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선택하는 ‘가족’ 내가 책임지는 ‘가족’ 그렇게 우리는 성장해갑니다
# 부부의 선택이 존중받았으면 좋겠다.
태어남과 동시에 만들어진 가족은 선택할 수 없지만, 성인이 돼서 내가 만들어갈 가족은 온전히 나의 선택이었다. 어느 가을날, 결혼함으로써 나는 하나의 가족을 만들었다. 우리 부부는 ‘딩크족’을 선택했고, 고양이와 함께 하는 삶을 택했다.
물론 결론에 도달하기까지 많은 고민과 대화가 오고 갔다. 다행스럽게도 대화라는 가장 바람직한 방법으로 합의점을 도출해냈고, 결정에 후회는 없으며, 그에 따른 책임도 우리 부부가 질 것이다.
부부가 딩크족이 되기까지의 길이 순탄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이 봤다. 집에 고양이나 강아지 같은 다른 동물에게 불똥이 튀는 것도 봤다. 안타까웠다. 부부의 확고한 결심이 여기저기에 치이고 상처받는 걸 보는 게.
거리가 있는 사이라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게 어렵지 않지만, 가까운 관계에선 그마저도 어려우니까. 바라건대 부부의 선택이 존중받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나름의 고민을 통해 내린 그들의 결론을 흔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누구도 부부의 인생을 대신 살아주는 게 아니니까.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있음을 존중해주면 좋겠다. 어느 한쪽만이 정답이라고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각자의 방식으로 가족을 구성하고, 그 테두리 안에서 울고 웃으면서 성장해가고 있으니까.
# 생각보다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다.
딩크족 부부로서, 고양이를 반려하는 집사로서 글을 써나갔다. 사람 아이가 아닌, 노란 치즈 고양이 보리와의 일상을 찬찬히 담아내고 싶었다. 함께 한 14개월 동안 우리 부부는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다. 내게 가장 큰 포기는 코로나가 종식되더라도 장기간 여행은 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미 작년 봄에 만료된 여권도 당분간 재발급 계획이 없다. 미니멀 라이프는 머나먼 꿈이 된 지 오래였다. 사고 싶은 물건도 공간이 부족해서 사지 못한 게 한둘이 아니다. 아무리 피곤해도 정해진 시간만큼은 놀아줘야 하고, 화장실 청소도 해줘야 한다. 빗질과 양치도 빼놓으면 안 된다. 간섭은 또 어찌나 심한지, 새로운 물건을 만지작거리면 어디선가 쫄쫄쫄 다가와서 콧구멍을 벌렁벌렁 거리며 나지도 않는 냄새를 맡고, 앞발로 툭툭 치면서 훼방을 놓기도 한다.
하지만 분명한 건 우리 부부의 희생보다 더 큰 사랑을 받고 있으며, 집 안에 활력이 찾아왔다는 점이다. 하루라도 웃지 않는 날이 없었다. 아마 육아를 하는 부모님들도 이 부분은 깊은 공감을 하시지 않을까?
“아무리 힘들어도 나를 보고 환하게 웃어주면, 신기하게도 그 피로가 싸-악 풀리는 거야.”
“손빨래를 하고 있는데, 어디서 배웠는지 등 뒤에 와서 나를 꼬-옥 안아주는 거야.”
지금의 내 나이보다 어렸던, 당시의 직장 선배가 이뻐 죽겠다는 듯, 딸 자랑을 하던 표정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사랑하는 존재가 있다는 것. 살아갈 힘이 되어주기도 하고 힘들 때면 위로를 받으며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것. 그게 우리 가족이 사랑하고, 살아가는 방법이다.
# 그리고 기억하고 싶다. 평범했던 모든 날의 일상을.
언젠가는 우리 부부의 곁을 떠날 이 아이의 흔적을, 함께 한 시간을 글로 남기고 사진으로 남기고 싶다. 글이 가진 힘을 마음껏 이용하고 싶다. 나는 기억하고 싶은 순간을 제법 오랫동안 기억하는 편인데, (냄새, 분위기, 나누었던 말들, 날씨 등 환경요소까지 모조리 하나의 장면으로 머릿속에 넣는다) 십 년이 흐르고, 이십 년이 흘렀을 땐 우리가 처음 만났던 순간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새로운 기억을 계속 집어넣을 텐데, 한정된 기억 저장공간에서 앞선 기억들이 하나씩 지워지면 어떻게 하나, 싶은 마음이었다.
매일 같이 반복되는 평범한 일상에서 보리와 함께 하는 순간이 무뎌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보리가 떠난 후, 언젠가는 녀석의 흔적이 미칠 듯이 그리울 때면, 오래 전의 앨범을 꺼내어보듯이 추억들이 남겨진 이 글을 다시 곱씹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