 그동안 쌓여진 이야기의 깊이를 가늠할 수나 있을까.


이렇게 써놓으니 여수 밤바다가 굉장히 특별한 장소인 것 같은가? 이를 어쩌나, 사실 ‘특별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만큼 특별한 게 있는 곳이 아닌데. 여타 유명세를 타고 있는 바다와 크게 다르지 않은데.


그저 화려한 조명을 뽐내는 돌산대교가 있고, 그 다리를 배경 삼아 예쁜 사진을 남길 수 있는 돌산 공원이 있다. 추우면 추운 대로 더우면 더운 대로 왁자지껄, 사람들의 소리는 사라지지 않는다. 돌산대교가 언제나 한결같은 모습으로 반갑게 맞이해주는 덕택이리라.


내가 처음 이곳에 왔던 6년 전 봄, 그때도 있던 기념탑이 6년이 지난 후에도 그대로 있다. 기념탑에 발이 달리지 않았으니 어디로 사라질 리 없지만, 한결같이 그 자리에 있다는 사실에 애잔함이 밀려오는 건 왜일까.


서울이 아닌 타지방에서 상경한 사람들이 다시 고향에 발을 디디고, 살포시 공기를 들이마셨을 때 느끼는 감정이 이런 감정인 걸까. 변한 건 나뿐이라는, 서글픈 진실 앞에서 너무 슬퍼하지 말라고, 변한다는 건 네가 자라난 만큼 옷이 맞지 않게 되는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따뜻하게 품어줄 수 있는 그런 공간인 걸까, 고향이라는 곳은.

그때도 지금도, 같은 모습으로 나를 반겨주고 있는 것 같은 착각. 우리 다시 왔어, 잘 지냈니. 라고 인사를 건네주면 받아줄 것 같은 그런 기분 좋은 착각.


돌산공원에서 바라본 돌산대교
돌산대교의 맞은편 뷰. 위의 사진과는 정반대의 위치에서.
종포해양공원에서 바라본 여수 밤바다.  정말로 특별할 것 없지만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소중할 장소.


여수 밤바다에서 만들었던 우리의 이야기, 감정, 그런 것들이 뒤섞여져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감정이 덧입혀지고. 그렇게 여수 밤바다의 특별함이 만들어졌으리라. 정말 특별하게 만드는 건 사람들의 눈물이고, 웃음이고, 이별이고, 사랑일 테니까. 





어둠이 깊이 내려앉아 적막함이 가득한 밤, 오랜만에 여수 밤바다 노래를 틀었다.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기타 선율이, 가사 하나하나가 마음 깊이 와닿는다. 뜨거웠던 여름날들이 자연스레 스쳐 지나간다. 마치 영화 속 장면들처럼.

 

나는 여수 밤바다에서 네 생각이 났다고, 보고 싶다는 말을 살짝 감춰두고 묻는, 뭐 하고 있냐는 평범한 말이, 너와 함께 걷고 싶다는 군더더기 없이 담백한 고백이, 마음을 설레게 만든다.
누군가의 사랑도 그렇게 시작되었으리라. 여수 밤바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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