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난 비바람과 돌풍을 몰고 왔던 태풍 '콩레이'가 떠나갔다. 비바람이 심상치 않았고, 그날 하루에만 십여개의 안전재난문자가 왔다. 항공과 해상 전편 결항 소식은 언제나 고립감을 몰고 온다. 당장 어딜 떠날 것도 아니면서, 두 발이 꽁꽁 묶인 것마냥 마음이 움츠려든다. 제주에 살며 가장 무서운 건, 첫째도 둘째도 자연재해가 아닐까 싶다.
그렇게 무시무시했던 시월의 태풍이 갔다. 태풍이 가고, 가을이 왔다.
옷깃을 여미게 하는 선선한 가을바람이 왔다. 환기시키려 아침 창문을 여니, 좀처럼 집에 있을 수 없게 하는 파아란 하늘이 아닐 수 없다. 몇날며칠 마음만 잔뜩 먹었던 오름을 올라야겠다 싶어 냉큼 커피를 내리고, 준비를 했다.
제주엔 참으로 많은 오름이 있다. 듣기론 알려진 것만 약 360여개의 오름이 있다고 한다. 마을분들은 아침저녁 산책하듯 오름에 오르내리니, 주민들에겐 오름이란 산책하기 좋은 뒷동산이 아닐까 싶다. 제주의 가을은 억새다. 오름을 오를 이유가 충분한. 억새를 보기 위해선 산굼부리나 새별오름을 가야했지만, 오늘 체력은 그정도가 아니겠다 싶어 가볍게 오를 수 있는 용눈이오름으로 갔다.
오름까지 가는 그 길목에서 가을을 만났다. 모두가 출근한 시간, 관광객이 움직이기엔 조금 이른 시간이라 도로는 한산했고, 도로 양 옆으론 바람에 부대끼는 억새가 장관을 이루었다. 창문을 열고, 있는 힘껏 숨을 내뱉다 쉬었다. 정말 완연한 가을이다. 30분 남짓 억새를 지나, 송당리 삼나무 길에 접어든다. 언제와도 아름답고, 마음이 고요해지는 도로이다. 월요일 이른 오전부터 사람이 얼마나 있겠나 싶었는데, 어이쿠, 주차장이 만차이다.
사실 약간의 내적 갈등을 했다. '그래, 굳이 오름을 오르지 않더라도 오는 길 내내 가을을 만났으니, 이것만으로도 행복한 드라이브였어.'라고 왼쪽 귀가 팔랑. '언제는 주차장이 만차아닌 적 있던가. 길가 한모퉁이 잘 세워두고 올라가면 되지 뭘.' 오른쪽 귀가 팔랑팔랑. 나는 언제나 오른쪽에 약하다.
그렇게 오름을 오르기 시작했다. 용눈이오름은 오름 중에서도 난이도 하위에 속하는, 비교적 오르기 쉬운 오름이다. 새별오름처럼 격한 경사가 있는 것도, 다랑쉬오름처럼 빡센 계단이 있는 것도 아니다. 약간의 가파른 경사에 조금 숨이 차오른다 싶으면 도착하게 되는 정상. 30분이면 족히 오름을 오르고, 내려가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조금 찬 바람이 불었지만, 그 조차 좋았다. 자연은 언제나 많은 것을 내어주지만, 한순간도 같은 모습을 하지 않는다. 계절에 따라, 날씨에 따라, 시간에 따라 모습을 달리하는 자연의 변화는 경이롭다.
시월, 월요일, 오전 산책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