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30분씩이라도 매일 연습하자 생각했는데 집에서 연습하기가 쉽지 않다. 집에서 가장 중앙에 위치한 방으로 들어가 방문, 창문을 모두 닫아야 하고 그것도 모자라 울림통에 헝겊을 끼워서 최대한 소리를 줄여야 한다. 그래도 크다. 연습할 때마다 이웃집에 피해가 갈까 봐 신경이 쓰인다. 울림통에 무엇을 끼울까 이것저것 생각하다가 작은 곰 인형을 끼워봤다. 엉덩이부터 밀어 넣으니 상체만 남기고 다리까지 쏙 들어간다.
그래. 이제부터 네가 내 해금 친구다. 들어줄만하지 않은 소리를 계속 듣고 있어야 하니 너도 참 힘들겠다.
미안하다 친구야.
울림통에 쏙 들어간 곰인형
해금을 배우는데 큰 장애물이 하나 있다. 바로 악보다. 해금 악보는 우리가 아는 악보와 전혀 다르다. 정사각형 칸에 한자가 세로로 쓰여 있다. 이를 ‘정간보’(우물 정(井) 모양 안에 음의 높이를 나타내는 율명을 기보)라고 한다. 음의 이름도 다르다. '도레미파솔라시'도 아니고 어릴 때 학교 음악시간에 배운 ‘궁상각치우’도 아니다. ‘중임남무황태고’의 반복. 반음은 이름이 또 다르다. 음의 높낮이에 따라 한자도 다르다. 같은 ‘중’이어도 높은 중은 仲을 쓰고 낮은 중은 㑖을 쓴다.
해금 정간보
더 죽겠는 건, 정간보에 적힌 한자 음마다 활이 들어가고 나가는 순서가 함께 표시된다는 거다. 작아서 잘 보이지도 않는다. 음에 집중하면 활의 움직임이 틀려지고 활에 집중하다 보면 음이 다르고.. 거기에 바람 빠지는 소리와 긁는 소리는 기본 옵션이다.
그래도 재미있다. 비록 언제 듣고 안 들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한 동요를 더듬더듬 연주하는 수준이지만, 그마저도 남들이 들으면 도대체 무슨 노랜지 알아듣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재미있다. 손가락에 조금씩 굳은살이 생기는 것도 좋다. 초등학교 시절(그때는 국민학교) 체르니 40번까지 배우면서 거의 매번 피아노 학원에 가기 싫어서 애를 쓰던 생각이 난다. 그땐 왜 그랬을까? 뭐든 때가 있는 법인데 그때는 때가 아니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