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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먼가 프리만 Feb 20. 2020

육아? '기브 앤드 테이크'와 '기대감 제로'의 사이

약간의 보상은 바라는 파파주도육아

"그걸 말이라 하니. 육아는 기브 앤드 테이크지."


육아휴직을 시작한 뒤 곧바로 찾은 고향집에서 '육아'에 대해 얘기를 하던 중 엄마가 한 말이다. 딸을 보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아이와 친해질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고 하자 약간의 핀잔과 함께 돌아온 답이었다.  


엄마는 옥황상제도 천국행 도장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찍어준다는 '아들 둘을 키운 부모'다. 육아와 관련해 산전수전 공중전을 모두 경험한 엄마에게 있어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기브 앤드 테이크’였다.


'기브 앤드 테이크' 관계를 확인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1월 중순 육아휴직을 시작하며 아이에게 '기브'를 하는 게 많아졌다. 1주일에 주말에만 한 번씩 아이에게 밥을 해줬었지만, 이제는 전속 요리사가 됐다. 아무리 빨리 퇴근해도 아이의 목욕시간(오후 7시)을 맞추기 어려웠지만, 이제는 매일 씻겨줄 수 있게 됐다. 산책도, 놀이터도 함께 가고, 아이가 "붕"이라 부르는 비행기 태워주기도 시간 날 때마다 해준다.


그 결과 '테이크'가 많아졌다. 엄마가 잠시라도 보이지 않으면 눈물을 쏙 빼던 아이는 이제 없다. 엄마뿐만 아니라 '아빠'도 챙겨야 할 대상이 됐다. 잠시 쓰레기를 버리러 간 사이 "아빠? 아빠!"를 외치며 찾는 날도 많아졌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빠라고 불리는 저 남자가 매일 밥을 주고, '붕'도 태워주고, 산책도 데려가고, 그림책도 읽어주고. 제법 챙길 필요가 있는 인물이 된 것이다.


주는 게 많아지는 만큼 기대감도 커진다. '기브'를 많이 해줄수록 이 꼬맹이가 나에게 줄 게 많아질 것이라는 기대감이다.


눈썰매를 태워주던 순간까지 그랬다. 눈이 온 후 아파트 근처 공원에서 '인간 개썰매'가 돼 딸을 끌고 다녔었다. 문제는 눈썰매는 '어른이'인 나에게도 즐거운 일이라는 것에 있다. 한 마리의 시베리안 허스키가 돼 딸이 탄 눈썰매를 끌며 이런 생각을 했다.


"지금 열심히 썰매를 끌면 딸이 커서 내가 탄 썰매를 끌어줄 수도 있을 거야."


이런 한심하기 그지없는 기대감이  생길 정도로 '기브 앤드 테이크'를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사람이 나이를 먹는다고 반드시 멋진 생각만 하는 건 아닌 게 확실하다.


먹어라 먹어라.. 제발 맛있게 얌냠 먹어라

"기브 앤드 테이크? 육아에서 기대를 하지 마~"


아내의 말이다. 22개월 동안 딸을 동 나이 때 상위 1%의 키로 성장하게끔 한 영도력(그렇다 칩시다)을 보유한 아내다. 육아계의 떠오르는 시리우스. 축구 감독으로 친다면 엄마가 주제 무리뉴라면, 아내가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정도는 된다.  


육아계의 포체티노가 한 조언은 이렇다. 기대를 가질수록 실망만 늘 것이기 때문에 '기브 앤드 테이크'와 같은 생각은 안 하는 게 상책이라는 것이다. 다시 한번 축구로 생각을 하면, 상대를 고려한 맞춤형 전술보다는 '내가 주도하는' 전략을 펴야 한다는 것에 가깝다.  


생각해보면 매일 같이 딸에게 실망을 하고 있다. 식사만 해도 그렇다. 오늘 아침에는 졸린 눈을 비비며 마련해준 5찬 밥상을 딸이 거부해 얼마나 꼭지가 돌았던가. 어떤 날에는 큰 마음으로 마련해준 소고기 볶음 요리에 손길도 안 줘 마음의 상처를 받은 적도 있다.


하이라이트는 최근 벌어진 이른바 마카로니 사건이다. 성의껏 토마토 소스 스파게티를 만들어 줬는데, 면이 마카로니가 아니라고 집안이 떠내려가라고 울어버린 게 얼마 전이다. "와 역시 우리 딸, 완전 집안을 뒤집어 놓으셨다".


아이는 '기브 앤드 테이크'가 가능한 인격체이면서도, 아직은 불완전하다. 사실 완전한 인격체끼리도 '기브 앤드 테이크'는 힘든 법이 아니던가. 나이가 서른이 훌쩍 넘어서도 부모님과 전화로, 직접 만난 자리에서 티격태격해온 게 글을 쓰고 있는 본인이다. 마음을 비우고 내가 주도하는, 내가 만족할 수 있는 육아를 지속하는 게 분명 상책이다.


아니 그거 말고 그거 치라고~거기 있잖아 그거

그렇다고 나의 '기브'에 대한 '테이크'의 기대감을 완전히 접어야 하는가.


딸이 주는 보상은 육아의 확실한 동력이다. 바운서 의자에 누워있던 딸이 온갖 재롱을 부리던 나에게 자신의 생애 1호 웃음을 발사해줬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 그런 순간을 위해 철없는 기대감은 계속해서 유지될 것 같다.


육아휴직을 한 후 1달이 다 되어가는 지금. 육아는 '기브 앤드 테이크'와 '기대감 제로' 사이 어딘가에 있다고 느낀다. 정답이 있다면 '육아 지옥'이라는 말이 생기지도 않았겠지. 나의 육아휴직 기간 6개월은 이 두 가지 명제 사이의 그 어딘가를 찾는 여정이 될 거 같다.


육아의 주체는 나라는 점을 생각하는 게 우선 필요할 것 같다. 기대감이 앞서는건 좋지 않다. 쓸데없는 기대감은 나의 허탈감을 키울 뿐만 아니라, 상대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내가 능동적으로 육아를 하는 게 먼저라는 점은 명백하다. 그러다가 보면 딸도 자연스럽게 보상을 주게 될 것이다.


기대를 갖되, 그 수준은 낮추자. 그래도 눈썰매 정도면 적절할 것이라고 본다. 딸이 어느 정도 크면, 내가 탄 눈썰매를 한 번씩 끌어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 육아휴직 기간이 그런 관계 형성을 위한 주춧돌이 됐으면 좋겠다. 철없는 생각이긴 한데, 딱  그 정도만 기대를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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