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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재 Mar 29. 2021

나와는 다른 종족을 키우기로 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바로, 우주최강 겁쟁이에 걱정쟁이거든요.


# 고백합니다.     


솔직하게 말해볼까.

‘사람’을 키워낼 자신이 없었다. 아니, 여전히 없다. 그러면 현재진행형으로 말해야 하나?

‘나는 지금도 사람을 키워낼 자신이 없는 중이다.’라고?


매우 어색한 문장이지만, 사실이다. 최소 20년. ‘미’성년자가 성년이 될 때까지 부모의 책임을 생각해보면 결코 가볍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으니까. 추위와 더위를 막아줄 어떠한 형태로든(자가든, 월세든, 전세든) 집이 있어야 하고, 굶기지 않고 밥을 먹여야 하고,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계절과 성장에 맞춰 옷도 입혀야 하고, 아프면 병원에서 치료를 받게 해줘야 하는, “의식주”, 정말 최소한의 책무를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주눅이 들었다.   

   

아주아주 현실적인 이야기 앞에서 상대방의 반응은 두 가지로 나뉘는데, 열에 일곱은 “그래도 낳으면 어떻게든 다 커.” “나는 세상에서 아기를 낳은 게 제일 잘한 일이라고 생각해.”라는 반응이고 나머지 셋은 “맞아, 부부끼리만 사는 것도 괜찮지.” 혹은 “내 인생에 더 초점을 맞췄으면 좋겠어.”라는 반응을 보이곤 한다.

나는 특히 “어떻게든 다 커.”라는 말에서 “어떻게든”이라는 단어에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는데, “어떻게”를 도대체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 키우기를 포기한 또 하나의 이유는 ‘간접 육아’에 이미 지쳐 버렸기 때문이었다. 육아에 전념하고 있는 부모님들께는 죄송스러운 말이지만, (간접 육아만으로 지친다는 말은 그분들께는 엄살처럼 보일 수도 있을  니까) 주변에서 육아의 적나라한 모습을 보고 듣다 보니, 어느새 육아의 고됨에 잠식되어 용감하게 도전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아이의 질문 세례에 나는 매번 친절하게 답해줄 자신이 없었으며,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 울고불고 떼를 쓰는 아이를 앞에 두고 침착하게 가질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해줄 자신이 없었다. 물론 나도 이와 같은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걸 부인하진 않지만 말이다.      


그래, 나는 우주최강 겁쟁이에 걱정쟁이임을 고백한다. 20년이라는 세월을 가늠할 수 없을 때면 내가 지나온 세월을 거꾸로 되짚어 본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20년을 거슬러 올라가면 말이지, 내가 중학생 때부터 서른의 중반에 접어들기까지의 긴 시간을 말이다,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 그 누군가가 소위 ‘밥벌이는 스스로 할 정도가 될 때까지’는 나의 희생이 필요한 헌신적이고 위대한 일을 말이야, 나는 결국 시작조차 하지 않기로 했음을 고백한다.           



# 그래서 결론은 말입니다.      


하나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성인 두 명이 사는 집은 때때로 적막하고, 때때로 재미가 없기도 하다.      


“우리 집은 너무 조용해.” (우리 집엔 텔레비전이 없다.)

“생활에 변화가 생겼으면 좋겠어. 고양이를 키워보는 건 어떨까?”

“고양이도 평균 15년 이상을 산다는데, 한번 데려오면 끝까지 책임져야 해.”

“맞아.”

“아프면 병원에 데려가야 하고, 보험이 안 되니 어쩔 땐 몇백씩 깨지기도 한데.”

“맞아.”      


어떤 때는 내가 동조하기도, 어떤 때는 남편이 동조하기도 하는 대화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우리는 고양이 입양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최소 15년을 책임져야 할 존재가 생긴다는 것은 우리에겐 엄청나게 큰일이었기에, 결론까지 도달하는데 2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과연 끝까지 책임질 수 있을까, 잘 돌봐줄 수 있을까. 고양이를 키우게 되면 장기간 여행은 할 수 없을 텐데.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고양이에게 할애해야 할 텐데. 동물은 의료 보험도 안 되는데 병원 한번 데려갈 때마다 돈도 많이 나올 텐데. 현실적인 고민 앞에서 오랫동안 할 수 있다, 없다는 갈림길에서 갈팡질팡하다가 우리 부부는 함께 할 가족으로 사람이 아닌, 고양이를 택했다.      


유기묘 입양 앱과 사이트를 하루에도 몇 번씩 들락날락 거렸다. 흔히 말하는 ‘묘연’을 찾기 위해서. 닿을 듯 닿지 않는 사진 속의 고양이들 중에서, 드디어 가족이 될 노란색 치즈 고양이와 인연이 닿았다. 2020년 2월, 아직 봄이 오지 않았던 어느 날, 우리 집에 사람 두 명 외에 살아 움직이는 존재가 생긴 것이다.      

이름은 보리, 3개월령의 작은 고양이가 이제부터 새로운 가족이 되기로 했다.



2020년 2월의 어느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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