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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재 Sep 04. 2016

역사를 잊지 않는 도시, 부다페스트

'글루미 선데이'에서 시작된 부다페스트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

당신을 잃느니 반쪽이라도 갖겠어

영화 '글루미 선데이(1999)'의 유명한 대사다. 나는 여행을 떠나기 전, 여행하고자 하는 도시를 배경으로 삼은 영화를 가능한 찾아서 보려고 한다. 영화 속에는 시대상, 분위기, 풍경 등이 담겨있어서 여행의 흥미도를 높여주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줄리아 로버츠와 휴 그랜트의 달달한 사랑이야기 '노팅힐'은 런던에서의 운명적인 사랑을 한 번쯤은 꿈꾸게 해주기도 한다. 런던 여행을 준비 중이라면 꼭 보고 가는 것을 추천한다.


로맨틱함이 가득 찬 노팅힐 같은 영화와는 달리, '글루미 선데이'는 제목에서 느낄 수 있듯이 슬픔과 가련함이 남는 영화였다. 그래서였을까? 영화를 보고 난 후의 부다페스트는 내게 짙은 남색과도 같은 느낌이었다. 영화는 부다페스트의 일상적인 풍경을 보여주기도 하고, 독일 나치의 무자비함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리고 거기에서 얽혀버린 세 남녀의 사랑과 질투에 눈이 먼 독일인 한스의 이야기다.


세체니 다리에서부터 주인공들의 운명은 바뀌었는지도 모르겠다. 세체니 다리 위에서 다뉴브 강으로 몸을 던졌던 독일인 한스를 유대인 자보가 구해준 그 순간부터 말이다. 영화를 보면서 나는 세 가지 생각이 들었다.


 자보, 일로나, 안드라시 이 세 명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한다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자보가 운영했던 '자보 레스토랑'에서 한스가 그토록 좋아했던 '비프 롤'을 먹어보고 싶다. 어떤 맛이길래 그 맛을 잊지 못해 오랜 시간이 흘러서도 다시 찾아왔을까?

 질투에 눈이 멀어 자보를 살려주겠다는 일로나와의 약속을 어긴 한스는 정말 나쁜 사람이다.


나는 마지막 생각이 머릿속을 자꾸 맴돈다. 자보가 수용소로 가는 기차를 타기 전, 목숨을 구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놓쳤을 때의 무덤덤한 듯하면서도 슬픈 표정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전쟁의 참담함을 떠올렸다. 유대인을 잔인하게 학살했던 나치 독일의 만행을 떠올렸다.  


후에 독일 여행기에서 다시 다루겠지만, 베를린에서 매우 인상 깊었던 곳 중에 하나인 '홀로코스트 추모관'에서 나는 가슴 아픔과 슬픔과 안타까움 같은 온갖 감정들이 뒤섞여 한동안 마음고생을 했다. 희생되었던 그들이 보고 싶어 했던 하늘은 어떤 하늘이었을까. 그들도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이고 친구였을텐데 뿔뿔이 흩어져 죽음을 맞이해야 했던 마음이 어떠했을까. 온갖 생각과 감정이 복잡하게 얽혀버렸다.


홀로코스트 추모관을 나오는 길. 그들은 뜨고 지는 해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었을까



인간이 도구를 사용하게 되면서부터 전쟁과 약탈은 함께 해왔다. 우리가 세계사와 국사 시간에 배웠던 크고 작은 수많은 전쟁들. 과거사의 전쟁은 뒤로 하고, 현대사의 커다란 사건인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을 나의 얕은 지식으로 공부를 하면서 들었던 생각은, '전쟁에는 합당한 명분이 있을 수 없다'는 것과 '헝가리는 피해국인 동시에 가해국이었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말이다.


그리고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전범국가라고 확실하게 단정 지을 수 있는 몇 개의 국가를 제외하고,  과연 '가해국'과 '피해국'의 경계를 명확하게 지을 수 있을 것인가? 에 대한 생각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리고 그 답은 아직까지도 명확하게 결론짓지 못했다.


헝가리는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의 사이에서 꽤나 복잡한 역사를 써온 국가였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시절, 사라예보 사건을 발단으로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독일 제국과 동맹국을 결성하여 1914년부터 1918년까지 4년 동안 전쟁을 치르며 수많은 목숨을 희생시켰으나 연합국에 패배하게 된다. 이에 트리아농 조약을 맺게 되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70%나 되는 영토를 주변국과 신생국에 내주게 되었다. 이후 이 영토를 되찾기 위해 독일과 함께 추축국으로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였다. 여기에는 나치 독일의 외력이 작용하였다고도 하나, 어찌 되었든 전쟁을 치르며 수많은 목숨을 앗아가는 일에 대한 책임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 나치 독일은 헝가리의 수많은 유대인을 학살했다. 그리고 나치에 협력하는 헝가리의 정당이 있었으니, 바로 '화살 십자당'이었다. 헝가리의 정당이 헝가리 사람을 죽음으로 내몰았다니. 이 부분에서 헝가리가 가해국인 동시에 피해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전쟁으로 인한 물자적인 피해도 많이 입었지만)


참혹했던 유대인 학살과 그들의 과오를 잊지 않기 위해 헝가리 사람들은 역사적인 장소를 재탄생시켰다. 바로 공산당의 비밀 경찰청으로 사용되던 건물을 '테러 하우스'라는 박물관으로 사람들에게 공개한 것이다. 이 곳은 나치 독일과 공산주의자들에게 희생된 사람들을 추모하는 공간이다.


'TERROR'라는 단어를 건물 꼭대기에 새겨두었다. 끔찍한 'TERROR' , 화살 십자당의 상징인 십자가, 공산당의 상징인 별을 누구나 싶게 볼 수 있도록 꼭대기에 설치한 것부터 철저한 반성의 시작같이 느껴졌다.


건물 외부에는 전쟁으로 희생된 사람들의 사진이 일렬로 붙어 있다. 모두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이었을 사람들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아려왔다. 테러 하우스에는 여러 가지 전시물들이 있지만, 인상 깊었던 것은 당시 공산당 비밀경찰들의 사진이 걸려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화살 십자당의 당수였던 살러시 페렌츠에 대한 내용도 빠트리지 않고 다루고 있다. 희생자들 뿐만 아니라, 가해자들의 사진도 함께 전시해 과오를 인정하고 반복하지 않기 위함이다.


나는 역사를 마주하려는 그들의 용기에 박수를 보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누군가한테는 어느 국가한테는, 잘못을 인정하고 진정으로 사과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항상 접해왔으니 말이다.


지하 전시실에서는 섬뜩함과 공포감마저 느껴질 정도기에, 편안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관람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님은 틀림없다. 하지만 그들이 처절하고 철저하게 반성하려는 과거의 잘못, 그리고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는 의미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희생자들의 인터뷰 영상을 심각하게 바라보던 어린 학생의 표정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어느 국가 학생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 학생은 살아있는 역사의 한 부분을 배우고 갔을 것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말이 있다. 그 역사가 자랑스러운 역사든, 부끄러운 역사의 일부분이든 피하지 않고 마주하려는 용기. 그것이 절실하게 필요한 요즘이 아닐까?





부다페스트 여행기, 다음 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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