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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재 Apr 06. 2021

집 고양이 3개월 차, 점점 사람인 척을 합니다.

고양이의 편식, 그 지난하고 험난한 여정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 ‘편식 불변의 법칙’, 비껴가질 않네.

  

“어릴 때는 습식에 약을 타 줘도 설거지를 했는데요, 이젠 약 타면 귀신같이 알고 안 먹어요.”

“하하하, 원래 애들이 크면서 입맛이 까다로워져요.”     


한숨 섞인 나의 말에 수의사는 허허허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다고 손으로 주거나 숟가락으로 떠먹이지는 마시고요.”

“(속으로 뜨끔하며)아.. 네.”     


고백한다. 사실 밥 좀 먹으라고 손 위에 얹어준 적도 몇 번 있고, 티스푼으로 떠서 먹여준 적도 몇 번 있다. 아니, 안 먹는데 어떻게 합니까! 이렇게라도 먹여야 하는 거 아니냐고요?!      


고양이의 취향은 생각보다 확고하다. 인간의 눈으로 바라보면 큰 차이 없어 보이는, 비슷하게 생긴 장난감도 좋아하는 것과 좋아하지 않는 것을 명확히 구분 짓는다. 인간의 코에는 제법 먹을만한 냄새를 풍기는 습식 캔은 먹지 않고, 오히려 다소 역겹다는 표현을 할 만한 습식 캔은 순식간에 설거지해버리곤 한다. (고양이 습식 캔은 생각 외로 다양한 종류의 육류 및 어류를 사용해 생산되는데, 개중에는 냄새가 아주 지독한 브랜드도 몇 있다. 냄새를 맡는 순간 정말이지 나는, ‘있지도 않은 아이’를 임신한 마냥 헛구역질해대곤 했으니까)  




3개월령에 우리 집에 온 보리는, 집에 온 지 3~4개월 동안은 편식 없이 주는 대로 잘 먹었다. 오히려 너무 많이 먹어서 걱정스러웠을 정도. “길에서 구조된 아이들의 경우 처음엔 주는 족족 먹는 경우가 많다.”라는 수많은 경험담을 믿고 기다려야만 했다. 지금 먹는 한 끼를 다음엔 기약할 수 없음으로 먹을 수 있을 때 최대한 먹어두자는 길고양이의 생존본능에서 비롯된 슬픈 이야기를. 괜히 찡해지는 마음 한 칸, 그래도 적당히 먹여야지 굳센 마음 한 칸, 잘 먹으니 다행이라는 마음 한 칸. 그렇게 내 마음은 균형 있게 잘 배분되어 있었는데!       

그랬었는데! 불과 몇 달 전 만 해도 그랬었는데! 8개월령에 접어들며 슬슬 편식을 시작했다. 아, 제발 그러지 말아 주라.           


이만했을 때는, 주는 대로 다 잘 먹었었는데 말이야.



# 너도 너 닮은 딸 낳아서 키워봐!     


몸에 좋다는 거를 극구 사양하는 건 사람이나 고양이나 똑같다. 건강하지만 맛없는 음식보다 건강에 이롭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도 끊어낼 수 없는 가공식품을 먹는 이치랄까? 이 녀석도 자극적인 향과 맛의 습식을 줄 때면 기가 막히게 알아차리고 싹싹 비워 내지만 그 반대의 경우에는 거들떠보지 않을 때도 많다.      

그럴 때마다 참을 인을 가슴과 머리에 새기며 “제발 한 입만 더 먹어주라.”를 외치지만 자리를 쌩- 하고 피해버리기 일쑤다.


문득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TV 속 장면의 하나. 밥을 먹지 않겠노라 투정 부리는 아이를 쫓아다니며 한 숟가락씩 열심히 먹이려는 엄마의 처절한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 떠올랐다.     


“너 그럴 거면 밥 먹지 마!” 초강수를 두지만 결국 성공확률은 반반. 엄마의 반응에 당황한, 절반의 아이는 슬금슬금 다가와 밥을 먹지만 절반의 아이들은 엄마가 그러든지 말든지 ‘어머니 그것은 제 알 바가 아니오.’ 하면서 끝까지 밥 먹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내가 딱 그 상황이네. 편식하는 아이를 키우는 부모님의 마음이 십분 이해가 간다. 이래서 육아를 해보라고 하는 건가. 드라마 속 명대사가 있잖은가. “너도 너 닮은 딸 낳아서 키워봐!” 그러게나 말입니다. 비록 제가 낳은 자식은 아니지만, 이런 기분이셨군요. 저절로 간접 육아 체험을 또 하는 나를 발견하고는 피식 웃음이 난다.      


# 너희, 타고난 미식가의 후예였구나?


사막 출신인 녀석들에게 충분한 양의 자발적 음수를 기대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적정 물 섭취량은 1kg당 40~60mL. 그럼 우리 보리는 최소 250mL 정도를 마셔야 한다는 계산이 나오지만, 정말 턱도 없다. 우유 팩 하나만큼을 매일같이 마셔야 한다니. 난이도 최상급의 과제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습식을 시작한 것이다. 그것도 1살이 되기 전까지 다양한 습식을 먹여봐야 입맛이 굳어지지 않는다 하여, 골고루 먹였는데도 6개월 정도가 지나면서부터 녀석에게도 취향이라는 게 생겨버린 것 같다. 어릴 때는 뭐든 잘 먹었는데. 사람이랑 너무 똑같아서 눈물이 앞을 가리는군.      


애묘인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성분 1등 기호성 극악 1등>의 대표주자, 지위픽.



휴.      

아마 고양이 학교가 있다면, “자 여러분, 엄마가 준비해주신 밥은 편식하지 말고 먹도록 하세요. 다 여러분의 건강을 위해서 엄마가 심사숙고하고 싸주신 거랍니다.”라고 가르치는 고양이 선생님도 편식할지 모른다. 예를 들면 사료에 들어 있는 당근을 몰래 빼놓는다던가, 입에 맞지 않는 사료는 퉤, 하고 뱉어 내버린다던가. 아주 미식가가 따로 없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사람이 아니지만 어쩔 땐 사람보다 더 까다로운 존재를 키우는 것 같다. 사람인 척 사람이 아닌, 너라는 존재. 고양이. 어쩌겠는가, 이 또한 우리 부부의 선택인 것을. 먹지 않는 습식은 치우고 먹어주는 습식을 찾아 또다시 유목민 생활을 시작하는 수밖에는. 보리의 편식을 지켜볼 때마다 부모님의 노고가 문득 감사해지곤 한다. 한 열 살 때쯤 되면, 그땐 철이 좀 들려나? 하하하.       

                                                                

편식하는 고양이 보리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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