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에 반했다.
열일곱 살, 한 선배를 2년 넘게 짝사랑했던 그때처럼.
그러나 이번엔 쌍방인 것 같았다. 내가 좋다고 한다. 내 사랑이 이렇게 쉬울 리가 없는데. 너무 좋지만 불안했다. 바다와 육지 사이. 먼 거리가 주는 불안함에 맞장구치듯이, 상대의 식어가는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당신이 아니라고만 한다면 당장이라도 끝내줄 수 있을 것처럼, 당신의 감정을 물었다. 꼭 그렇게 해줄 수 있는 것처럼. 이때까지 단 한 번도 끝이 어렵지 않았던 사람인 것처럼.
끝은 사실 내게 너무 어려운 것이었다.
첫눈에 당신에게 반했던 그날, 나는 당신이 행복하기만을 바랐다. 당신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고, 내가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당신과 함께 해나갈 추억들을 그려나갔다. 나에게 사랑을 줬던 수많은 이들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당신에게만은 모든 것을 주고 싶었다.
마치 볼 빨갛게 짝사랑하던 열일곱의 소녀처럼.
내가 사랑을 하면 이렇게나 헌신적인 사람이구나. 하루 종일 당신 생각만 하는구나. 쿠키 집에 가면 쿠키를 좋아한다는 당신이 생각났고, 맘에 드는 옷을 찾으면 당신에게도 선물하고 싶었다. 당신은 아마 몰랐을 것이다. 당신이 얼마나 내게 사랑을 받았는지. 많이 좋아한다고 전했던 그 말로는 얼마나 표현이 안 되는지.
그런 당신과 다시 만나기로 한 그 전날, 아니 그 일주일 전, 나의 섭섭함으로 가득 찬 투정 끝에 그는 끝을 고했다. 나는 마지막 진심을 짜내어가면 붙잡았다. 그리고 이별은 유예되었다.
그러다 우리가 만나기로 한 그 전날, 그는 내게 정말로 끝을 고했다. 불확실한 미래와 마음의 거리만큼 멀었던 물리적인 거리, 장거리 연애를 오래 했던 그는 이제는 남들처럼 평범한 연애를 하고 싶다고 했다. 더는 비틀어 짤 것도 없는 마음을 짜내어 붙잡아보다가 그를 놓아주었다. 당신이 행복해지는 선택을 해서 다행이라고.
그렇게 우리는 서로 만난 적이 없는 사람처럼 각자의 길을 가기로 했다. 진심과는 반대로 행동하던 나의 과거가 후회가 되어, 이번에는 진심만을 말했었다. 좋아하는 감정, 서운한 감정 모두 쏟아내려고 했다. 그게 표현인 줄 알았다.
그러나 그 섭섭한 감정들이 어쩌면 당신에게는 짐이 되었고, 우리의 가보지 못한 미래들을 상상하게 했으며, 우리를 시작도 못한 채로 끝을 내게 한 것 같다.
역시 그렇지. 내 사랑이 이리 쉬울 리 없지. 내가 이렇게 쉽게 사랑받을 리 없지.
나는 한동안, 여전히 당신을 짝사랑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