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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재 Sep 07. 2016

처음 뵙겠습니다, 크라쿠프 씨!

헝가리를 떠나 폴란드로 이동하는 여정이 담긴 이야기

아! 배 아파! 어지럽기도 하고. 왜 하필 오늘 이러는 거야!!


새벽 4시 40분. 부다페스트의 새벽이 밝아왔다. 4월 14일, 이 날은 헤어짐의 날이자, 새로운 만남의 날이었다. 3주 동안 함께 여행한 동생이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이었고, 나는 혼자서 새로운 여행지 폴란드로 떠나는 날이었다. 폴란드에 같이 가자는 나의 말에 동생은 "폴란드는 미지의 세계 느낌이야. 그래서 좀 두렵기도 하고."라며 결국 부다페스트에서 출발하는 인천행 항공권을 샀다.


사실 '폴란드'라는 나라가 주는 이미지는 나에게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차갑고, 어둡고, 아직은 많이 알려지지 않은 낯선 국가였다. 적어도 폴란드를 여행하기 전까지는. 그렇게 그녀는 한국으로 돌아갈 짐을 챙겼고, 나는 폴란드 크라쿠프로 향할 짐을 챙기고 잠이 들었다.


역시 사람은 하지 않던 행동을 갑자기 하면 탈이 나게 마련인가 보다. 원래 야식을 먹지 않는데 그날따라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유람선을 타고 돌아오는 길에 버거킹에 들러 버거 세트를 하나 사 왔다. 심지어 "출출한데 우리 뭐라도 사가지고 들어가서 먹을까?"라고 먼저 말을 꺼낸 건 나였다. 그렇게 우린 버거 세트와 함께 뿌듯함을 가지고 호텔로 돌아와 맛있게 먹고 잠이 들었던 것이다. "밤에 먹는 햄버거가 이렇게 맛있었다니!"라며 마치 새로운 경험을 한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면서.


새벽에 눈을 뜨고 세수를 하고, 화장도 하고 옷을 갈아입었을 때 까지만 해도 괜찮았었다. 그런데 갑자기 눈 앞이 밝아졌다. 순간 앞이 보이지 않았다. 속이 메스껍기 시작했고, 구토를 할 것만 같았다. '어랏? 뭔가 이상하다. 뭐가 문제지?' 그때 밤늦게 먹은 햄버거가 생각났다. 이유는 그거밖에 없을 것 같았다. 급한 대로 소화제를 두 알 꺼내 먹었다. 제발 진정되기를 바라면서.


하지만 증상은 더욱 심해졌다. 화장실을 들락날락했지만,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차라리 구토라도 시원하게 하면 괜찮을 것 같은데,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크라쿠프행 버스는 부다페스트 네플리겟 버스터미널에서 6시 30분에 출발한다. 호텔은 켈레티 역 근처. 어제 호텔 직원에게 소요시간을 물어보니 보통 15-20분 정도 생각하면 된다고 했었다. 그래도 만약이라는 게 있으니까 5시 30분에는 나가야겠다,라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지금 이런 몸 상태라면 도저히 버스를 탈 수 없을 것 같았다. 무려 7시간이나 타고 가야 하는데? 말도 안 통하는데 중간에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떻게 하나?라는 걱정이 가장 먼저 들었다.


부다페스트에서 크라쿠프까지 하루 한 편 운행하는 유로라인 버스를 타지 못한다면 일이 복잡해질 것이었다.


책상에 앉아 만약 오늘 크라쿠프로 이동하지 못할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대책을 세우기 시작했다. 일단 호텔에 1박을 더 할 수 있는지를 물어볼까? 아니야 혼자서 호텔은 너무 비싸. 민박집을 알아보자. 내일 크라쿠프로 가는 버스 티켓도 자리가 있어야 하는데. 만약 자리가 없으면 어떻게 하지? 하루에 한 편 운행이던데. 하필 야간열차도 운행을 안 하고 말이야. 이러다가 폴란드 여행 제대로 못하는 거 아냐?


대책이라는 이름의 온갖 생각과 걱정이 머릿속에 엉켜버려서, 생각하는 것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몸이 아프니 올바른 판단이 서질 않았다. 결국 나는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종교라고는 어릴 때 할머니를 따라 절에 몇 번가고, 중학교 때 친구 따라 교회에 몇 번 간 게 전부인 내가 말이다. '제발 제 속이 가라앉아서 크라쿠프까지만 잘 이동할 수 있게 해주세요. 제발요. 제가 크라쿠프를 가야 바르샤바도 갈 수 있고, 그래야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지 않겠어요?'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내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셨는지 속이 신기하게도 가라앉는 듯했다. '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동생은 침대에서 잠들어있는 조용한 새벽에, 나 혼자 한바탕 소동을 치르고 호텔방을 나올 수 있었다.


전날 리셉션에 아침 도시락을 준비해줄 것과 터미널까지 가는 콜택시를 불러달라고 부탁해놓았었다. 잘 포장해준 도시락을 받아 들고 호텔 문을 나서니 콜택시가 한대 서있었다. "네플리겟 버스 터미널?"이라고 하니 맞단다. 캐리어를 싣고 택시를 탔다. 한시름 놓는가 싶었다. 어라, 근데 뭔가 또 이상하다? 택시의 미터기가 엄청난 속도로 올라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분명 호텔 직원은 한화로 5-6천 원 정도면 갈 수 있을 거라고 했었다. 만약이라는 게 또 있을 수 있으니까 만 원 정도면 충분히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포린트를 남겨놨었다. 나머지 만원 정도는 터미널에서 물이나 아니면 화장실을 갈 때 쓰기 위함이었고.

하지만 미터기는 이미 만 원어치를 넘어버린 지 오래였다. 목적지까지 얼마나 남아있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나는 또다시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돈이 모자라면 어떻게 하지? 유로화로 내도 받으려나? 아니면 카드라도 내야 하나? 카드 결제는 되는 택시인가?'

서울에서였으면 돈이 있는 만큼만 타고 "아저씨, 여기서 내려주세요. 돈이 모자라요"라고 말이나 할 수 있겠지만 여긴 부다페스트고 나는 지리에 무지한 여행자였다. 중간에 내리는 것이란 있을 수 없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걱정인형이 필요할 만큼 걱정이 내 머릿속을 채워가고 있을 때, 터미널처럼 생긴 큰 건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다행이었다. 미터기를 얼른 보니 2만 원 정도가 나왔다. 세상에. 10분 정도밖에 안 탔는데 2만 원 이라니. 한국에서도 6천 원이면 되는데. 그래, 새벽이라 할증이 붙었다고 치자. 그래도 2만 원은 너무 한 거 아냐?라는 생각에 "너무 비싸요"라고 하니, 바로 나오는 대답이 '원래 그 정도 나온다'였다. 일단 무사히 터미널에 도착했다는 안도감이 들었지만 기분이 영 찝찝했다.


'아! 나 지금 설마 택시 사기당한 거야?' 가이드북에서 읽었던 내용이 생각났다. 부다페스트는 택시 사기가 빈번한데, 가장 대표적인 게 미터기를 조작한단다. 그리고 영어로 항의를 하면 못 알아듣는 척한다는 내용이었다. 아.. 슬프지만 딱 들어맞는다. '나도 이렇게 당한 거구나'라는 판단이 확고하게 섰을 때, 미련 없이 돈을 냈다. 어차피 부다페스트를 떠나는 마당에 실랑이를 벌이고 싶지 않았고, 어찌 되었건 간에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으니까. 그렇게 나를 태워준 사기 택시는 내 돈 2만 원을 받고 훌쩍 떠나버렸다.



혼자 하는 여행, 타인과 함께 하는 여행. 어느 편이든 여행에는 개인의 취향이 반영된다. 그것을 존중하는 것이 현명한 여행 방법이 아닐까?


새벽 6시 30분에 출발하는 크라쿠프행 버스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하지만 동양인은 나 혼자뿐이었다. 부다페스트에서 크라쿠프로 가는 사람이 가끔 있다는데 오늘은 날이 아닌가 보네, 라며 일행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포기했다. 무려 7시간을 달리는 동안 혼자 있어야 한다는 사실에 지루함이 몰려왔다.


물론 혼자 여행하는 것이 두렵거나 낯선 것은 아니었다. 3년 전 처음 유럽여행을 했을 때도 나는 혼자 여행을 했다. 중간중간 다른 여행자들과 어울려 다니는 재미를 만끽하며 한 달을 보냈다. 이렇다 보니 국내 여행도 거의 혼자 다니는 편이었다. 말이 통하고, 글씨를 읽을 줄 아니 두려울 게 없었다.


무엇보다 회사를 다니며 누군가와 시간을 맞추어 여행을 간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기껏 계획한 여행인데 만약 한쪽이 취소를 하게 된다면? 여행을 포기할 순 없는 것 아닌가? 이런 이유로 나는 혼자 하는 여행에 익숙해져 갔고, 식사 메뉴 선택에서 제한이 있다는 것 빼고는 별다른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좋은 것을 보고 생생하게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크게 다가왔다. 여행이 끝난 뒤 사진을 보면서 여행지의 매력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에 만족을 하지 못했다. '지난' 이야기가 아니라, 현장에서 느꼈던 감정, 생각을 바로 나눌 수 있는 '지금의 살아있는' 이야기가 하고 싶었다.


                       <가끔 맛있는 것도 먹고, 아름다운 풍경도 함께 보며 공유하고 싶다>



그렇다고 모든 일정을 일행과 하는 여행을 원한 것은 아니다. 여행이라는 것은 개인의 취향이 지극히 반영되기 때문이다. 이번 여행도 인천공항에서 동생과 함께 출발하긴 했지만, 모든 일정을 함께 한 것은 아니었다. 한 도시에서 보통 3,4일 정도 머물렀는데, 그중 하루나 이틀 정도만 함께 여행하고 나머지는 개인 자유여행을 했다. 여행 취향이 다르고, 보고 싶은 게 다르기 때문에 서로를 존중해주기 위함이었다.


여행을 다녀와서 지인들에게 가장 먼저 들었던 말이, '둘이 싸우지 않았냐'는 질문이었다. 실제로 오랜 친구끼리 여행지에서 싸우고 돌아왔다는 얘기는 자주 들려왔다. 심지어 세 명이 여행을 가서 싸우게 되면 꼭 두 명이 한 편이 되고, 남은 한 명은 처절한 배신감에 휩싸인다는 얘기까지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싸울 이유가 없었다. 모든 일정을 함께 해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가고 싶은 곳을 강요하지 않았고 그것은 동생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그렇게 21일 동안 자유가 보장된 여행을 함께 만들어 나갔다.


크라쿠프행 버스는 중간중간 휴게소에 들렀고, 두 명의 운전기사님들도 교대로 운전을 했다. 버스 안에 있는 7시간 동안 멀미라도 하면 어쩌지?라고 생각했던 나의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단잠에 빠져들었다. 가끔 눈이 떠져서 어디쯤 왔는지 살펴봤지만 표지판으로만 알아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강한 빗줄기가 앞 창문을 두드렸다. 와이퍼가 제일 바쁘게 움직였다. 운전기사 아저씨는 이런 일은 익숙하다는 듯이 부드럽게 핸들 조작을 했다. 꽤 많은 비가 내렸다 개었다를 반복했다. 크라쿠프 날씨가 좋지 않겠거니 예상하고 있었다. 구글 날씨도 그렇다고 했다. '나의 봄 옷은 또 캐리어 안에서 나오지 못하겠군.'이라고 혼잣말을 하며 스르르 감기는 눈을 이기지 못하고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예상시간보다 조금 늦게 크라쿠프 터미널에 도착했다. '오! 폴란드다, 폴란드!' 설렜다. 한편으로는 낯설었다. 예상했던 것처럼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많은 비는 아니었지만, 옷이 젖는 건 참기 힘들기에 우산을 가방에서 꺼냈다. 어깨에는 배낭이, 한 손에는 캐리어를, 한 손으로는 우산을 받고 걷자니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숙소를 찾아가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가지고서 말이다.


역시나 길을 또 헤매고 있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주소뿐. 슬슬 어깨에 맨 배낭이 무거워질 때쯤, 횡단보도를 기다리고 있던 폴란드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저, 제가 여기를 가야 하는데 어떻게 가야 할까요?"


그의 표정은 차가웠다. 웃음기 없는 얼굴에 나는 긴장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일처럼 나를 도와주었다. 내가 보여준 휴대폰 지도를 보더니 "잠시만, 내 지도를 좀 켤게요" 라며 본인의 핸드폰을 꺼내었다. 지도를 키웠다 줄였다, 이리 돌렸다 저리 돌렸다를 반복하며 한참을 보더니, "나도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있는 곳은 여기예요. 그리고 이쪽 방향으로 가다 보면 나올 것 같으니, 좀 더 가서 다른 사람에게 물어봐요."라고 대답했다. 원하는 바를 얻지는 못했지만 그의 노력이 고마웠다. 오 폴란드 사람들 꽤 친절하다?라고 생각하며 가볍게 "땡큐!"를 외치고 걸음을 옮겼다.


제대로 찾았으면 10분 정도면 될 거리를, 나는 거의 30분 이상을 헤매다가 숙소에 도착했다. 무사히 도착했다는 안도감에 피곤함이 몰려왔다. 버스 타고 오며 그렇게 잠을 잤는데도 잠이 쏟아졌다. 잠시 잠을 청하고 시가지를 걷기로 했다. 내가 그토록 오고 싶어 했던 폴란드 여행의 시작이었다.


지금은 폴란드의 수도가 바르샤바이지만, 크라쿠프는 500년 동안 폴란드의 수도이자 폴란드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 깊은 도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아이러니하게도 나치 독일군이 주둔하고 있던 곳이라는 이유로, 바르샤바와는 달리 전쟁의 피해를 입지 않았다.  



비가 내리는 크라쿠프의 거리는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었다. 오늘 처음 온 여행자가 아니라, 마치 오래전부터 이곳에 터를 잡고 살아온 사람처럼 편안함을 느끼게 해주었다. 아마 크라쿠프에서 처음 만났던  폴란드 남자 덕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Excuse me'를 외치던 순간부터 'Thank you'를 외치던 순간까지 그의 표정은 차가웠지만, 자신의 일처럼 도와주려 했었던 그의 모습은 나에게 큰 감동이었다.

가랑비가 크라쿠프의 땅을 조금씩 적셔갈 동안, 나의 마음도 크라쿠프에 대한 애정으로 조금씩 물들어가고 있었다.


바벨 성에 올랐다.  입장을 하기에는 늦은 시간이라 성 내부 관람은 하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


그리고 나를 반겨주던 이름 모를 고양이 한 마리. 고 녀석 늠름하게 잘 생겼다. 수놈인지 암놈인지는 모르겠지만, 너도 나를 환영해준다고? 고맙다 고양이야! 앞으로 크라쿠프에서 보낼 5일이 기대로 채워지고 있었다.





크라쿠프 여행기, 다음 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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