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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주일장춘몽 Apr 28. 2022

글쓰기 직업병

고백하건데 나는 글쓰기가 어렵다.     


나는 직업병이 있다. 글을 쓸 때 끊임없이 자기검열을 하는 것이다. 방송 글은 객관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드라마는 예외로 한다. 전혀 객관적이지도 공감 되지도 않는 드라마가 많으니까) 자기 생각만으로 불특정 

다수의 시청자가 보는 방송 프로그램을 만들고 내레이션을 쓸 수는 없는 일이다.

     

논리적이지 않으면 공감 받지 못한다. 모든 주장에는 근거가 뒷받침 되어야 하고 그 흐름이 자연스러워야 한다. 이리저리 튀는 글은 힘이 실리지 않는다.     


시청자가 이해하기 쉽게 써야 한다. 방송작가로 처음 원고를 쓰기 시작한 것이 아침 정보 프로그램이었는데 그 때 사수였던 선배작가는 초등학교 5학년 남자아이가 이해할 수 있도록 써야한다고 했다. 절대 초등학교 

5학년 남학생을 무시해서가 아니다.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편안하게 볼 수 있으려면 그 정도 수준이 가장 적합하다는 뜻이다. 일반 다큐멘터리는 중학교 2~3학년 정도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을 적정선으로 삼는다.     


객관적이고 논리적이면서 이해가 잘 되는 글을 쓰기 위해서 끊임없이 회의하고 검증한다. 구성안을 쓰고 고치기를 무한 반복. 내레이션 원고도 마찬가지다. 더빙 직전까지 고치고 고치고 때로는 고쳐지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무엇을 써도 되고 어떻게 써도 되는 글이 더 쓰기 어렵다. ‘자유’가 오히려 힘들다. 어쩌다 남들이 써놓은 글을 보면 어찌 그렇게 편안하고 자연스러운지... 나는 왜 이렇게 사고와 표현이 경직되어 있는지... 내가 작가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살아도 되는 것이었는가 부끄러울 때가 많다.     


나는 자유롭지 못하다. 글쓰기의 가장 큰 매력은 미적 센스가 떨어지는 사람도 음정과 박자에 자신 없는 사람도 자기의 느낌과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 자유가 어렵다. 글쓰는 기술은 있을지 몰라도 본질과는 동떨어져 있다.


‘브런치’를 시작하기까지도 긴 망설임이 있었다. 지금껏 밥벌이로 써온 글이 아닌 다른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선뜻 시작하기 어려웠다. 누가 본다고. 또 누가 본들 이게 논리적으로 맞는 얘기냐 너무 주관적인 거 아니냐를 따질 것도 아닌데...      


훈련이 필요하다. 편안하게 쓰고 싶은 얘기를 쓰는 훈련. 남의 기준을 의식하지 않고 자유롭게 내 마음대로 쓰는 훈련. 30년이라는 시간에 걸쳐 쌓인 습관을 하루아침에 바꿀 수는 없을 테니 새로운 방법에 익숙해지려면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면 내 나이 80인데...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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