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그거 아세요? 현실에선 잘 안 되더라고요.
# 사고는 눈 깜짝할 새에 일어나는 법
집에서 출근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할 시간에 나는 병원에 있었다. 정확히는 24시간 동물병원의 고양이 대기실. 병원임을 알아챈 건지 서글프게 우엉, 우엉, 낮게 울어대는 녀석의 커다란 눈망울을 보니 울컥 눈물이 쏟아지려는 걸 애써 참았다. 여긴 병원이니까, 울면 안 돼. 나는 보호자니까 이성의 끈을 절대 놓으면 안 돼.
정말 눈 깜짝할 새에 일어난 일이었다.
밖을 내다보라고 거실 창문 앞에 기둥 스크래처를 두었던 게 화근이었다. 아니, 창문을 닫아둔 게 화근이라고 해야 하나. 잘 모르겠다. 다 내 잘못 같았으니까. 1미터가량 되는 높이를 올라가 창문 밖을 내다보겠다고 뛰었는데, 하필이면 창문이 닫혀있어서 창틀에 오르지 못했다. 투명한 유리창이 닫혔는지 열려있는지 구분이 어려웠을 거다. 그렇게 우리 집에 온 지 며칠 지나지 않아, 태어난 지 4개월이 채 되지 않은 작은 고양이는 1.3미터 정도 높이에서 떨어졌다.
턱!
짧고 둔탁한 소리가 났다. 등 쪽으로 떨어지는 모습이 슬로모션처럼 눈에 들어왔지만, 실제로는 워낙 순식간이라 손쓸 새가 없었다. 바닥엔 빨간 핏방울이 작게 떨어져 있었다. 놀란 내가 비명을 내뱉자 보리는 더욱 긴장한 듯 보였다. “보리야, 이리 와봐!” 목소리가 떨리는 불안함을 느낀 건지, 구석구석을 찾아 숨고 잡을라치면 쪼르르, 빠져나가 멀리 도망가버리는 녀석을 잡느라 출근 준비중인 남편까지 합세했다. 한바탕 소동 후에 간신히 이동장에 넣어 동물병원으로 향했다.
이제부턴 침착해야 해. 침착하자. 자신을 다독였다. 나는 얘 보호자니까. 내가 제대로 설명하고, 또 잘 알아들어야 해.
# 매일 외우고 다녔는데... 기억이 갑자기 안 나네요.
예전에 병원 원무과에서 일했었다. 응급실 당직을 설 때면 항상 느꼈던 점이 바로 병원에선 ‘침착해야 한다.’였다. 응급실은 말 그대로 ‘응급’한 사람들이 주로 오기 때문에, 혼란스럽고 정신없는 경우가 많다. 그 분위기가 고스란히 응급실 바로 앞에서 접수수납을 하는 나에게 전해졌기에, 항상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외래 진료를 하지 않는 주말 주간에는 아이와 엄마가 꼭 한 번씩은 왔는데, 아파서 울다 지친 아이를 품에 안은 엄마는 숨을 몰아쉬며 진료 접수를 해달라고했다.
“아이의 주민등록번호가 어떻게 되죠?”
“아... 그게... 외우고 다녔는데 갑자기 생각이 안 나네요.”
“병원에 온 적은 있나요?”
“네.. 아마 있을 거예요.”
평소였으면 막힘없이 읊었을 아이의 주민등록번호를, 아프다고 울고 있는 아이를 품에 안고 있으니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해버리는 것이다. 심지어 어떤 엄마는 진료 신청서에 본인의 주민등록번호를 적는 경우도 있었다.
어느 날은 일본인 엄마가 왔다. 아이의 주민등록번호를 정확하게 외우고 있었으며 침착하게 아이의 상태를 말했다. 엄마가 불안해하지 않으니 아픈 아이도 보채지 않는 모습이, 당시엔 결혼도 하지 않은 20대의 나에게도 꽤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녀를 보며 생각했다. ‘나도 나중에 엄마가 된다면 병원에 왔을 때 꼭 침착하게 해야지.’ 5분이면 될 일이 10분 15분으로 늘어나는 걸 겪으면서, 예상치 못한 상황에 놓인 엄마의 정신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었으니까.
그래, 그땐 그랬었다. 그땐 내가 간접 육아조차 겪어보지 못했으며, 다른 생명을 책임져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래서 머릿속으로 생각하면 다 되는 건 줄 알았다.
하지만 이 작은 녀석 덕분에 나도 내가 봐왔던 평범한 엄마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침착과는 거리가 먼, 처음 겪는 상황에선 발을 동동 구르며 정상적인 사고가 멈춰버리는, 아직은 내공이 부족한 보호자라는 걸 말이다.
# 엄마, 불안해하지 말아요.
다행히 엑스레이 촬영 및 촉진, 육안 검사 등에서 특별한 이상소견은 발견되지 않았고,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를 연거푸 하며 카운터로 향했다. 아침 8시, 정규 진료 시간이 아니었기에 추가된 야간진료비까지 모두 지불한 뒤에야 나는 마음의 평안을 되찾을 수 있었다.
병원 문을 열고 나서며 그때서야 ‘잘했어. 다음엔 더 침착하게 하면 돼.’라고 다짐하는 내 모습이 웃겼다. 잘못 될까 봐 울먹거리며 덜덜 떨던 게 불과 1시간도 채 되지 않았는데 이렇게 금세 웃을 수 있다니. 보리도 왠지 조금은 안정을 되찾은 것처럼 보였다.
엄마가 불안해하면 아이는 더욱 불안해한다. 비단 사람만 그런 것은 아니다. 눈치가 어찌나 빠른지, 조금만 이상한 낌새가 있어도 바로 숨거나 도망 다니기 바쁜 게 고양이다. 보호자의 불안해하는 감정과 음성이 모두 그 작은 생명에게 전해진다.
1년도 더 넘은 일이다. 하지만 아직도 그날의 감정이 생생하다. 1년 전보다는 조금 더 내공이 쌓인 엄마가 되었을까. 솔직히 “그렇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다. 여전히 보리가 평소와 다를 때면 전전긍긍 걱정부터 앞서는 사람이니까. 음, 앞으로 1년 후쯤엔 “그렇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 녀석이 성장한 만큼 나도 조금 더 단단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