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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주일장춘몽 Apr 26. 2022

공주 구도심 여행

나에게 유럽 여행의 가장 흥미로운 점을 꼽으라고 하면 단연 구도심 산책이다. 마치 시간 여행을 하는 것처럼 오래된 돌길을 지나 구도심으로 들어가면 보이는 모든 것이 아름답고 흥미롭다. 지나간 시간의 내역이 한눈에 보이는 고풍스러운 골목길과 건축물, 문화의 깊이를 짐작하게 하는 성당과 시청 앞 광장, 주변에 흩어져 있는 작은 상점들, 그곳에서 살아가는 여유로워 보이는 사람들...


일률적으로 비교하기는 뭣하지만 공주도 그런 도시다. 공주는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문화유산 도시다. 지난 2015년 공주와 부여, 익산에 남아있는 백제 유적이 ‘백제역사유적지구’로 유네스코에 등재된 것이다.

내가 사는 동네는 공주대학이 있는 공주 신도심 쪽이다. 집에서 출발해 30분 정도 걷다보면 금강변에 닿는다. 금강의 남과 북을 잇는 3개의 다리 가운데 중앙에 위치한 금강교는 왕복 2차로 규모의 작고 오래된 다리다. 다리의 반은 차량이 편도 운행하고 나머지 반은 사람들이 통행한다. 여유롭게 걸어서 금강교를 건너면 공주 구도심으로 들어서게 된다. 백제 웅진 도읍시대에 쌓은 공산성은 지금도 공주시의 상징으로 5세기에 쌓은 성벽이 잘 보존되어 있다. 성벽 안쪽은 아늑하고 성벽에 오르면 금강과 공주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공산성의 야경은 유럽의 성곽에 제법 견줄 만 하다.


공주는 과거에 충청감영이 있던 곳이다. 그래서인지 공주 인근에는 천주교 순교성지가 많다. 제민천을 사이에 두고 공산성 건너편에는 황새바위 성지가 있다. 황새바위 성지는 천주교 박해가 극심했던 18세기부터 100여 년 동안 수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처형된 장소다. 황새가 주로 서식하던 바위 언덕에 황새 모양의 칼을 쓴 천주교 신자들이 끌려와 공개 처형 된 아픈 역사의 장소. 나와 남편이 일요일마다 미사를 드리는 곳이기도 하다. 공주 구도심의 언덕 위에 자리한 120여 년 역사의 중동 성당과 충남역사박물관, 그 사이 돌길은 고풍스럽고 아름답다.


1일과 6일은 산성시장 장날이다. 산성시장은 공주 인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전통시장이다. 장날이면 평소 한적하기 짝이 없는 공주 구도심에 차량정체가 생길 정도지만 굳이 장날이 아니어도 옛 시장의 정취를 제대로 맛 볼 수 있는 곳이다. 시장 인근에는 저렴하고 괜찮은 음식점들이 세월을 이어가고 있고 제 철 농산물을 가지고 나온 할머니들과 단골을 틀수도 있다. 단, 계산은 현찰 박치기!


낡은 담벼락에 그림과 시로 화사한 생명을 불어넣은 나태주 골목길, 과거 하숙집을 재현한 공주 하숙촌, 작고 오래된 다리들이 이어지는 제민천은 새로운 것, 반짝거리는 것을 쫓아 오랜 시간의 무게와 깊이를 헌신짝처럼 내다 버린 우리의 조급증을 반성하게 만든다. 제민천 일대에는 몇 년 전부터 한옥 컨셉의 카페와 스테이 라고 불리는 여행자들의 숙소가 속속 들어서고 있다. 옛날 한옥을 고스란히 카페나 음식점으로 이용하는 집도 있고 한옥 모양으로 완전히 새로 만든 집도 있다. 문 앞에 현금만 받는다고 당당히 써 붙인, 그래서 첫 인상이 썩 좋지 않은 작고 오래된 분식집도 들어가 맛을 보면 흔쾌히 지갑을 열게 된다.


공주는 신도심 끝에서 구도심 끝까지 한 시간 반이면 산책 삼아 기분 좋게 걸을 수 있다. 그만큼 작고 한적하다. 하늘이 높고 바람 없는 날,  찰랑찰랑 고요한 호수의 수면 같은 공주는 그런 도시다. 대도시보다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것 같다. 적어도 이곳에 내려와서 일 년 남짓 살고 있는 내 느낌에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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