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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여름의수박 Apr 15. 2016

한때는 글을 쓰는 사람이고 싶었다.

아주 어릴땐, 잘하는게 없어 주눅이 들어있었다. 두살터울의 언니는 전교 1등을 놓지지 않는 우수생이었고, 동생은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예쁨을 받았다. 둘째였던 나는 그 모든 상황이 서러웠던것같다.  그러다  중학생이 됐다. 누구에게 속마음을 털어놓는게 익숙지 않았던 어린시절의 나는, 동네에 새로 문을 연 책방에서 위로를 받기 시작했다. 학교가 끝나면 책방으로 달려갔다. 손에 잡히는대로 탐독했던, 내인생에서 가장 많은 책들을 읽었던 순간들이다.


물음으로 가득했던 생각들이 명쾌하진 않더라도 ' 그럴수있다'는  동질감을 주기도했고,  '이런사람도 있다'고 엉뚱한 위로를 건네기도 했다. 사람마다 모두 처해진 환경과 생활에 따라 '다를수도 있다'는걸 인지하기 시작했고, 나 또한 마찬가지로 숱한 다름 중 하나라고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소설을 읽으며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의 생각들을 접했다. 상상이 증폭이 되고, 글에 적혀있지 않은 사건의 분위기를 글 속에서 발견해 내는 쾌감이 좋았다. 한정없이 밀어부치는 글맛에 취해 추리소설 작가를 꿈꿨던 소녀가 있었다.


책 만큼 좋아했던 게 라디오였다. <이지훈의 영스트리트> 애청자였고, <정지영의 스윗뮤직박스>를 들으며 잠을 청했다. 몇번 사연을 보냈고, 사연이 소개되기도 했다. 껄껄 웃으며, 글을 써보라고 권해준 디제이의 말에 조금은 설렜다. '언제고 전업작가가 될수있을까.' 일기장에 꾹꾹 마음을 눌러썼던 그날의 나. 


글을 쓴다는 것과 이야기를 만든다는 것을 구분하기 시작하며 나는 이야기꾼이 되기로 했다.

이야기를 공간에 넣는 작업, 이야기로 길의 이름을 지어주는 작업, 사람들의 동선 위에 그림을 그려주는 작업을 하는 사람. 나는 이야기꾼이 되었다. 글이 아닌 이야기를 쓰고 있고, 글 대신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유, 무형의 것들에 이야기를 입히는 작업을 한다. 글맛과는 확실히 다르다. 글 곳곳에 촘촘히 숨어있던 여백들을 개인의 상상에만 맡기지않고, 적극적으로 상상의 결과물을 유형화한다.


나는 한때 글쓰는 사람이고자 했고, 현재는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다. 그리고 나의 꿈은 이야기를 글로 쓰는 사람이다.  언제고 이야기를 글로 쓰며 또 다른 꿈을 꿀지도 모를 일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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