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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여름의수박 Apr 16. 2016

섬에 살아간다는 것

고립이라는 막연함에 대하여

바람이 세차게 불어제낀다. 잔뜩 성이 난 얼굴로 몰아치듯, 쏘아붙인다. 건물을 통째로 잡고 흔들듯 바람소리가 매서웁다. 어찌나 무섭게 울리는지 자꾸만 창문을 확인하게 된다.


항공과 배편이 모두 취소되고, 뉴스에선 "제주 고립"이라고 뜬다. 섬에 산다는 건, 살며 마주할 일이 극히 적은 <고립>이 익숙해지는 과정인가보다. 육지와의 단절로 말미암아 또 다시 고립이다. 지난 1월 예상치못한 폭설로 한번의 고립을 경험해본 바,  <고립>이라는 단어가 주는 정서적 불안과 막연한 공포가 있다. 그것은 생존의 언어인 까닭이다.


폭설 속의 고립

언론에서 연일 제주공항에 발이 묶인 수많은 관광객의 고립을 보도하는 사이 주민들은 생활과의 사투를 벌이는 중이었다. 대형마트엔 차량 체인이 동이 났고, 폭설로 인해 버스는 일찌감치 끊겼으며 제주시와 서귀포를 오가는 도로는 폐쇄됐으며 지역에 따라 단수가 되기도 했다.  비교적 이른시간인 8시에도 도로는 어두컴컴했으며 상점들은 문을 닫았고, 사람들은 더러 한시간씩 걸어 집에 가야했다. 비행기가 뜨지않는다는 것, 배편이 막혔다는 것, 섬에 대한 막연한 상상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섬에 산다는 건 언제든 고립될수있음을 각오해야 하는 것이고, 천재지변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겨울엔 폭설, 봄과 여름엔 장마, 계절없이 불어닥치는 강풍. 언제고 성난 얼굴로 돌변하는 자연에 한정없이 수긍해야 한다는 것이다.


섬에 산다는 건 늘 예기치 못한 일 투성이다. 오늘 낮엔 좋아하는 작가의 강연이 예정돼있었다. 바람이 세차게 불었지만 설마...하는 마음으로 강연장에 달려갔고. 강연시간이 됐지만 작가는 오지 않았다. 강연관계자는 작가가 1시간 지연된 항공편에 탑승하긴 했지만 기상악화로 회항했다며 강의 취소를 알렸다. 8년만에 처음있는 일이라고 했다.  


섬에서 살아간다는 건..

아침에 일어나면 일기예보부터 확인한다. 지역마다 기상이 달라 꼼꼼히 확인하지 않으면 낭패보기 십상이다. 비 올 확률이 30% 이상이면 우산을 챙겨야한다. 적든많든 비는 오고야 만다.

질끈 머리를 묶지 않고서는 강한 바람을 당해낼 재간이 없다. 그 좋아하는 꽃치마와 나풀거리는 원피스는 제주살이 9개월 동안 손에 꼽게 입어봤다.

농사를 짓거나 바다를 나가는 이들의 하루는 더 할터. 날씨에 의해 그날의 하루가 결정되는 것이다.


집어삼킬듯 불어대는 강풍도 내일이면 걷힌다고 한다. 언제그랬냐는듯, 바다는 고요한 얼굴을 할것이고 잦아든 바람은 온데간데없이  봄날의 얼굴을 들이밀테지. 그러나 알고있다. 고요한 봄날의 얼굴 뒤에 숨겨진 변화무쌍한 날씨들. 언제고, 언제든 다시 성난 얼굴을 들이밀 수 있다는 것을.


섬에 산다는 건, 자연에 순종해야 함을 느끼는 일상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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