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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주일장춘몽 Apr 26. 2022

집 지키는 개 신세

하루 종일 입 한번 뗄 일이 없다. 남편 출근하고 나서 퇴근 해 들어올 때까지 간간히 걸려오는 전화 말고는 말 할 일이 없다. 일 년이 다 돼가는 요즘은 전화도 뜸하다.


나는 전화 통화가 싫다. 원래도 말하기 좋아하는 성격이 아니지만 방송작가 일을 하면서 통화가 더 부담스럽고 싫어졌다. 사실 방송작가와 전화 통화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숙명 같은 사이다. 아이템을 찾을 때도 취재를 할 때도 모든 시작은 전화다. 지금이야 인터넷이 발달해 손가락으로 무엇이든 찾을 수 있는 시대가 됐지만 내가 한창 일을 배우고 취재를 할 때는 잡지와 신문을 뒤지고 전화통을 끼고 살아야 했다. 물어보고 취재하고 확인하고... 통화는 늘 일이었고 부담이었다. 전화기는 꼴도 보기 싫었고 전화벨은 피곤한 아침 알람 소리보다 더 듣기 싫었다. 그래서 지금도 일이 아닌 이유로는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여간해서는 전화하지 않는다. 친한 친구와의 장시간 수다 통화도 즐기지 않는다. 얼굴 마주 보고 하는 대화는 즐거운데 수화기 너머 대화는 영 불편하다.


이곳에서는 눈 씻고 찾아봐도 차 한 잔 함께 마실 사람이 없고, 시간을 보낼 만한 장소도 없다. 그러다보니 장을 보거나 꼭 필요한 볼 일 외에는 집 밖으로 나갈 일이 없다. 남들은 코로나가 심각한 시기라 일부러 조심하느라 그런다지만 나와는 상관없는 얘기다. 어차피 밖으로 나갈 일이 없다.


남편은 평소 외향적이지 않은 내 성격만 생각하고 이곳에 내가 아는 사람이 전혀 없고 외부와 교류가 없다는 것을 크게 걱정하지 않는 듯 했다. 하지만 나는 히키코모리가 아니다. 교류를 적극 즐기지 않을 뿐, 성향이 맞고 편안한 사람들과의 만남은 분명 있었다.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하루 종일 혼자 집에서 꼼지락 거리다가 저녁 시간 맞춰 밥 아줌마로서의 업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퇴근해서 들어오는 남편을 맞는다. 신혼 때도 이렇게 살아본 적이 없다. 몸은 한없이 편한데 마음은 날로 무거워진다.


어느 날 남편한테 ‘내가 요즘 집 지키는 개가 된 것 같아’라고 했다가 두고두고 뒷말을 들었다. 펄쩍 뛰면서도 본인 역시 마음이 무겁다고 했다. 자기는 마음이 무겁기만 하지. 나는 마음이 무겁다 못해 바닥에 떨어졌는데...  


내가 가진 몸뚱이 가운데 가장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이 마음인 것 같다. 비 오는 날이면 스타일을 포기해야 하는 극강의 곱슬머리도 돈과 시간을 투자하면 곧게 펼 수 있다. 힘들고 노력이 필요하긴 하지만 무거워진 몸을 가볍게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속에서 잔뜩 꼬인 마음을 풀거나 바닥까지 내려앉은 무거운 마음을 반짝 들어올리기란 돈과 시간, 노력만으로는 어렵다. 아니, 내 돈과 내 시간 내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뭔가 계기가 있어야 하고 주변의 협조가 있어야 한다.


며칠 전 ‘동물농장’이라는 TV 프로그램에서 주변의 조그만 자극에도 마구 짖으며 흥분하는 개를 봤다. 도심의 빌라에서 살다가 주인이 일부러 개를 위해 전원주택으로 이사를 했다는데 그 때부터 힘들어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남의 얘기 같지 않다. 그 개는 적정 자극이 갑자기 늘어 불편한 것이고 나는 적정 자극이 갑자기 사라져 불편한 거다. 익숙한 공간을 갑자기 바꾼다는 것은 생각보다 큰일이다. 개한테도 그런데 하물며 사람한테야... 그 개의 심정을 이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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