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소 잔인하지만, 그게 현실이더라고요.
# 돈이 없어 살리지 못했던 그녀의 핏줄.
아주 오래전, 나의 할머니는, 우리나라가 경제발전을 이루기 훨씬 전 시대를 치열하게 살았던 그분은, 당신의 어린 핏덩이가 고열에 시달려 급히 병원으로 향했다고 했다. 당장 병원비를 낼 능력이 없어 진료를 거부당했고, 돈을 구하기 위해 지인 집을 방문해서 간신히 돈을 마련했다. 하지만 당신의 아이는, 살았으면 나에게는 큰이모가 되었을 그 아이는, 끝끝내 세상이 천지개벽할 정도의 엄청난 발전을 이루는 것을 보지 못한 채 할아버지의 품에 안겨 눈을 감았다고 했다.
“그래도 즈이 아버지 얼굴은 보려고 기다렸는지, 아버지 얼굴 보더니 푸르르륵, 숨을 내뱉고는 그렇게 가부렸어.”
# 부담스럽지 않을 리가 없잖아요?
보리를 반려하기 전까지는 그저 ‘돈이 없었던 시절에 생명을 살리지 못한 안타깝고 슬픈, 지나 가버린 옛이야기’에 불과했던 할머니의 과거가 어느새 머릿속 깊숙이 자리 잡아 ‘현재의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동물병원비는 보험 적용이 되지 않으니 온전히 병원에서 책정한 금액을 내야 하는데, 이 금액이 때로는 부담스러운 수준일 수 있다는 게 문제다. 입원하거나, 이상증세의 원인을 찾기 위해 다양한 검사를 할 때, 30만 원은 거뜬히 넘어가고 많게는 100만 원 이상도 들어가니 이 정도의 금액을 부담 없이 척척 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렇다고 검사를 하지 않는다거나 치료하지 않을 수 없으니, 예상치 못한 고액 앞에선 ‘신용카드’의 힘을 빌려 순간의 복잡함 심경을 넘어가는 것이다. (꾸준히 적금을 들어놓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작년 9월 중성화를 한 보리는 겸사겸사 치아 엑스레이를 찍었다. 평소 잇몸에 염증 소견이 있어 불안했기 때문이다. 결과는 절망적이었다. 치아가 저절로 녹는 ‘치아 흡수성 병변’ 극초기를 진단받았다. 아직 한 살도 채 되지 않았는데 벌써 이렇다니. 어찌나 속상하던지.
일단은 극초기이니 양치와 추가 약품으로 관리를 해주고 3개월마다 주기적으로 육안으로 본 후에 증상이 심해지면 발치하기로 했다. 대충 인터넷에 발치 비용을 검색해보니 치아 부위나 개수, 그리고 병원에 따라 다르지만 전발치 기준으로 300만 원대 정도였다.
300만 원이라니. 물론 일찍 발견했으니 예의주시하며 관리한다면 그 정도까지 가진 않겠지만 의료보험도 안 되고, 병원마다 천차만별인 병원비에서 돈이 많이 드는 건 사실이었다. 역시, 책임이라는 건 금전적인 부분이 어느 정도 뒷받침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 무시할 수 없는 너, 돈.
경제력이 전부는 아니지만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라는 걸, 아주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한 마리의 평생을 책임지기 위해 필요한 병원비로만 최소 1,000만 원 이상이라는 계산을 본 적이 있는데 헉, 할 금액이지만 곰곰이 따져보면 전혀 무리한 금액은 아니다. 위에 언급했듯이 동물병원에서 100만 원 결제하는 일이, 나이를 먹어갈수록 더욱 늘어날 테니 말이다. 물론 평균수명 15년 동안 건강한 아이라면 예외다. (건강한 개체도 예외, 건강하지 않은 개체도 모두 예외에 속한다. 중대 질병일 경우 3,000만 원 선이 드는 경우도 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순수한 ‘병원비’에 대한 내용이라는 것이다. 꾸준히 지출해야 하는 고정비용까지 책정하면 천정부지로 금액은 올라간다. 건사료·습식사료, 화장실 모래, 장난감 등을 적당한 선에서 해준다고 하더라도 평균 매달 15만 원 ~ 20만 원 선의 비용이 들어가더라. 아래 자료는 반려견, 반려묘의 월평균 양육비에 대한 자료이니 참고하면 좋을 듯하다. 하지만 기억하자, 평균은 말 그대로 평균일 뿐이다. 언제나 예외는 있기 마련이니 딱 이 금액만큼만 든다는 거네? 라는 우를 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단순히 월 10만 원으로 계산해도, 월 10만 원 X 12개월 = 120만 원 X 15년 = 1,800만 원이 나온다)
딩크족 부부로서 사람 아이에게 들어갈 돈을 보리에게 쓰고 있지만, 어느 달의 가계부를 보면 40만 원이 훌쩍 넘는 달도 있어 잘못 적은 게 있나, 되짚어보곤 한다. 그럴 리가. 모두 보리를 위해 소비한 내역이고, 정확하게 적은 숫자들의 합이었다.
어릴 때의 귀여운 모습, 현생의 내가 외롭다는 이유로 생명을 들이기에는 경제적인 부담이 절대 만만치 않다. 동물은 분명히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주고, 행복을 주지만 ‘돈’이라는 무시할 수 없는 엄청나게 무시무시한 존재를 절대 간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의 할머니가, 수십 년이 지나고 나서야 애써 담담히 말씀하시던, 당신께는 평생의 죄책감으로 남아있을, 나의 큰이모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작은 여자아이를 어쩔 수 없이 떠나보내야 했던 가슴 아픈 일을, 나는 가끔 떠올리며 보리를 바라본다. 나와는 상관없다고 여겨졌던 것들이 이제는 밀접하게 연관되어 날카롭게 다가온다. 모든 ‘책임’에는 돈이 필요하다는 씁쓸하지만 변하지 않는 진리를 곱씹는 오늘이, 조금은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