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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여름의수박 Oct 21. 2018

지금은 내가 나를 돌보는 시간

특별히 뭘 했다고 말하기도 쑥스러운 일상을 회복하기까지

일을 그만둔지 한 달이 지났다.

"일주일만 쉬면 일하고 싶어 들썩일껄?"  일을 그만 둘 때, 누군가 나에게 그랬다. 일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렇게 오래 못 쉰다고, 아마 일주일 지나면 몸이 들썩일거라고. 나는 그때 그냥 웃고 말았다.

'제 평생 꿈이 한량처럼 사는 건데요.' 라고, 말할 순 없으므로.

한편으론 일주일 후의 내가 궁금하기도 했다. 지긋지긋한데 일이 정말 그리울까 싶어.


일을 그만뒀다. "일을 그만뒀어?!" 사람들은 모두 놀란다. "이직할거야?" "독립해서 회사 차리게?"

일을 그만뒀는데, 다들 그 다음 스텝을 이야기한다. "나? 아무계획 없는데."

이 나이에, 아무계획도 없이, 대책없이 일을 그만둘 수 있다는 사실에 모두들 놀란 눈치다.

그런 '나이'라는 것도 슬프고, 그런 나이의 굴레를 누가 지정했는지.

제일 못마땅한 것은 왜, 늘 미래를 담보하며 현재를 살아야 하느냐는 거다. 선행학습하듯 이후의 스텝을 미리 당겨 결정지어놓지 않으면 지금 현재가 몹시 불안하고 불행한 것처럼. 꼭 그렇게 뭐가 됐든 하고 있어야 하는 걸까. 지금 내 마음도 잘 모르면서, 앞으로의 내 미래를 지금 상황에 맞춰 결정하는 것은 옳은걸까, 그것이 정말 해답일까.


지금 이 순간, 나에게 중요한 것은 바로 나다.


몇 번의 이직을 통해 깨달은 바에 의하면, 일과 일상의 균형을 맞추지 않으면 그 어떤 것도 무용하다. 현재의 나를 돌보지 않은 채 불안한 미래에 쫓겨 무언가 서둘러 결정하고, 선택의 확신을 위해 또 다시 바삐 움직이는 동안의 나는 과거와 미래를 잇는 수단일뿐, 현재에 머물러 있을 수 없다. 일에 취해, 변변한 취미하나 없이, 집은 오로지 잠만 자는 숙박이 되는 일상의 반복. 현재의 나는 온데간데 없이, 지금의 상황은 오로지 미래를 위한 도구가 된다.


이것이 얼마나 불행한 삶인지 안다. 20대 후반의 끝무렵, 나는 그랬다. 일의 성취가 오로지 내 삶의 기쁨인냥, 오로지 삶의 시계추는 일에 의해 좌지우지 됐다. 마음이 가라앉는 이유를 몰랐고, 자주 몸이 아파오는 것도 몰랐다. 그냥 피곤해서 그런 줄만 알았으니, 내가 나에게 얼마나 무심했는지 모른다.  


일상이 붕괴되고, 마음의 작은 변화들을 눈치채지 못하면 나처럼 한번씩 모두 놓아버리게 된다. 그야말로 방전.

도저히 더이상 아무것도 못한 상태가 되어서야 일을 손에서 놓게 된다. 그렇게 온 몸으로 스톱을 외친 후에야 멈춰선다.


일을 그만둬도 조바심이 났다.  '이직할 수 있을까? 지금보다 괜찮은 회사로 갈 수 있을까? 이러다 계속 쉬게 되면 어쩌지?' 쉬면서도 자꾸만 취업사이트를 들락날락 거렸으니. 그땐 마음이 쉬는 법을 몰랐다. 일을 그만뒀지만, 여전히 마음은 바빴고, 이런저런 생각에 늘 속시끄러웠다.


지금은 어렴풋히 안다. 내가 조바심 낸다고 달라질 건 아무것도 아무것도 없을 뿐더러, 이직은 그 회사와 나와의 합을 서로 평가하는 자리라는 것을. 이전 회사에서 신입과 경력직 채용 과정에서 실무면접을 보면서 느낀 바는 그렇다. 그 사람이 가진 커리어가 아무리 좋아도, 회사에서 필요한 '상황'이 아니면 채용하기 어렵다는 것. 신입이 아니고서야 경력직은 회사가 처한 상황에 맞춰 사람을 뽑으므로 내가 부족해서 뽑히지 않았다고 자책할 필요가 전혀 없다. 그리고 정말 경력직은 문제해결 방식을 살펴본다. 그러니 회사가 나를 평가하듯 나 역시 내가 몸담을 만한 곳인가 회사를 꼼꼼히 평가할 필요가 있다.  



하여 지금의 나는 나를 돌보는 중이다. 일에 쫓겨, 상황에 쫓겨, 살피지 못하고 덮어두기만 했던 마음들을 찬찬히 살피는 중이다. 어떤 날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또 어떤 날은 날이 좋아 종일 걷기만하고, 또 어떤 날은 보고 싶은 친구를 보러 비행기를 탄다. 말이 통하지 않는 그 어느 낯선 도시에 취하기도 하고, 잘 하지 못하는 요리를 해보느라 주방이 온통 엉망이다. 책을 읽거나, 잠을 자거나, 몽땅 이불빨래를 하거나. 그러는 사이에 한달이 갔다. 특별히 뭘 했다고 말하기도 쑥스러운 그 일상을 회복하기까지 얼마나 오래걸렸는지 모른다.

 

몸은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쉴 수 있다. 연차가 있고, 휴일이 있으니. 일정을 조금만 조정하면 될 일이다. 마음이 쉬는 것은 쉽지 않다. 휴일에도 업무 전화가 오면 고민하다 받아야 하고, 다음주 보고일정이 잡히면 머릿속으로 일정체크하고, 아이디어 구상하느라 생각이 쉴 틈이 없다. 퇴근과 함께 마음도 내려놓고 와야 하지만, 번번히 실패하고 매듭짓지 못한 일을 생각하느라 쉴 새가 없다. 속시끄러운 생각을 잠시 멈출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 바로 잠드는 것이니, 주말 휴일의 반나절은 꼼짝없이 누워있게 된다.


몸이 피곤한 것보다 마음이 피로한 것이 더 고달팠다. 마음에 큰 돌덩이가 앉은 것마냥, 무겁고 마음이 쓰였다. 그런 날들이었다. 퇴사하고 나오며 업무 관련 연락처를 지우고, 단톡방을 나왔다. 업무를 위해 가입했던 SNS를 탈퇴하고, 메일링하던 자료들을 수신거부했다. 마음에 쌓인 피로를 단숨에 지울 순 없지만, 조금씩 할 수 있는 만큼 마음의 무게를 덜어나갔다. 읽고 싶었던 책을 잔뜩 쌓아놓고, 먹고 싶을 때 밥을 먹으며 책을 읽었다. 평일 오후 햇살 가득한 방에 누워 책을 읽는 일, 핸드폰을 의식하지 않게 마음껏 뒹구는 일, 그런 것들 말이다.  


그런 사사로운 것들을 하느라 한 달이 훌쩍 갔다. 그 사이 계절이 바뀌었고, 이른 초겨울이 빼꼼 얼굴을 내밀고 있다. 쉽게 선택하지 않으련다. 또 다시 직장인이 되면, 일을 시작하면, 나는 지금의 아무것도 아닌 일상이 금새 그리워질지도 모른다. 어떤 일을 선택하던지 간에 그것이 또 내 삶의 우선순위가 되는 순간, 나는 또 얼마나 많은 것들을 놓치고 살지 모르니. 그렇다고 조바심이 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나를 지키는 방법 쯤은 익혀둬야 할 일이니까. 어디에서 무얼하든, 내가 나로서 존재하고 싶다.


# 일상에서 느끼는 해방감은 실로 오랜만이다. 이런 해방감은 예전에 여행을 떠나야만 느끼는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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