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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주일장춘몽 May 09. 2022

50만원 벌고 100만원 쓰는 일

30년 가까운 시간을 방송작가로 살았다. 방송가에서 나이 먹은 작가는 계륵과도 같다. 그간 쌓아온 작가의 노하우를 취하자니 대접(?)할 일이 난감하고 젊은 작가만 찾자니 깊이가 아쉽다. 그래도 젊은 피디들은 또래의 젊은 작가를 선호한다. 나라도 그렇겠다.


물론 여전히 현역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선배님들도 있다. 그렇게 되기까지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노력해 온 결과다. 그분들의 열정과 능력이 그저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아쉽게도 나는 늘 양손에 떡을 쥐고 어느 것도 맛있게 배불리 먹지 못했다. 일에 집중하자니 가정과 아이가 걸렸고 일을 놓자니 내가 더 이상 나로 살 수 없을 것 같아서 겁났다. 주변에 결혼하지 않은 선배들이 능력껏 일 하며 멋지게 사는 모습을 보면서 결혼을 후회하기도 했다. 하지만 퇴근하는 엄마를 향해 달려오는 아이의 미소는 세상 그 무엇보다 달콤했다. 엉덩이를 떼고 달려 나가지도 주저앉지도 못한 채로 20년을 살았다.


이제는 정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야 할 때인 것 같다. 지난 몇 년 간도 그랬지만 코로나를  거치면서 방송 다큐멘터리 시장은 더없이 좁아졌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방송사에서 더 이상 다큐멘터리를 제작하지 않는다. 외주제작이라 할지라도 협찬을 가지고 들어가지 않으면 편성을 잡아주지도 않는다. 방송 다큐멘터리 제작 자체가 대폭 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곳으로 내려오면서 그나마 열려있던 기회의 문은 더 좁아졌다. 아니 거의 다 닫혔다고 보는 게 맞다. 내려오기를 망설였던 가장 큰 이유가 현실이 됐다.


최근 들었던 얘기 중에 머릿속에 종이 울리게 하는 얘기가 있었다. “50만원을 벌고 100만원을 쓸지라도 50만원을 벌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 어떻게 생각하면 참 철없고 배부른 소리일 수 있다. 50만원을 벌고 100만원을 쓰면 대체 어떻게 살 수 있다는 말이지? 은퇴 후 귀농을 생각하는 후배에게 이미 귀농해서 살고 있는 선배가 들려준 얘기란다. 농촌 생활을 그저 은퇴 후 여유로운 삶의 방편으로만 생각한다면 안 된다는 뜻일 것이다. 작더라도 성취감을 느낄 만한 것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긴장감 전혀 없이 여유롭기만 한 시간들은 사람을 무력하게 만든다. 비록 처음엔 조금 손해 보더라도 뭔가 긴장과 의무감을 가지고 할 일이 있어야 한다. 그게 건강한 생활을 유지하고 자존감을 잃지 않는 방법이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부터 무엇을 해야 할까? 그저 그렇게 시간만 보내기엔 남은 시간이 너무 길다. 지역에 왔으니 이 지역 특색에 맞는 일을 구상해야 하나? 그동안 단순하게 몸 쓰며 사는 삶을 동경했으니 그런 일을 찾아봐야 하나? 과연 그런 기회가 생긴다면 잘 해낼 수 있을까?


이 고민을 하다가 일 년이 갔다.

앉아서 잘 돌아가지도 않는 머리만 굴리지 말고 벌떡 일어나야하는데...

온 몸이 삐거덕 삐거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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