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오르되, 소진되지 않기 위하여
10년이 넘는 회사 생활 중, 어떤 시기는 나를 빠르게 불태우는 시간이었다.
하루 세 시간의 수면과 쉴 틈 없는 일정 속에서 나는 일했고, 또 나를 찾고, 다시 일했다.
몰입은 강렬했고, 성취는 선명했다.
그 시기의 나는 마치 자기 연소를 통해 빛을 내는 촛불 같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 불은 더 이상 따뜻하지 않았고,
남겨진 것은 타다 남은 심지와 희미한 그을음 뿐 이었다.
번아웃은 단순한 피로가 아니다. 그것은 현재 존재하는 나와 에너지의 불일치가 발생하는 지점에서 시작된다.
가장 잘하던 일이 가장 나를 아프게 할 때, 열정의 언어가 더 이상 나를 움직이지 못할 때, 그때 우리는 무너진다. 조용하고 천천히...
나는 그 과정을 두 번이나 겪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두 번째는 더 빨랐고, 더 분명했다.
회사라는 구조 안에서 나의 책임이 커질수록, 그 구조는 더 강하게 나를 압박했다.
업무의 양이 아니라, 타인의 기대를 품은 역할이, 그 책임감이 나를 서서히 무력화시켰다.
글이 읽히지 않았다.
문장이 이해되지 않았고, 한 페이지를 반복해서 읽고 또 읽으며 점점 나라는 중심이 흔들리는 걸 느꼈다.
그토록 좋아하던 일이 의미 없이 흘러가는 고역이 되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지극히 내밀하고 철저한 형태의 자기 상실과도 같았다.
오히려 회복은 반대의 방향에서 시작되었다.
나는 더 이상 극복하려 하지 않았다
그저 받아들일 뿐 이었다.
나는 무기력했다. 예전처럼 집중이 안 되고, 과거의 나처럼 일할 수 없었다. 그래도 괜찮다고, 마음속에서 선언했다.
퇴근 이후에는 모든 연결을 끊었다.
회사라는 체계에서 나를 분리하는 연습을 했다. 6시든 8시든 책상에서 떠나면 그 순간부터 회사와 일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
내 마음의 탈출구는 무엇을 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존재 그 자체를 허용하는 감각으로의 이행인 셈 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과거의 나의 열정을 존중한다.
과거의 내가 불완전한 방식으로 너무 빠르게 질주했다 하더라도, 그 속에는 순수한 동력과 뜨거운 의지가 있었다.
그 열정 덕에 지금의 나로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올바른 속도와 방향은 삶을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균형의 양축이라는 것을.
번아웃은 나를 멈추게 했지만, 그 멈춤은 더 긴 생존을 위한 깊은 숨이었다.
나는 지금 더디지만 걷고 있다.
스스로를 밀어붙이지 않으면서도, 여전히 나아가고 있다.
열정은 필요하다.
그러나 그 열정은 자기 소진의 형태가 아닌, 자기 유지의 구조 안에 놓여야 한다.
우리는 성장하고 싶다. 하지만 성장 또한 존재의 지속성을 전제로 한 개념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너무 빨리 달리면, 우리는 결국 멈추게 되어 있다.
스스로 선택해서 멈추든 무너져서 주저앉든.
타오르되, 소진되지 않기 위하여 노력해야한다.
아직도 일하고 있고, 동시에 자신을 지키려는 사람으로서 살아가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