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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글 Nov 07. 2022

나는 가끔 우리가 했던 사랑을 추억하고

몽글 006

그날은, 조금씩 해오던 마음 정리를 완전히 끝내버린 날이다. 온전히 혼자 있고 싶은 날이었는데, 혼자 있을 수 없는 날이었다. 하루 종일 울음을 꾹 참았다. 누구 하나 말 걸면 눈물을 톡 하고 떨어뜨려 주변을 민망하게 할 날이었다. 다행히 잘 참았다. 그러다 눈물을 왈칵 쏟았다. 그럴 줄 알았다. 요즘 내 주사가 우는 것이다. 근 두 달간 내 주사는 그랬다. 


사람은 사소한 것에 감동을 받는다. 나도 그랬다. 그 사소한 것 때문에 안 주려고 했던 내 마음을 나도 모르게 줘버린 것이다. 마음을 안 주려고 밀어냈지만 이미 마음도 주고 상처도 주고 끝나버린 것이다. 완결을 짓지 못한 관계에서, 아니, 완결을 지어버렸지만 마음을 다시 가지고 오지 못한 관계에서 한참을 힘들어하다가 나는 너를 생각했다.


가족 이외에 아무 이유 없이 나를 좋아해 줬던 처음이자 마지막 사람. 너다.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던 너. 나에게 날개를 달아주고 싶다는 너의 그 말이 그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조금은 이해가 된다. 지금은.


6년 전 너와의 마지막 이후로 나는 몇 번이고 연애를 연습했다. 어쩌면 너와도 연습이었을까. 고백 편지를 써와 놓고도 주지도 못하는 너를 다시 불러와 읽게 했다. 그게 우리의 시작이었다. 아프면 모과차를 끓여오고 꽃을 보내주는 너의 모습에 진심이 보였었다. 그때에도 여전히 나는 상처 속에 있었는데, 순수한 너의 모습들이 참 좋았다. 너는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것들을 보여주려 했고, 데려가 주었다. 우리는 일주일 내내 만나다시피 했고, 우리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너는 그 당시 나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


우리의 마지막이 끝나고, 시간이 지나 나는 다른 사람들을 만나려고 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사람에 대한 방어기제가 생긴 것 같다. 사람과의 이별을 겪어내는 과정이 나에겐 너무 힘들고, 그래서 시작조차 하지 않으려고 했었다. 상처를 받고 싶지 않아 먼저 상처를 주고, 결국엔 나도 상처를 받았다. 마음을 안 주려고 상처를 줬지만, 결국 마음도 주고 상처도 받았다. 사람에게 상처를 주면 비슷한 크기로 상처가 돌아온다는 얘기를 들었다.


나는 가끔 우리가 했던 사랑을 추억하고, 그때에도 아주 못났을 나를 아무 이유 없이 사랑해 줬던 너를 생각한다. 아마 내 평생 또 다른 너를 못 만난다고 할지라도, 한 번은 너를 만나본 걸로 만족한다. 내 인생에서 아주 짧은 시간들이었지만, 너는 우리가 만난 시간 그 이상으로 너를 추억하게 한다. 스물여덟 그때의 못났던 나를 사랑해줘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어차피 받는 상처라면, 이제는 상처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려고 한다. 나는 또 연습할 것이다. 조금씩 마음을 주고, 마음도 받을 줄 아는 사람이 되려고 한다. 나의 자기 방어가 모두 해제되는 또 다른 너를 만날 것이다.


또 다른 네가 될 것이다.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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