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센터부터 영어 과외까지, 나의 아르바이트 일대기
처음으로 내 힘으로 돈을 번 순간이 언제일까.
19살, 콜센터 영업 아르바이트
되돌아보니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겨울방학 때 친구와 함께 한 콜센터 아르바이트가 떠올랐다. 칸막이 책상으로 가득 찬 사무실에 친구와 나란히 앉아서 헤드폰을 쓰고 앞에 놓인 종이를 들여다본다. 출처가 어디인지도 알 수 없는 이름과 휴대폰 번호가 빼곡히 적혀 있다. 친구와 나는 서로 잘해 보자면 눈짓을 하고 차례대로 전화를 돌린다. 휴대폰 컬러링에 맞춰 어깨를 들썩들썩. 그러다 누군가 전화를 받으면 앞에 놓인 영업용 대본을 어설프게 따라 읽는다.
6시간씩 전화를 걸다 보니 머리는 지끈거렸고 좀처럼 성과도 나오질 않았다. 물론 똑같은 대본을 받고도 기가 막히게 실적이 좋던 사람도 있었지만, 친구와 나는 영업에 재주가 없었다. 며칠 만에 겨우겨우 한 건 계약을 성사시키고, 5일 만에 친구와 나란히 잘렸다. 사장님이 아르바이트비도 안 주려고 해서 친구와 노동청에 신고까지 해서 받아 냈더랬지.
20살 - 21살, 편의점과 레스토랑 아르바이트
그다음으로는 편의점 아르바이트. 한창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던 시절이라, 휴학계를 내고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떠났다. (그곳에서 유학 중이던 지금의 남편을 만난 건 안 비밀.) 호주에서는 주로 레스토랑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처음으로 큰돈을 버니까 신이 나서 종이 가계부를 열심히도 쓴 기억이 난다. 그 가계부는 지금도 가지고 있는데 가지런히 붙여 놓은 영수증만 봐도 그 시절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22살 - 25살, 편의점과 영어 과외 아르바이트
호주에서 번 돈을 가지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때 내 인생 최초의 환테크도 경험했다. 내가 귀국한 시기에 호주 달러 환율이 굉장히 좋았던 것이다. 그래서 생각보다 꽤 큰돈이 - 물론 대학생 입장에서 - 내 손에 들어왔다. 호주로 가기 전까지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부모님께 용돈을 받았는데, 호주 워킹 홀리데이를 기점으로 용돈이 끊겼다. 그래도 걱정 없었다. 호주에서 벌어 온 돈이 있으니까. 하지만 그것도 1년이 넘어가자 슬슬 바닥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였을까? 난 통장 잔고를 안 보게 되었다. 씀씀이는 커졌는데 잔고는 나날이 줄어드니 통장 잔고를 들여다보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가 된 것이다. 난 통장 잔고를 보지 않고도 걱정 없이 돈을 쓸 수 있는 묘책을 떠올렸다. 바로 아르바이트를 많이 구해서 한 달에도 몇 번씩 돈이 들어오도록 만드는 것. 그러면 통장 잔고를 보지 않고도 돈을 쓸 수 있었다.
학업과 병행해야 하니 짬짬이 공부도 할 수 있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나 시급이 쏠쏠한 영어 과외 아르바이트를 주로 했다. 과외 아르바이트는 꽤 소질이 있었는지 학생 구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한 달에 두세 번씩 아르바이트비가 들어오니 정말 통잔 잔고를 안 보고 돈을 쓸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어느 순간부터 카드를 긁었는데 잔액이 부족한 상황이 반복되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니, 내가 이렇게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왜 자꾸 통장 잔액이 부족한 거야?
사실 돈을 얼마나 버는지보다 얼마나 쓰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그 시절에는 몰랐다. 더 많은 돈을 벌기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생각하며 이리 뛰고 저리 뛰었던 것이다. 그렇게 열심히 일하는데도 나는 통장 잔고를 봐야 하는 순간이 올 때마다 어마어마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26살, 영어 공부방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영상번역 시작!
학교를 졸업할 무렵에 진로 고민이 많았다. 공기업 취업을 목표로 몇 년간 온갖 자격증과 대외활동을 준비해 왔는데, 과연 내가 공기업에 취업하고 나서 행복할까 싶더라. 그래서 막판에 영상번역가로 진로를 틀었다. 영어를 좋아하고 미드를 사랑하는 나에게는 그야말로 꿈만 같은 직업이었다. 영어 공부방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영상번역을 공부했고, 6개월 만에 한 영화사에서 첫 일감을 받았다.
그렇게 반년쯤 지나자 통장에 돈이 쌓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때부터 통장 잔고를 똑바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내가 정확히 얼마를 벌고 얼마를 쓰는지 보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변화였다. 수입과 지출을 파악하니 학자금 대출 상환 계획을 세우는 등 미래를 그릴 수 있게 되었으니까.
남편과 결혼하고 나서도 가장 먼저 한 것이 우리의 통장 잔고를 들여다보는 것이었다. 흩어져 있는 자산을 한데 정리하고, 우리의 수입과 지출을 파악하는 것. 그것이 모든 재테크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혹시 지금 통장 잔고를 보는 것이 스트레스인 분이 있다면 이렇게 말해 주고 싶다.
“그대여, 통장 잔고를 들여다보라.
그대의 수입과 지출 내역을 따져 보아라.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 재테크의 첫걸음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