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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주일장춘몽 Apr 26. 2022

길 잃은 장정소포

그렇게 늦게 도착할 줄은 몰랐다.      


아들은 2021년 4월에 입대했다. 경기도 북쪽에 있는 사단 신병교육대는 우리가 살던 곳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부대까지 가는 코스도 드라이브 삼아 가끔 다니던 길이라 낯설지 않았다. 다행이었지만 그 다행은 오래 가지 못했다. 입대 3주 후에 먼 지역으로 이사를 해야 했으니까.

      

훈련소에 가면 입고 간 옷과 물건들을 작은 택배 상자에 넣어 집으로 보낸다. 일명 ‘장정소포’. 사회의 인연을 잠시 동안 끊어버린다는 의미인지 입고 있던 양말이며 속옷까지 남김없이 보낸다. 오래전에 집으로 배달된 장정소포 속 흙이 잔뜩 묻은 오빠와 동생의 옷을 보고 엄마가 무척 우셨던 것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그런데 내 아들의 장정 소포라니...     


코로나가 극성일 때라 훈련소에서 먼저 2주의 격리기간을 거쳐야 했다. 혹시라도 확진이 되면 언제든 훈련소를 나와야 하는 상황이라 2주 동안은 장정소포를 발송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런 사정을 모르는 아이는 장정소포에 이사하기 전 주소를 적었다. 이사하려면 아직 3주나 남은 상황이었으니까. 그런데 소포 발송이 점점 늦어졌고 아이는 난생 처음 겪는 초긴장 상황에 택배 주소 같은 건 챙길 여력이 없는듯 했다.      


입소한지 3주 뒤 주말에 처음으로 아이한테서 전화가 왔다. 바짝 군기가 들어있는 아들의 목소리에 눈물이 쏟아지고 목이 매여서 나도 남편도 괜찮냐 진짜 찮은거 맞냐만 반복했다.


그런데 두번째 통화에서 아이가 택배가 도착했는지 물었다. 다른 동기들은 택배가 집에 다 도착 했다며 주소도 공주로 정정했다고 했다.  걱정 하는 아이한테는 괜찮다고 늦게라도 올 거라고 했지만 아이 물건이 분실됐을까봐, 다른 것도 아니고 장정소포를 못 받게 될까봐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기다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었다. 나중에는 어느 정도 포기 하고 있었다. 그래야 덜 서운할 테니까.   

  

소포는 아이가 훈련소에서 퇴소하기 직전에 가까스로 도착했다. 전에 살던 집으로 갔다가 다시 온 것 같았다. 프린트 된 송장의 주소를 화이트로 지우고 그 위에 이곳 주소를 꾹꾹 눌러 쓴 건 영락없는 아이의 필체였다. 택배 상자 안에는 아이의 옷과 가방, 신발 외에 몰래 쓴 편지 한 통이 있었다. 입대하는 날 새벽에 급하게 쓴 편지를 아이 가방에 몰래  넣어뒀는데 아이도 똑같이 깜짝 편지를 쓴 거였다. 눈물 없이는 읽을 수 없는 감동의 편지였다. 장정소포가 중간에 사라졌으면 이 소중한 편지도 받지 못했을 거라 생각하니 돌아 돌아 도착한 택배가 얼마나 고마운지 절이라도 하고 싶었다.     


 

훈련소에서 몰래 쓴 아들의 편지



내일 모레면 아들이 입대한지 390일만에  두 번째 휴가를 나온다. 일주일 짧은 시간 동안 아이는 할 일이 많다. 엄마아빠한테 내 줄 시간은 얼마 되지 않지만 그래도 엄마는 준비할 것이 많다. 아들 맞을 준비는 힘들어도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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