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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진 Oct 18. 2024

5: 어떻게 너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겠어

세상살이, 그 이야기들


나의 언니에게도 아기가 생겼다. 태어난 지 겨우 100일이 된 나의 조카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태어났다. 나는 그 사람들 중 하나였다. 아기가 이렇게 이뻤었나, 이렇게 소중한 존재였나 싶을 정도로 봐도 봐도 예쁘고 사랑스럽다.


인생이 기구하고 사연이 깊은 나에게 아들의 탄생은 그리 축복받지 못했다. 오히려 숨기고 감추고 싶었다. 엄마의 사랑을 넘치도록 받아도 모자랄 판에 나는 매일을 슬퍼하고 힘들어했다. 그런 나를 이해하듯 아들은 할머니의 품에서 잘 자라주었다.


나는 친구 같은 다정한 엄마는 아니었다. 무섭고 엄한 엄마였다. 당근 따위도 없었다. 내가 입에 달고 살던 건 ‘아빠 없이 자라서 버릇없단 소리 듣게 하고 싶지 않아’였다. 예의 바르게 자라길 바랐고, 그 바람은 오히려 독이 되어 아들에게 끝없이 잔소리를 해댔다.


어느 날 심리상담을 받을 기회가 생겼고, 나는 버릇처럼 또 얘기했다. ‘아이에게 아빠 없이 자란 흠이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상담 선생님은 편견은 내가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부모가 온전히 다 있는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도 예의가 없을 수 있고, 아이를 때릴 수 있고, 못된 생각을 할 수 있다고. 아이에게 아빠가 없는 흠은 내가 만드는 게 아니냐는 질문을 하셨다. 머리를 쾅 맞은 듯했다.


누구나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 나의 아들도 마찬가지였다. 부족한 가정에서 자란다고 부족한 것이 아닌 것을. 나 스스로 편견 속에 갇혀 아이를 힘들게 하고 있었다. 아직 겁이 나는지 그 편견을 깨부수는 게 쉽지 않다. 하지만 살짝 금이 간 걸 보니, 상담으로 내가 깨달은 게 많은 모양이다.


늦은 듯 하지만 늦지 않았음을. 나의 아들에게도 조카에 대한 사랑처럼 조건없는 무한한 사랑을, 아니 그보다 더 깊고 진하게 사랑을 주겠노라고 다짐하고 또 반성한다.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난 그 당연함을 왜 하지 못했을까. 과거에 대한 후회는 잠깐 옆에 두고, 더 나은 미래를 곁에 두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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