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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주일장춘몽 Apr 26. 2022

밥 아줌마

내가 공주로 내려온 가장 큰 이유는 밥이다.


남편은 절대 아니라고 펄쩍 뛴다. 자기는 절대 밥에 연연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하지만 나의 공주살이 제 1 목적은 밥이다. 내 밥이 아닌 남편의 밥. 남편은 원래 먹는 것에 관심이 많은 편이 아니다. 입이 짧지는 않지만 있으면 먹고 없으면 또 그런대로 만다. 게다가 과민성대장증세가 있어서 먹는데 예민하다. 이동할 일이 있거나 중요한 일을 앞두고는 물 마시는 것도 조심스러워 한다. 집이 아닌 곳에서는 먹는 것 보다 참는 것을 더 편안해 한다.  


주말부부로 살 때는 남편이 내려가는 월요일 새벽마다 닷새 동안 먹을 이런저런 것들이 들어있는 묵직한 백팩을 지고 집을 나섰다. 가지고 가도 다 먹지 못하고 버리는 것이 태반이지만 그렇다고 챙기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이곳으로 내려올 때 스스로 다짐했다. 내려가면 남편 밥을 제일 신경 써 주겠다고.


집에서 학교까지 15분이면 충분한 거리지만 남편은 매일 아침 7시 30분에 출근한다. 처음 임용됐을 때, 강의 준비와 익숙하지 않은 학교 일 때문에 일찍 출근하기 시작한 것이 이런저런 보직을 거치면서 습관처럼 굳어졌고 비교적 업무가 가벼워진 지금도 계속되는 것이다. 남편이 7시 30분에 집을 나서려면 나는 늦어도 6시에는 일어나야 한다. 일어나자마자 군에 있는 아들과 멀리 떠나온 부모님을 위해 기도하고 나면 6시 30분. 그 때부터 바쁘게 아침밥 준비를 시작한다.


이곳으로 오기 전 나의 아침은 ABC쥬스 한 잔이었다. 채소나 과일을 잘 챙겨먹는 편이 아니었고 때때로 변비 도 있었기에 아침 식사로 ABC쥬스가 딱이었다. 아이도 아침마다 국과 반찬을 챙겨먹는 타입이 아니었기에 주로 간단히 먹을 수 있는 메뉴를 선호했다. 그런데 이곳에 오니 그럴 수가 없었다. 밥을 먹든 빵을 먹든 간단히 하기가 뭐했다. 밥을 차릴 때면 따뜻한 국이 있어야 했고 빵을 낼 때도 신선한 채소와 단백질을 신경 써야 했다. 처음에는 아침이 너무 과하다고 부담스러워하던 남편이 2~3주 지나자 아침을 이렇게 먹고 가면 오전 내 든든해서 점심을 허겁지겁 먹지 않게 된다며 좋아했다.


내가 내려온 이후 남편은 저녁 약속을 대폭 줄였다. 혼자 있을 때야 저녁밥을 때우고 시간도 때울 겸 거의 매일 저녁 약속을 잡았다. 주로 비슷하게 기러기 신세인 동료들과 함께였고 꼭 중요하지 않은 일약속도 마다하지 않는 것 같았다. 하지만 집에 자신의 퇴근을 기다리는 가족이 있으니 전처럼 밖에서 보낼 이유도 없었고 무엇보다 남편은 나를 혼자 두고 마음 편히 시간을 즐길 만큼 그렇게 간이 크지 않은 사람이다.


남편은 소위 말하는 2식이, 3식이가 됐다. 물론 나는 이곳에서 시간이 많다. 많아도 너무 많다. 만날 사람도 없고 갈 곳도 없다. 하지만 지금껏 이렇게 많은 밥을 하면서 매일 매일을 살아본 일이 없다. 아이 밥 먹이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살았지만 아이(혹은 청소년)의 밥은 어른의 밥과는 다르다. 똑같이 영양을 고려하지만 아이들은 먹는 것과 먹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가끔 밖에서 먹는 밥을 좋아하는 효도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50줄의 남편은 완전히 다르다. 15년 가까이 주로 밖에서 밥을 먹었기 때문에 ‘집밥’에 대한 애착이 크다. 과민성대장증세 때문에 밖에서는 마음 편히 먹지 못하는 것도 큰 이유다.


언젠가 남편에게 ‘나는 밥 아줌마야. 밥 해주러 내려왔어.’라고 했더니 절대 그렇게 생각하며 스스로의 가치를 낮추지 말라고 정색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의 나는 밥 아줌마다. 일 년 째 밥 아줌마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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