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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재 Jan 01. 2019

여기, 울림이 깊은 마을.  

# 자연.  [ 할슈타트 , 오스트리아 ]

“뿌우우-”     


더러러러럴. 작은 배가 떠나고 듦에 따라 뿜어내는 소리에 호텔 방이 떨었다. 그 안에 있는 우리 둘은 잠시 후회라는 걸 했을지도 모른다. 비싼 돈 주고 예약한 호텔인데 이렇게 시끄럽다니. 괜히 선착장 앞으로 했나보다, 라고.     

 

앞선 관광 일정에 휴식이 필요할 적절한 타이밍이었기에 프라하에서부터 린츠를 거쳐 버스에 기차에 배까지. 온갖 교통수단을 다 섭렵하면서까지 여기 할슈타트까지 오지 않았나. 우리의 노고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배가 전해주는 떨림이 몇 번이고 반복되었다. 여전히 적응되지 않는 울림이었다.      



방에서 보이는 뷰, 문 앞에 바로 호수가 있었다. 선착장도 물론.  -photo by S.H.



“조금만 더 쉬다가 바깥에 나가보자.”     


당장에라도 뛰어나가고 싶었지만 마음 같지 않은 몸이었다. 고된 일정이었을 뿐더러 이상하게 이곳에서는 '빨빨거리'고 다닐 수 없을 것 같았다. 아니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 걸음을 빨리하기에 이 마을은 좁았다. 바쁘게 움직여 순식간에 다 봐버리고 나면 그 다음은? 맛있는 건 조금씩 아껴 먹을 테다, 그래야 오래오래 맛을 느낄 수 있으니까. 라는 심리였으리라. 여기에서만큼은 우린 게으른 거북이가 되기로 했다.     



할슈타트 마을에서 기차역까지 이어주는 배가 또다시 뿌우우우-하고 출발했다. 앞선 몇 번의 출발과 다르지 않은 소리였다. 그날의 마지막 배였다. 할슈타트에서 머물렀던 사람들을 데리고 나가는 마지막 배. 돌아오지 않는 배는 사람들이 데리고 온 소란스러움마저 깨끗하게 치우고 가버렸다. 마지막일 줄 알았으면 손이라도 흔들어줄걸. 오늘 하루 왔다 갔다 하느라 고생했어, 라고.      


더 이상 호텔 방을 울리는 떨림은 전해지지 않았다. 거짓말 같았다. 순식간에 변해버린 공간이. 서울에 있는 작은 우리 집, 방 한 칸에서만 느낄 수 있었던 깊은 적막감이 온 마을 전체에 짙게 깔렸다.     

조용한 곳에 와서야 내가 평소에 얼마나 시끄러운 곳에서 살아왔는지를 깨닫게 된다. 인공의 소리를 완벽하게 차단한 상황에 와서야 말이다.



 


“백조다!” 가볍게 뱉어낸 목소리가 마을에 울렸다. 하얗고 따뜻하고 보드라운 생명체가 유유히 호수 위를 떠다닐 뿐. 백조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인간이 있다면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르겠다.     


“거기요, 백조가 시끄럽다고 합니다. 해가 지고 밤이 오고 있으니, 집으로 돌아가 편안히 몸을 눕히고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여보랍니다. 입이 전하는 소리보다 더 의미있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거라네요.”      



4월 초, 아직 봄 기운이 완연히 퍼지지 않은 때.


백조 두 마리가 물살을 가르는 소리마저 들려올 정도가 되니, 세상의 소리보다 마음의 소리에 집중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듯 했다. 아, 오늘은 거북이가 되기로 한만큼 찬찬히 걸었던 것도 한 몫했을게다. 빨리 지나쳤다면 절대 깊게 보지 못했을 자연의 순간들을 충분히 음미할 수 있었으니까.

 

모두가 마음의 소리를 들은 걸까? 얼마 지나지 않아 각자의 호텔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물론 우리도. 정말 조용한 밤이었다. 어둠 속에서 호텔의 불빛만이 환하게 빛나고 있을 그런 밤이었다.      




아침 6시23분. 호텔 방에서 본 전경.


핸드폰 알람은 아직 울리지 않았다.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는 꽤 시끄러웠다. 7시도 되지 않은 이른 아침이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내며 침대에서 내려와 커다란 창문을 열었다. 와! 짧은 감탄사가 나왔다. 밤새 물안개가 호수 곁에 머물렀나 보다. 외롭지 말라고. 긴긴밤을 함께 보내자고 말이다. 서로에게 빛으로 남는 소중한 존재들.     

조용히,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시원한 공기가 코를 타고 들어온다. 습습한 물 냄새와 함께. 축축한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물을 한껏 머금은 습자지가 마을을 휘감고 있는 것 같았다. 


끊임없이 지저귀는 새소리가 낯설었다. 한국에서 아침에 새소리를 들어본 게 언제였더라, 하고 마지막 기억의 끈을 찾아 하나하나 되짚어 보다 보니, 초등학생 때까지 올라갔다. 아침마다 열린 창문 너머에서 시끄럽게 지저귀는 참새 소리가 있었다. 어찌나 짹짹, 하고 반복적으로 울어 재끼는지 결국 잠을 깨우고야 말았다.     


학교로 가는 길에 버려진 공터 같은 곳이 있었다. 지금은 요양원이 들어와 있지만 한동안 황무지 취급받던 곳이었다. 사람이 살지 않는 공간, 말라비틀어진 풀들 사이에서 나무 덩굴 사이에서, 참새들은 매일 아침을 짹짹거렸다. 여기는 우리의 땅이라고 시위라도 하듯이 인간이 없어서 행복하다는 듯이.      


인간이 자연을 야금야금 갉아먹으면서부터 자연은 인간에게 내주었던 품을 조금씩 거두어갔다.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던 자연을, 이제는 만나기 위해 찾아가야 하는 상황이 되었으니까.      



밤새 내려앉은 축축함이 그대로 전해졌다



그래서 나는, 할슈타트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조금의 불편함을 감수하는 대신 그들이 선택한 것은 자연이었으니까. 그리고 그 자연 속에서 마음을 돌볼 수 있는 시간을 누리고 있었을 테니까. 매일 아침 코를 적시는 물안개의 습습함을 만나면서 찌르르르르, 짹짹짹짹, 끊임없이 울어대는 새 소리를 들으면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그들의 삶이 부러웠다.


백조에게 내면의 소리를 듣는 방법을 물어보지 못한 채, 짧은 1박을 뒤로하고 할슈타트 기차역으로 가는 배에 몸을 실었다.      





뿌우우우-

내가 머물렀던 호텔 방은 더러러러러럴, 또 다시 울고 있을 테지. 잘 가라고 손을 흔들어주려나? 내가 마지막인 줄 모르고 해주지 못했던 그 인사를, 너는 수없이 많은 사람에게 해주었겠지. 안녕, 조심히 돌아가, 라고.     

            

할슈타트 기차역에서, 할슈타트에서의 마지막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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