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두 개의 집이 있다.
참 많은 사람들이 공항에 모여들었고 나도 그중 하나였다.
뜨끈한 국물이 당기는 새벽, 나는 어묵국을 사 먹었다.
어릴 때 정말 많이 먹었던 떡볶이와 어묵, 그리고 물떡.
어묵수프가 녹은 가짜 어묵국 안에 잘라둔 어묵들을 종이컵에 넣었다.
전자레인지에 돌린 것을 건네어 받았다.
공항에서 느낀 인스턴트 어묵의 맛은 더없이 투박했다.
음식의 향과 멋 하나 느껴지지 않은 맛의 향연.
인스턴트 어묵을 먹고 아침 7시 20분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향해 날아올랐다.
나는 어린 시절 뜨끈한 어묵국물 먹으며 나무젓가락에
물떡 꽂아주시는 아주머니를 기다리던 게 생각났다.
이제는 왕만두, 피카추 돈가스 따위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나마 오징어게임을 통해 달고나는 부활했지만
그 예전 설탕 뿌려주는 쪽자 기계를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다.
웬 공터에 자리한 뜬금없는 이백 원짜리 퐁퐁도 없다.
초등학교 시절, 우리 집 근처에 퐁퐁을 운영하시는 아주머니가 계셨다.
활동적이던 나는 아주머니께 알바 좀 시켜달라며 초롱 초롱한 눈으로 말을 건넸다.
어차피 주말에 쉬시지 않냐고, 주말에 제가 지키고 있어 보겠다며 설득했다.
퐁퐁 공중회전 2회 텀블링을 연습 중이었던 나는
단골집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최고의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아침 일찍 아주머니를 따라 퐁퐁의 개시를 시작했다.
아주머니와 같이 스프링을 달고 커다란 두 개의 틀로 연결된 퐁퐁을 설치했다.
그리곤 돈 주머니를 건네받았다.
10분에 200원 30분에 500원이라는 정책을 건네받고 알바를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웃기다.
3학년도 되지 않은 초등학생이 아르바이트한다고 퐁퐁을 지키고 돈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에 퐁퐁 타러 온 아이들도 내게 돈을 주고 퐁퐁을 탔다.
시간이 되면 나가라고 했고 애들도 말을 참 잘 들었다.
나의 착각 속에는 어린 시절 숫기가 없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와 생각해 보니 초등학생 때는 겁 없는 골목대장 느낌이었나 보다.
옆집 동생은 알바 중인 나를 위해 집에서 라면을 끓여서 도시락통에 담아왔다.
퉁퉁 불은 라면을 먹으면서 퐁퐁옆에 있는 쪽자를 실컷 만들어 먹었다.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마감시간이 되어서 해가 어둑해져 올 때, 3000원 정도의 아르바이트비를 받은 것 같다.
내 나름은 운영 중이니까 간식비로 쪽자 정도는 써도 괜찮다는 합리적인 기준을 가졌다.
어린 나는 나름대로 알바를 즐기고 있었다.
커서는 생의 최초의 퐁퐁 알바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그때 내게 알바를 맡겨주신 아주머니는 어떤 마음이었을지 상상이 안 갔다.
어차피 주말에 쉬면서 놀리는 거 알바시켜 볼까?
라는 마음도 있었겠지만
일해보고 싶다며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는 어린애를 거절할 수 없었을 것 같다.
어묵하나 먹는데 별생각이 다 들었다.
서울 있으면 떠오르지 않는 잡다한 생각과 기억들도 고향에 가면 마구잡이로 떠오른다.
36의 나이가 되니 마음의 여유 가득히 추억거리들을 누리며 지낼 수 있는 고향이 너무도 편안하고 좋았다.
32살? 34살 때만 해도 서울이 너무 좋다고 외쳐대던 나였는데
금세 일희일비하는 가벼운 사람이 되었다.
나에겐 두 개의 집이 있다.
사랑하는 반쪽과 고양이가 함께 사는 러브하우스와
내 추억과 가족을 보호해 주는 하늘나라로 떠나버린 아버지와 엄마의 집.
타향살이나 사회 속에 지친 이들에게
어린 날 추억을 되새겨주는 글을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다.
어릴 때 느꼈던 성장을 위한 갈망, 멀게만 보였던 미래는 어느새 현재가 되어 머무른다.
그 시간은 노력하고 애쓴 만큼 빠르게 흐른다.
우리에게 시간이란 현재를 쓰는 일이기도 하지만,
과거에서 좋았던 것들을 되새기는 시간을 통해 치유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현재를, 미래에서 쓸 추억으로 만들려는 노력을 다해 사용하기를 추천한다.
거기에 과거의 추억도 활용하면 좋을 것이다.
우리에게 지금 이 시간은 되돌아오지 않고,
가슴과 뇌리에 깊게 새겨질 정말 소중한 순간임을 잊지 않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