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엉뚱하고, 재기발랄한 소설집이라뇨 :)
요근래 몇 주 동안 독서 침체기였다. 집안 구석구석 널브러진 책들을 정리하고자, 나홀로 <여백의 미>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읽지 않은 책들을 처분하고, 사놓고 쳐다보지 않은 책들을 다시금 펼쳐 읽으며, 책장에 남겨놓을 책들을 선별했다. 그러는 와중에 좋아하는 작가와 책들을 더러 잃었다. 그래. 잃었다는 표현이 가장 적절하다.
한때는 필사까지 하면서도 애정했던 작가의 단편집을, 거침없이 자유로운 영혼에 빠져 꼭 그리스를 가겠다고 마음먹게했던 책을, 가슴 절절하게 읽었던 소설을, 이런저런 이유로 좋아했던 책들이었다. 그때는 무지했다. 뭘 몰랐고, 소설 속 세상이라고만 생각했지, 그안에 든 이야기의 결이 어떤 사회적 현상과 결부할 수 있는지 잘 몰랐다. 사회적 맥락 없이 읽히는 이야기란 없다. 그것이 허구의 세상이든, 현재에 뿌리내린 이야기이든.
좋아했던 책들을 꺼내 읽다가 혼란스러웠다.
'이게 이런 내용이었던가?', '뭐지, 내가 기억하는 책 내용은 아닌데?".. 나는 당혹스러웠다.
내 추억 속에서, 기억 속에서 멋대로 재편집되어 마음속 원픽으로 자리잡고 있던 책들을 보고 있자니 허무했다. 단순히 취향의 변화라고 하기엔, 나이가 들고 생각이 더 단단해져 다르게 읽히는 것이라고 하기엔, 그렇게만 설명하기엔 아쉬운 점들이 많았다. 그렇게 책들을 처분했다. 한번 읽고 묵혀두지 말고, 종종 꺼내 읽어야겠다는 반성과 함께.
그러고 나서, 정세랑 작가를 발견했다. <옥상에서 만나요> 소설집은 주변에서 더 성화였다. 읽어보라고, 딱 네 취향일거라며, 확신하고 자신했다. 단편소설은 유난히 엉뚱하고, 재기발랄한 이야기에 더 끌린다. 진짜 말도 안 되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엄청 진지한 얼굴을 하고선 들어보라며, 이야기의 포문을 여는. 그리고 듣다 보면 어? 어? 싶다가 이야기에 홀라당 빠져버리는. 그런 이야기가 좋다. 장편과는 또 다르게 단편에서만 느낄 수 있는 호흡이 있어 좋다. 그런 이유로 단편소설집은 지금껏 김중혁 작가를 애정했다. 그의 엇박자와 엉뚱함은 정말 최고라고 여기며(에이 설마, 하면서도 그래도 혹시나 싶어 포털사이트에 검색하게 만드는 작가의 마력...).
고백컨데, 나는 정세랑 작가의 신작 <옥상에서 만나요>를 읽으며 몇 번이나 소리 내 웃었는지 모른다. 첫 번째 단편 <웨딩드레스 44>는 걸작이다. 특별할 것 없는 웨딩드레스를 입게 된 44명의 각기 다른 신부의 이야기는 결코 웨딩드레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래서 결혼이 도대체 뭔데라고, 묻게 되는 질문이다. 결혼이란 울타리 안에서 벌어지는 일상을 각기 다른 위치에서 44번 재조명한 이야기다. 와우. 이렇게도 단편을 쓸 수 있구나 싶었는데, 최근 작가의 인터뷰를 찾아서 읽어보니 이 단편을 두고 문단에서 말이 많았다고 한다. 소설 문법을 파괴했다고, 이건 단편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뭐 그런.
<해피쿠키 이어>는 단편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다. 이 단편을 읽으며 나는 정말로 정세랑 작가에게 두 번, 세 번 반했다. 중동계의 외국인 남성이 한국에서 겪게 되는 절대 흔하지 않은 에피소드인데, 잘려나간 한쪽 귀가 서서히 자라는 것도 모자라 때때로 맛이 달라지는 과자 맛이 나는 귀가 된다뇨 작가님! 네? 신박하다. 너무 좋다 이런 이야기.
<이혼세일>은 또 어떤가. 그녀가 입고 쓰는 건 다르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부러움의 대상이었던 그녀가 어느 날 이혼을 하더니, 그간 걸치고 입었던 모든 것들을 처분하는 이혼세일을 한다. 친구들은 그저 좋은 것을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단 생각에 좋아하지만 이건 그녀가 세상에 하는 '선언'이기도 하다. 그간 자신의 울타리였던 것을 마치 허물처럼 벗어던진다. 집도, 옷도, 가구도 모두. 결혼이 부동산으로 유지되는 것 같다며 결국 최소한의 생활용품만 챙긴 채 그녀의 새로운 울타리 캠핑 카라반으로 거처를 옮긴다. 그녀의 새로운 결정에 '위험하다'는 친구들의 우려에 "여자는 어디서나 위험해. 어떻게 살아도 항상 위험해."라고 말한다.
<해피쿠키 이어>를 제외하고 이 책의 화자들은 전부 여성이다. 여자로 살며 누구나 한 번은 처해질 수 있는 환경에서 능동적으로 선택해 나가는 것이(그것이 어떤 선택이든 간에 화자 스스로 무언가를 결정한다는 점에서) 참으로 좋았다. 여성을 소재나 도구로 삼지 않고, 화자로서 정말 재기발랄한 이야기로 풀어내는 것이 이토록 통쾌하고, 즐거울 수 있어 독자로서 참으로 행복했다. 더 많은 담론이, 서사가, 이야기가 나왔으면 좋겠다.
혐오와 편견 없이 이야기를 확장시켜 나가는 것이 어려운 일임을 안다. 비단 여성의 문제만이 아니다. 소수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누군가에겐 폭력이 되기도 한다. 알게 모르게 우리 생활에 스며들여 있는 혐오와 편견이 예기치 못하게 튀어나와 놀랄 때가 있다. 나조차 인지하지 못한 순간, 그렇게 툭. 알아차린 순간 그 자리에서 바로 정정한다. 다시는 실수하지 않도록.
얼마 전, 문학 기사에서 읽은 내용이다.
서효인 시인이 최근 펴낸 시집 <여수>의 작가의 말에 썼다는 말이다. "수년간 발표한 시를 모으니 그때는 몰랐던 여성 혐오가 지금은 보여 빼거나 고친 시가 몇 있다. 온갖 곳에 염결성과 예민함을 드러내면서 하필 방종했던 부분이다." 서 시인은 작품에서 여성 혐오가 보이는 시어를 고치거나 다시 썼다고 한다.
여하튼, 여러분.
올 겨울은 정세랑 작가입니다. 두 번, 세 번 읽으세요.
겨울에 귤 까먹으며 이불 안에서 읽기 그만이에요. 적당히 무겁고, 적당히 발랄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