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여름의수박 Jan 25. 2017

변명처럼 궁색해진 2016년의 다짐

2016년을 기록하는 키워드

1년이 그렇게 갔다.

작년 그러니까 정확히 2016년 2월 브런치를 시작하며 나름 야심찬 계획을 세웠더랬다. 일년 동안 부지런히 보고, 듣고, 읽고 쓰겠노라고. 열심히 기록하여 연말쯤이면 독립출판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간 출판에 대한 몇 번의 기회가 있었지만 번번히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묵혀뒀던 이야기들을 한 해동안 가지런히 정리해보겠다고 생각했었는데...변명처럼 궁색해진 2016년 다짐을 뒤로 하고, 새로운 1년이 왔다.  


작년 한 해는 참으로 바빴다. 시간에 쫓겨사는 게 싫어 제주에 내려왔지만, 다시 직장인이 되고 일상을 살다보니 나는 다시 부던히 움직이는 시계초침으로 살고 있었다. 짬내어 틈틈히 제주 풍광을 담고, 많이 보겠노라 다짐했었지만 주말이 되면 끝없이 침체되어 갔다. 직업적 특성으로 제주의 곳곳을 누비고 다닌 까닭에 풍광이 늘 새롭지 않은 것도 한 몫했겠지만. 쨌든 그런 이유로 읽고, 보고,듣겠다는 결심 중 가장 열심히 했던 건 단연 읽기였다.


나는 읽는다.

매달 초 알라딘 서점에서 책을 산다. 구매 우선 순위는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이거나 좋아하는 작가가 추천하는 책, 관심있는 이슈, 공부하고 싶은 분야에 대한 책들을 선별해 5,6권씩 구매한다.  그러다보니 잘 읽히지 않는 책들도 있다. 읽다만 책들을 끄집어 내 다시 읽는 훈련들은 여전히 힘들다. 그렇게 많지는 않아도 꾸준히 읽었음에도 기록하지 않는 건 어찌된 까닭인지 잘 써지지 않았다. 브런치에도 쓰다만 글들이 더러 저장돼 있다. 좋아하는 책을 읽거나 인상깊었던 전시는 어떤 형태로든 기록해 두는 편인데 그것을 재정리하는 것을 게을리 한 탓이다. 궁색한 게으름에 대한 변명이다.


그리하여 조금 늦은 나만의 2016년 기록들을 써내려 가볼까 한다.


올해의 책 :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수 클리볼드 저, 홍한별 역, 반비)

나는 이처럼 단단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책의 제목처럼 저자 수 클리볼드는 가해자의 엄마이다. 1999년 학교에 총기를 난사해 같은 학교 학생과 교사 13명을 죽이고, 24명에 부상을 입힌 총격사건의 가해자 엄마가 쓴 책이다. 당시 나는 트라우마에 대한 책들을 선별해 읽던 와중이었고, 피해자들의 기록들을 몇 권 읽은 후 였다. 좋아하는 번역가의 추천도서인 까닭에 읽기 시작했다. 단 한 번도 나쁜 사람일거라 의심한 적 없던, 여전히 착한 내 아들이 그 끔찍한 일을 저질렀던 그날을 기점으로  삶이 완전히 달라진 저자의 슬픈 고백이다.

아들의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했던 엄마의 죄책감과 범죄를 저지르는 가해자의 심리상태, 그 후의 삶들이 촘촘히 기록돼있다. 최대한 객관적으로 사건을 인지하려는 저자의 태도는 놀라웠다. 그 엄청난 일들을 기록하는 문장 그 어디에도 감정적 호소를 찾을 수 없었기에. 담담해서 더 뼈아픈 기록이었다.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올해의 전시 :  오르세미술관展(예술의 전당)

좋은 전시를 손에 꼽는 건 참으로 어렵다. 그때그때의 느낌에 따라 전시의 느낌이 다르므로.

제주에도 좋은 전시들이 많다. 최근들어 젊은 작가들의 전시를 하는 갤러리카페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고, 서울 전시들도 많이 내려와 하는 추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전시를 꼽은 까닭은 온전히 반 고흐 때문이다. 빈 센트 반고흐의 작품을 좋아해 반 고흐 전시는 부러 찾아다닌다. 제주에서도  빈센트 반고흐 미디어아트전을 개최한 바 있다. <오르세미술관 展>은 반 고흐와 밀레, 르누아르, 모네, 폴 고갱 등 프랑스를 대표하는 오르세미술관의 컬렉션 131점을 전시했다. 원작들의 작품을 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칠세라 부랴부랴 서울에 상경했다. 전시가 끝나기 전에 한 번더 보고싶었지만 끝내 그러지 못했다. 한 번으론 아쉬웠던, 그러나 너무나 좋았던 전시였다. 이런 좋은 전시들이 더 많이 하면 좋으련만.


올해의 단어 : 페미니즘

올 초 읽었던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치마만다 은고치 아디치에 저, 창비)> 책은 내 삶과 생각에 많은 변화를 가져다 주었다. 생활의 불편함 내지는 개인적 문제로 치부했던 일련의 사건들이 나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문제이며, 일상적으로 인지하지 못했던 성 불평등의 문제임을 알게됐다. 알게되자 궁금해졌고, 궁금해지자 공부할 것들이 많아졌다. 젠더의 구분없이 모두가 평등한 세상에 대한 바람. 나는 더 많은 여성들이 더 많은 목소리를 내는 것이 '나서는 것'이 아닌 '일상'이 되길 바란다.  


새로울 것 없지만 새로운 다짐인 것처럼, 나는 또 마음을 다해 기록해둔다.

2017년에도 더 많이 읽고, 보고, 듣고, 기록하겠노라고. 사유하고 성찰하는 재미를 게을리하지 말 것을. 쾅쾅쾅.  


작가의 이전글 나는 농담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