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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만 모르는 따박따박 월급의 힘

<패터슨> 속 아내의 무한 도전을 보며

나는 여태껏 제대로 된 직장 생활을 해 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백수는 아니다. 그럼 어떻게 먹고살았느냐고?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영상번역을 공부해 지금까지 프리랜서 영상번역가로 살아왔다. 직장에 소속되지 않고도 돈을 벌 수 있다니 신기했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그렇다고 프리랜서의 삶이 마냥 꽃길은 아니었다. 영상번역가로 자리 잡기까지 3년. 나는 계속 불안에 시달렸다. 희한하게 컴퓨터 앞을 벗어나기도 힘들 정도로 바쁠 때 일감이 더 몰리고, 좀 한가하다 싶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자취를 감추었다. 거래처를 대여섯 곳으로 늘려도 이런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 


일감이 없으면 푹 쉬면 되는 것 아니냐고? 이상적으로는 그렇다. 그간 바빠서 하지 못한 일이나 하고 싶었던 일을 하면 된다. 한가해지면 하리라 다짐하며 적어 놓는 할 일 목록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언제 또 일감이 들어올지 모르니 불안감에 휩싸여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거래처를 더 뚫으면 나아질까 싶어서 이력서만 좀 돌릴 뿐. 일감이 들어오면 그제야 시간을 알차게 보내지 않은 걸 후회한다. 이런 사이클에 시달리는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동료 프리랜서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일감이 똑 떨어지면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고 늘어진다고. 다음에는 현명하게 대처하자고 몇 번을 다짐해도 바뀌는 건 없었다. 인간은 참 미련하다. 


프리랜서 생활의 애로 사항은 이뿐만이 아니다. 당시 난 대여섯 곳의 거래처와 일했는데 번역료가 입금되는 날짜도 금액도 제각각이었다. 어떤 거래처는 그달에 바로 번역료를 지급하고, 어떤 거래처는 익월 말일에, 또 어떤 거래처는 2개월 뒤 말일에 지급했다. 소식 한 점 없다가 6개월 뒤에 입금해 주는 곳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언제 얼마가 들어오는지 정확하게 파악하기가 힘들었다. 여태껏 가장 적게 들어온 달은 30만 원이었고, 가장 많이 들어온 달은 1,050만 원이었다. 보다시피 격차가 어마어마하다. 지출 계획이나 저축 계획을 세우기가 쉽지 않아서 초반에는 통장에 돈을 쌓아 두기만 했다. 그러던 내가 따박따박 월급의 힘을 알게 된 것은 결혼하고 나서였다.


여기 한 남자가 있다. 미국 뉴저지주 소도시 패터슨에 사는 버스 운전기사 패터슨. 이 남자의 일상은 지극히 단조롭다. 아침 6시 15분쯤 눈을 떠 잠든 아내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하루를 시작한다. 매일 같은 길을 따라 출근해 동료와 짧은 담소를 나누고, 버스를 운행하며 승객들의 이야기를 엿듣는 게 일상의 소소한 재미다. 점심시간에는 아내가 싸 준 도시락을 먹으며 시를 쓴다. 하루의 마무리는 퇴근하고 반려견을 산책시키며 바에서 마시는 맥주 한 잔. 하지만 뻔하디 뻔한 패터슨의 일상을 보며 입꼬리가 슬쩍 올라가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소박한 일상 그 자체가 더없이 충만한 삶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나에게 더 인상적이었던 캐릭터는 패터슨의 아내인 로라다. 로라는 꿈이 참 많다. 컵케이크 판매로 대박을 꿈꾸기도 하고, 기타를 배우며 컨트리 가수를 꿈꾸기도 한다. 온종일 바쁘게 움직이다 보니 집에만 있는 데도 심심할 틈이 없다. 나는 안다. 로라가 이렇게 다양한 도전을 할 수 있는 것은 패터슨의 월급 덕분이라는 것을. 


당장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사람한테 꿈과 도전은 사치다. 정해진 날짜에 정해진 금액이 따박따박 들어온다는 것은 생활에 엄청난 안정감을 준다. 일상을 계획할 수 있으니까. 그러면 새로운 도전을 할 여유가 생긴다. 프리랜서는 시간을 마음대로 쓸 수 있으니 새로운 도전을 하기 더 좋은 환경이지 않느냐고? 내 성향 탓일 수도 있지만 생각만큼 쉽지가 않다. 일감이 똑 떨어지는 시기가 있다 보니 들어오는 일감을 계속 받게 된다. 그야말로 놀면 뭐 하니.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난 항상 바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코로나로 OTT 시장은 호황을 맞았고 영상번역 업계도 덩달아 바빠졌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한다며 계속 일만 하다 보니 어느새 1년 순삭. 집이 일터인 나는 업무 시간과 휴식 시간이 뚜렷하게 구분되지 않았고, 24시간 출근한 것만 같은 생활이 이어졌다. 일에 시달려서인지 예전만큼 도전 욕구가 생기지도 않았다. 이대로면 앞으로도 내 생활은 바뀔 게 없겠다 싶더라. 그때 남편이 말했다. 


내가 있는데 뭘 그리 걱정해? 


생각해 보니 그랬다. 내가 당장 돈을 못 벌어도 남편 월급으로 기본적인 생활은 물론이고 저축까지 할 수 있었다. 물론 지금만큼 저축을 많이 하지는 못하겠지만 생계를 고민할 정도는 아니었다. 나는 무얼 그리 걱정했던 걸까? 나는 한 걸음 떨어져서 내 상황을 바라보았다. 맞아, 난 영화수입사를 차리고 싶었어. 번역할 시간을 뺏길까 봐(=수입이 줄어들까 봐) 못 들었던 8주짜리 영화 비즈니스 수업을 끊었다. 이 수업이 계기가 되어 일주일에 이틀만 근무하는 조건으로 영화사에 입사해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번역료를 많이 주지만 번거롭다는 이유로 그간 방치해 둔 플랫폼도 활용했다. 첫 반년은 월 수입이 눈에 띄게 줄었지만, 결과적으로 지금은 꿈만 꾸었던 영화수입 일을 배우면서 번역에 올인했을 때와 비슷한 수입을 벌고 있다. 막상 부딪쳐 보니 다 길이 있었던 것이다.  


때론 빈 페이지가
가장 많은 가능성을 선사하죠


맞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빈 페이지를 채우는 동안 지낼 집과 먹을 음식이 필요하다. 버지니아 울프도 매년 500파운드의 유산을 받게 된 것을 계기로 문학에 몰두하지 않았는가. 가만히 있어도 돈이 들어오는 구조를 만들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그 전까지 우리는 따박따박 들어오는 월급이 필요하다. 이번에는 고맙게도 내가 도움을 받았지만, 훗날 남편에게도 도전할 기회를 주고 싶다. 우리 일상에 도전이라는 키워드가 떠나지 않도록 우리는 계속 노력할 것이다. 




프리랜서도 따박따박 월급을 받고 싶다면?


프리랜서는 수입이 들쭉날쭉해서 계획적으로 돈을 관리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처음에는 통장에 돈을 쌓아 둘 수밖에 없다. 하지만 프리랜서도 얼마든지 따박따박 월급을 받는 시스템을 만들 수 있다. 프리랜서로 일하고 1, 2년만 지나도 자신의 월평균 수입이 얼마인지 데이터가 쌓인다. 연초에 월평균 수입에 12개월을 곱해 연봉통장에 넣자. 그러고 매달 일정한 날짜에 연봉통장에서 월급통장으로 이체하는 것이다. 그러면 들쭉날쭉한 수입에 휘둘리지 않고 계획적으로 돈을 관리할 수 있다. 


연봉통장 속 돈을 가만히 두기가 아깝다면 파킹통장을 이용해 보자. 파킹통장은 수시로 입출금할 수 있으며 하루만 맡겨도 이자를 지급해 준다. CMA도 그렇지만 보통 파킹통장이 CMA보다 이율이 높다. 게다가 CMA는 증권사에서 판매하는 상품으로 원금이 보장되지 않지만, 파킹통장은 대부분 저축은행 상품으로 예금자보호한도인 5천만 원까지는 원금도 보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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