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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이 없어도 불안하지 않은 이유

<로지>로 살펴보는 주거 난민 이야기

결혼하기 전까지는 집값 따위 관심도 없었다.


그런 건 엄마랑 아빠가 신경 써야 할 문제였고 난 부모님이 마련한 안락한 집에서 내 일만 하기도 바빴다. 그러다 신혼집을 구하면서 집이 도깨비방망이를 휘두르면 짠하고 생기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양가의 지원을 기대하기 힘든 상황에서 가뜩이나 집값이 비싼 서울에서 신혼집을 구하다 보니 매매는 우리 선택지에 없었다. 우린 전셋집을 알아보기 시작했고 한정된 예산에서 내가 내건 조건은 딱 하나였다. 햇볕이 잘 드는 집. 몇 주간 주말마다 이리 뛰고 저리 뛴 끝에, 우린 작지만 햇볕만큼은 남부럽지 않게 쏟아지는 집을 첫 보금자리로 삼았다. 하지만 현실은 안락한 집에서도 우리를 불안에 떨게 했다.


물량 부족과
임대료 급상승으로

민간 임대 주택에서 내몰리는

저소득층 가정이
늘고 있습니다


최신 한국 뉴스라고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대사로 영화 <로지>의 막이 오른다. 가파른 집값 상승으로 아일랜드에서도 한바탕 부동산 난리가 난 시절이 있었나 보다. 네 아이의 엄마인 로지는 집주인이 집을 팔기로 해 7년간 살던 집에서 거리로 내몰린다. 그녀는 차에서 아이들을 돌보며 묵을 호텔을 찾아 쉴 틈 없이 전화를 돌리지만, 비슷한 처지인 사람이 너무나도 많은 까닭에 하룻밤 묵을 곳을 찾기도 쉽지가 않다. 극한으로 내몰린 상황 속에서도 로지는 우린 집을 잃은 것뿐이지 노숙자가 아니라며, 다 괜찮아질 거라며 끊임없이 되뇐다. 저 정도면 염불을 외는 것 아닌가 싶다가도 결코 희망을 잃지 않는 로지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가슴속에서 뜨거운 무엇인가가 솟구쳐 오른다. 하지만 이러나저러나 내 집 없는 삶은 서럽다. 


우리 부부 역시 내 집 마련을 시도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앞으로 집값이 더 상승할 거라고 예상한 집주인들은 부동산에 매물을 내놓고도 더 두고 보겠다며 집을 팔지 않았고, 난 매도자가 기세등등한 현실을 보며 이렇게 쫓기는 기분으로 집이라는 값비싼 재화를 구매하는 것이 맞는지 의문이 생겼다. 결국 우리 부부는 내 집 마련을 조금 미루고 종잣돈을 더 모으기로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행복주택 청약을 넣어 보자고 했다. 사실 내 집도 아니고 임대주택인데 청약씩이나 넣어야 한다는 게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소득 기준으로 인해 우리로선 행복주택에 청약을 넣어 볼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라 귀차니즘을 무릅쓰고 청약을 넣었다. 그래서 일주일 뒤에 서류제출대상자로 선정되었을 때도 별 감흥이 없었다. 제출해야 할 서류가 너무 많고 복잡해서 이렇게까지 해서 임대주택에 들어가야 하나 싶었으니까. 무엇보다 서류를 제출한다고 해도 당첨된다는 보장이 없었다. 이번에도 역시 뜨뜻미지근한 나 대신 남편이 나서서 서류를 제출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4개월 뒤에 우린 행복주택에 당첨되었다. 


강남구 신축 아파트인 데다 경쟁률 신경 안 쓰고 가장 큰 평수인 44형에 난생처음 지원했는데, 무자녀인 우리가 당첨되었다고? 믿을 수가 없었다. 연일 전셋값이 치솟고 그나마 있던 전세 매물도 사라져 간다는 기사가 떠서 불안하던 차에 날아온 기쁜 소식에 우리는 얼싸안고 춤을 추었다. 


순서가 뒤바뀌긴 했지만 사실 행복주택을 계약하고 난 뒤에야 나라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주거 복지를 알아보았다. 영구임대, 국민임대, 행복주택, 매입임대, 공공임대 등 생각보다 다양한 임대주택이 있었다. 아직 내 집 마련을 하기에 종잣돈이 부족한 신혼부부라면 이런 주거 사다리를 이용해서 저렴하게 주거 안정을 누리며 자산을 차곡차곡 쌓아 나가기 딱 좋았다. 임대료가 저렴하다는 장점은 물론이고, LH가 집주인이니 보증금을 떼 먹힐 염려가 없는 데다 퇴거하고 싶으면 한 달 전에만 통보해 주면 된다. 다양한 주거 복지 프로그램을 알게 되자 더 일찍 적극적으로 알아보지 않은 게 못내 아쉬웠다. 소득과 자산 기준이 있기 때문에 소득과 자산이 1원이라도 더 적을 때 이용하는 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이번에 당첨된 행복주택이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주거 복지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아이가 생기면 또 기준이 달라지니 앞으로도 꾸준히 주시할 것이다. 


고백하건대 내가 주거 복지를 잘 알아보지 않은 이유로는 임대주택을 향한 편견도 한몫한다. 실제로 행복주택에 당첨되고도 친구나 지인한테 쉽게 얘기하지 못했다. 괜히 자존심이 상한달까? 자존심 때문에 외부의 도움을 거절한 로지를 비난할 게 못 되겠더라. 하지만 로지에게 말해 주고 싶다. 민간 임대주택이나 공공 임대주택이나 다를 바 없고, 나라에서 제공해 주는 혜택을 받을 수만 있다면 적극적으로 챙기는 게 현명한 선택이라고. 공공 임대주택 살며 주거비 지출을 줄이고 그만큼 더 종잣돈을 모아 내 집 마련을 한다면 얼마나 좋겠느냐고. 우리 인생에서 지금이 가장 가난한 순간이라면 생각보다 꽤 괜찮지 않느냐고. 네 말대로 다 괜찮아질 거라고. 그렇게 말해 주고 싶다.  

 



행복주택은 직장과 학교가 가까운 곳이나 대중교통이 편리한 곳에 위치한 공공 임대주택으로, 전용면적 60제곱미터 이하 규모의 주택을 시세보다 60~80% 저렴한 임대료로 공급하는 주거 복지다. 대학생, 취업준비생, 청년, (예비)신혼부부, 고령자 등 다양한 전형이 있고 전형마다 요건이 다르니 공고문을 잘 살펴야 한다. 신혼부부는 무자녀인 경우에는 최대 6년, 자녀가 있는 경우에는 최대 10년까지 거주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신혼부부란 혼인 기간 7년 이내 또는 6세 이하 자녀를 둔 가구를 말한다. 예비 신혼부부인 경우에는 입주 전까지 혼인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1. 행복주택 기준 살펴보기 - 무주택자


나라에서 제공하는 주거 복지를 누리려면 입주자 모집 공고일 기준으로 세대원 전원이 분양권을 포함해 주택 소유를 하지 않은 무주택자여야 한다. 단, 청약 미달 단지 미분양 계약권 최초 계약인 경우에는 무주택자로 인정받는다. 


2. 행복주택 기준 살펴보기 - 소득


신혼부부가 행복주택에 청약을 넣으려면 소득 기준부터 확인해야 한다. 월평균 소득 합계가 전년도 도시근로자 가구원수별 가구당 월평균 소득의 100% 이하(맞벌이는 120% 이하)여야 지원 자격이 된다. 2인 가구 기준으로 100%는 5,018,789원이고 120%는 6,022,546원이다. 3인 가구 기준으로 100%는 6,240,520원이고 120%는 7,448,624원이다. 사실 유리 지갑인 직장인이라면 맞벌이 부부가 소득 기준을 맞추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소득 기준은 꾸준히 상승하는 추세니 지금 당장 소득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실망하지 말고 계속 주시하자. 또한 재공고인 경우에는 소득 기준이 150%까지 완화되기도 하니 관심 지역의 행복주택이라면 재공고가 올라오는지 틈틈이 확인하자. 다른 임대주택과 달리 행복주택은 입주한 이후에 소득이 넘어도 임대료만 할증될 뿐 퇴거 통보를 받지 않는다. 이는 엄청난 장점으로, 처음 청약을 넣을 때 소득 기준만 맞추면 그 뒤로는 소득 기준을 맞춰야 한다는 걱정 없이 꾸준히 소득을 늘려 가며 종잣돈을 모을 수 있다.


참고로 프리랜서는 소득금액증명원상 금액을 소득으로 인정받는다. 프리랜서 소득은 사업소득으로 종합소득세를 신고할 때 일정 금액을 필요 경비로 인정받기 때문에 자신이 생각하는 소득과 소득금액증명원상 소득이 다를 수 있다. 특히 5월에 종합소득세를 신고해 수입이 반영되기까지 시차가 있기에 생각보다 소득이 더 적을 수 있다. 그러니 반드시 소득금액증명원을 확인해 자신의 소득이 얼마로 잡혀 있는지 확인해 보자. 


3. 행복주택 기준 살펴보기 - 자산 


2021년도 기준 총자산이 2억 9,200만 원 이하(자동차는 3,496만 원 이하)여야 한다. 행복주택 역시 다른 임대주택과 마찬가지로 자산 기준을 철저하게 지킨다. 당사자는 모르고 있었던 숨은 자산까지 찾아준다는 말이 있을 정도니 내 자산이 얼마인지 꼼꼼하게 확인해 보고 신청하자. 우린 자산 기준을 통과해 행복주택 계약을 마쳤지만 2023년 1월 입주라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다. 올해 말이나 늦어도 내년 초면 행복주택 자산 기준을 초과할 거라서 사실 확실히 입주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알아본 바로는 입주하고 2년 뒤 재계약을 할 때 소득과 자산을 다시 확인한다고 하니 희망을 걸어 본다. 보통 재계약 시점 6개월 전으로부터 3개월간의 평균을 내며, 이때 자산 기준을 초과하면 퇴거 통보를 받는다. 상시 자산을 확인해서 퇴거시킨다는 말도 있고, 재계약 시점에만 자산을 확인한다는 말도 있고, 자산을 초과하더라도 1회 재계약은 가능하다는 말도 있으니 해당 행복주택의 공고를 꼼꼼히 확인하고 LH에 문의해 보는 수밖에 없겠다. 


단, 행복주택 입주 이후에 분양권에 당첨된다면 자산 기준에 구애받지 않고 당첨된 아파트가 완공되어 입주할 때까지 자동으로 계약을 연장할 수 있다. 행복주택에 들어가서 분양권에 당첨된다면 그야말로 소득과 자산 기준을 신경 쓰지 않고 주거 안정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이쯤 되니 요건이 되는데도 행복주택을 신청하지 않으면 바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행복주택 말고도 주거 복지 프로그램은 다양하다. 대표적으로 서울시 신혼부부 임차보증금 이자지원사업이 있는데, 신혼부부에게 저렴한 이율로 임차보증금을 대출해 주는 주거 복지다. 열심히 알아보는 만큼 누릴 수 있으니까 다음 세 사이트를 즐겨찾기 해 놓고 틈틈이 들어가 보자. 


마이홈포털

LH (한국토지주택공사)

SH (서울주택도시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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