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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재 Apr 08. 2021

보리의 '이 능력'이 부러워졌습니다.

당신이 머무른 순간순간에 집중하세요, 보리처럼요!

  

# “고양이 세수하지 말고, 깨끗이 씻어!” 이 말은 틀렸다. 고양이가 얼마나 열심히 세수하는데!      


쓰윽- 쓰윽- 

쭙쭙쭙, 쭙쭙.      


다시 

쓰으윽- 쓰으윽-

쭙쭙, 쭙쭙쭙.      


침대에 누워있다가도, 책상에 앉아있다가도 이 소리가 들리면 나는 보리를 바라본다. 제 몸 구석구석을 꼼꼼하게 그루밍 할 때 내는 소리인데, 보고 있으면 신기하게도 마음이 편안해지기 때문이다. 쓰윽, 쓰윽, 혀로 털을 핥는 소리에 중독되어 버린 걸까. 털 결이 혓바닥의 놀림에 따라 이쪽저쪽으로 움직이고 녀석은 무아지경에 빠져버린 것만 같다. 저게 뭐라고 저렇게까지 열정적인 걸까 싶기도 하다.     


타이밍을 잘 맞춰 손을 가져다 대면 가끔 내 손도 핥아주는데, 까슬한 혓바닥의 감촉이 마냥 좋지는 않다. 혓바닥에 돋아있는 돌기가 맨살을 훑고 지나가니 따끔거릴 수밖엔. 그래도 “제 손까지 그루밍해주시다니, 감개무량하옵니다.”라는 마음으로 호시탐탐 손을 가져다 댈 기회만 엿보곤 한다.      


재밌는 건 그루밍할 때 표정이 누가 봐도 딱 “무아지경”에 푸-욱 빠진 표정이라는 것. 그 순간만큼은 제 몸단장보다 중요한 건 없다는 듯 녀석의 표정이 사뭇 진지하기까지 하니까. 정말이지 “지금 이 순간”을 BGM으로 깔아주고 싶다. 목덜미를 제외하고는 닿지 않는 부분이 없을 정도로 유연한 녀석은 매일매일, 하루에도 몇 번씩 그루밍한다. 온 마음을 다해.      



열심히 세수 중입니다



“고양이 세수하네!”라는 말은 더는 나쁜 뜻이 아니라, 칭찬으로 쓰여야 한다.

“너 정말 꼼꼼하게, 구석구석, 깨끗하게 잘 씻는구나!”라는 의미로 말이다.


그루밍에 정신없이 빠져 주변의 소리는 모두 묻혀버린 시간은, “지금”을 충실히 사는 녀석에겐 최고로 중요한 순간이다.


무아지경에 빠질 때까지, 매일 그루밍의 늪에 빠집니다.




# 사냥해 봤어요? 내가 바로 이 구역의 맹수랍니다.      


낚싯대로 사냥놀이를 할 때면, 진짜 사냥감이 아닌 걸 알 만도 한데 참 열정적으로 사냥감을 쫓는다. 야생에서 고양이들이 사냥감을 쫓듯이 집중해서. 보리는 3개월령에 어미가 떠나버려 구조했다는 아이였다. 과연 야생에서 사냥해 봤을지는 모르지만, 본능이라는 게 이런 때 나오나 싶기도 하다. 엉덩이를 씰룩쌜룩하며 뛰어나갈 에너지를 뒷다리에 모으고, 동공은 사냥감을 향해 동그랗게 커진다. 커다란 귀가 보일까 납작하게 눕힌 채로 사냥감을 향한 도약을 준비한다. 집사가 열심히 흔들어주는 가짜 사냥감임에도 그 순간만큼은 최선을 다한다.


사냥감 발견! 곧 발사합니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정말 ‘눈 깜짝 새’에 내 뒤에 있던 녀석은 내 앞에 와있다. 한번 설정한 목표물은 반드시 획득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주겠다는 듯이. 이리저리 날뛰었다가, 캣타워 뒤로 숨었다가 다시 슬그머니 나타나는 깃털을 주시하다가 사냥에 성공한 녀석은 입에 물고 위풍당당 거실부터 방까지 구석구석 걸어 다닌다.      

“내가 사냥했어요! 대단하죠? 잘 봐요, 내가 잡은 거예요!”      


장군이 승전고를 울리는 마냥 용맹하게 몇 번을 왔다 갔다 한 뒤에야 입에서 사냥감을 놓아준다. 다시 놀이를 시작하자는 신호다. 그렇게 10분 20분을 뛰어놀다 보면 지쳤는지 바닥에 드러누워 밥을 기다린다. 건사료를 오도독, 오도독 씹어먹는 보리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뿌듯함을 느낀다. 보리가 만족한 만큼, 나의 만족도도 올라간다. 부디 보리가 ‘사냥을 성공한 날은 자신감이 샘솟아! 기분이 좋아!’ 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숨어서 사냥감을 지켜보는 중이에요



순간에 몰입하여 그 순간을 온전히 즐기는 보리가 부럽다. 눈앞에서 약 올리듯 움직이는 사냥감을 쫓으며 잡았을 때의 쾌감을 만끽할 수 있는 보리가 부럽다.      


여든 살의 할머니도 세 살 먹은 손자·손녀에게 배울 게 있다고 했다. 인간은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는 의미도 있을 거고, 아무리 어린 존재라 하여도 다 배울 게 있으니 귀하게 여기라는 의미도 있을 거다. 보리와 함께 하다 보니, 저 말이 사람에게만 한정되진 않는다고 생각했다. 제게 주어진 매 순간에 몰입하여, 최상의 만족도를 이끌어내는 녀석의 놀라운 능력을 진심으로 부러워하게 되었다.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다는 말이 새삼 가깝게 다가오는 그런 날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가야 하는 미완성의 존재. 거기에 보리가 함께 하고 있으니, 우리 부부의 모습은 조금 더 멋지게 완성될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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