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타심에 속지 마세요.
부산에서의 마지막날, 나는 온천을 끝내고 한의원에 갔다.
그리고 자주 만났던 옹수커플과 카페에서 만나 마지막으로 얼굴을 봤다.
평온하고 한가로운 일상,
나의 일상의 포커스는 온전히 나에게 와있었다.
마지막 코스는 가족과 보내려고 엄마와 저녁식사를 하기로 했다.
언제나 그렇듯 "저녁 뭐 먹을래요?"라는 질문에
엄마는 습관처럼 나의 의사를 묻는다.
꼭 "네가 먹고 싶은 거 먹자."라고 하신다.
이번 부산일정에서는 되도록 아침은 당신이 차려준 것으로 먹었다.
받을 줄 모르는 엄마, 주는 행복에 큰 기쁨을 느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건 좋았는데, 이렇게 외식을 할 때는
한 명의 의견은 줄이는 것이 최선인가 보다.
곰곰이 돌이켜보니 엄마와 밥을 먹을 때
나는 엄마를 생각해서 메뉴를 정한다고 생각했는데,
그 안에 슬쩍 내 취향이 들어가 있었던 것 같다.
오늘도 엄마는 내가 먹고 싶은 걸 먹자고 외치고 있었다.
또 서로가 서로를 서툴게 위하느라 배가 산으로 간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오늘은 엄마가 먹고 싶은 데로 가자고 말했다.
엄마는 최근 딱 한번 내게 "너도 철딱서니야."라는 말을 했었다.
워낙 칭찬과 응원의 말을 자주 전하며 내게 의지했던 엄마였기 때문에
스스로 그녀를 지키는 버팀목쯤 되는 줄 알았다.
그래서 내가 하는 말이 바르고 어른스럽다고 생각했는데 이건 착각이었나 보다.
난 결국 내 취향대로 먹고 싶었던 철부지였던 것이다...!
나는 이타적인 편이라고 생각했다.
이 생각은 역설적이게도 산으로 가는 결론을 지어왔겠지만.
나는 관계를 맺으며 어떠한 결정을
이제껏 상대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내 판단으로 끝낸 최선의 방법을 시전 하면서.
약간은 가스라이팅 같은 나의 이 생각은 위험하다고 인지했다.
이 부분은 회사를 다니면서도 느낀 바가 있었다.
거울치료라는 게 가장 효과가 좋다.
내게 도움이 된다며 본인의 잣대로 행동하는 상대가 있었다.
나는 거부감이 들었다.
살다 보면 너무 다가와 도움 주는 말로 회유하는 가스라이터들이 간혹 있다.
왠지 모르게 싸한 느낌이 드는 상대를 보면 이런 특징을 갖고 있었다.
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나를 위해 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타인을 배려해서 하는 생각과 행동이 타인에게
100% 도움이 되리란 보장이 없다는 것을 어느 순간 알게 됐었다.
최근에는 내가 어떠한 결론짓는 생각을 마치기 전에, 상대가 바라는 게 뭔지 묻곤 한다.
그리고 겸손을 더하려 노력한다.
나는 최대한 상대의 모든 걸 지레짐작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선명한 마음을 묻고자 하였다.
어느 정도 문이 닫힌 상대에겐 어떠한 조언이나 말이 필요 없다.
단순히도 나와의 사이에서는 거리가 필요하다는 뜻이니까,
상대를 위해서 그 거리를 지켜주는 것이 나의 최선이었다.
믿고 의지하며 어려움을 나누는 상대도 있다.
내게 스스로의 어려움을 전해주는 분에게는 스스로 답을 찾는 동안
옆에서 다정히 지켜봐 주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인 것 같다.
이해와 공감, 같은 가치관 모든 게 완벽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서이다.
나는 꽤나 직설적이고 단호하게 맞고 틀림을 말했던 시절이 있었다.
나이가 좀 들자 나는 그렇게 하지 않기로 했었다.
이타적이라는 말은 참 어려운 것 같다.
엄마처럼 상대방을 배려해서 속마음을 말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산으로 가기 딱 좋을 것이다.
우리 모녀는 가장 위험한 조합으로,
이제껏 많은 배를 산으로 옮겨놓았을 것 같았다.
모두가 만족할 수는 없는 법, 엄마는 내가 좋아하지 않는 코다리찜으로 정했다.
거기에 나는 의견을 내지 않았다.
이 진정 이타적인 식사가 아닐 수 없었다.
적당히 먹고 숟가락을 내려놓는 나를 보고
엄마는 다른 곳 갈걸 그랬다며 고개를 휘휘 돌렸다.
백 프로 완벽한 식사는 아니지만 80%쯤 완벽한 식사였던 것 같다.
나는 엄마의 코다리찜 사랑을 알게되었고, 엄마는 나의 싫어하는 음식의 부류를 추가했다.
나는 처음 알게 되었다.
생각보다 우리는 서로를 모른다.
그렇게 부대껴 살았으면서.
엄마의 코다리찜 사랑, 빠르게 슥슥비벼 먹어버리는 엄마의 모습을 보며 알게 되었다.
엄마는 아귀찜보다 코다리찜을 더 좋아한다.
이타심의 순기능을 발현하기.
서로를 위해 관심으로 알아가는 섬세한 배려를 시작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나는 남을 위해 뭘 했어!"라는 말은 이타심을 가장한 본인 내세우기 전략이다.
그렇게 잔잔한 저녁시간을 마친 우리.
내일 새벽 일찍 비행기를 탈 나를 위해 우리는 아쉬운 취침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