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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주일장춘몽 Apr 26. 2022

난생 처음 지방 살이

나는 서울깍쟁이라 불리는 서울내기다. 


뒤 주민번호가 20으로 시작되는 국가가 보증하는 서울내기다. 하지만 단언하건데 나는 깍쟁이의 특징적 기질을 가지고 있지 않다. 오히려 잘 알고 지내던 지인들은 나더러 지방 출신이 아니냐고 할 정도로 서울깍쟁이와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낯을 가리는 성향과 간섭 하는 것도 간섭 받는 것도 싫어하는 성격때문에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보이기도 하는 것 같다. 깍쟁이는 아니지만 어쨌든 나는 서울내기가 맞다. 


남편의 고향은 경상북도 영주다. 내가 난생 처음으로 부딪혔던 지방색이기도 하다. 영주는 경상도 중에서도 대표적으로 보수적인 지역이다. 처음 결혼해서 느끼기에 그곳은 내가 살던  20세기 말이 아니었다. 한참 여기저기서 밀레니엄을 얘기할 때 그곳은 100~200년 전 조선의 어느 시기쯤인 듯 했다. 그 곳에서는 내가 아는  상식의 기준이 달랐다. 그것 때문에 많이 힘들었고 상처 받았고 그 힘듦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런데 이곳에 오니 이곳 역시 21세기가 아니었다. 공주는 백제의 역사가 남아있는 고도(古都)이다. 도심 한 가운데 금강이 흐르고 고대의 산성과 역사 유적이 잘 보존되어있는 고풍스러운 도시다. 구도심 곳곳에 잘 손질된 한옥이 다양한 쓰임새로 여전히 살아있고 최근 들어 개성 있는 작은 가게들이 속속 들어서면서 도심의 분위기를 특색 있게 바꿔가고 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이곳에 거주하는 주민이 아닌, 어쩌다가 한번 다니러 오는 나그네의 입장 한정이다. 

공주에는 전국 어디에나 다 있는 대형 마트가 없다. 쇼핑몰은 언감생심이다. 장을 보려면 인근 세종까지 가거나 산성시장을 이용해야 한다. 동네마다 할인마트가 있긴 하지만 내가 원하는 물건을 찾기가 쉽지 않다. 우울할 때면 찾아가서 몇 시간씩 보내다 오던 대형 서점도 없고 귀찮을 때면 슬리퍼를 끌고 찾아가던 테이크 아웃 음식점도 찾기 어렵다. 운동 삼아 공주대 앞까지 걸어가면 그나마 상가들이 있긴 하지만 ‘밀집’이란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전에 살던 곳은 신도시에서도 학원이 밀집해 있는 곳이었다. 학원 수업이 끝나는 밤 10시가 되면 동네가 들썩거렸다. 학원에서 쏟아져 나오는 학생들, 아이를 데리러 온 부모들, 마지막 손님을 잡으려는 간이음식점 불빛으로 그야말로 불야성이었다. 그런데 공주는 밤 8시가 넘으면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다. 거리가 쥐죽은 듯 조용하다. 고요하고 한적한 지역이란 말 외에는 어울리는 말이 없다.


복잡하고 화려한 것을 좋아하는 성격은 아니다. 하지만 그동안 내가 일상으로 보고 겪으면서 살았던 세상과 너무 다른 곳으로 왔다는 것에 쉬이 적응하기가 어려웠다. 정류장에서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다가 어쩔 수 없이 택시를 호출해야 하는 것이 짜증스러웠고 가까운 곳에서 필요한 물건을 살 수가 없어 매일 문 앞에 높여지는 택배 상자가 서글펐다. 


이래가지고서야 2년이 될지 4년이 될지 모르는 이곳 생활에 적응할 수 있을까? 뭔가 정을 붙이고 재미를 찾을만한 것들을 발견해야 한다. 점점 무력해지는 나를 위해서. 속도 없이 행복해하는 남편의 평화를 깨지 않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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