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어릴 때 가끔씩 도시락 쌀 일이 있었다. 유치원에서 학교에서 소풍을 가거나 현장체험학습을 가는 날, 운동회를 하는 날이면 도시락을 쌌다. 아이 도시락 싸주는 일이 제법 재미있었다고 기억된다.
‘요즘 어린아이 키우는 엄마들은 참 힘들겠다.’
인터넷에 올라오는 어마 무시하게 화려하고 갖가지 캐릭터로 무장한 아이들 도시락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다. 무척 다행스럽게도 내가 아이 도시락을 쌀 때는 그렇게 화려한 도시락을 싸 보내는 엄마들이 없었다.(혹시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흔하지 않았다) 그저 깨끗하고 맛있게 만드는 것이 중요할 뿐이었다. 김밥, 주먹밥, 유부초밥 중에서 그때 그때 아이가 먹고 싶다는 것을 만들고 색깔 예쁜 과일 몇 가지를 친구들과 나눠 먹을 몫까지 담아주면서 ‘무거울까? 남으면 귀찮을 텐데...’ 잠깐 걱정도 했지만 한 번도 남겨 오는 일이 없었던 것 같다.
아이가 신나게 소풍을 가는 날이면 남편도 신나게 출근했다. 아이가 가지고 간 도시락과 똑같은 도시락을 남편에게도 싸주었기 때문이다. 아니.. 무거워서 아이가 가져가지 못한 것까지 남편 도시락에 넣었다. 나는 며칠을 두고 먹어 치워야 할 남은 음식을 대신 정리해주니 좋았고 남편은 모든 직장인들의 최대 고민이라는 점심 식사가 해결되니 좋았다. 어디 그뿐이랴. 동료들과 나눠 먹으면서 요즘 누가 남편 도시락을 싸 주냐는 둥, 음식 솜씨가 좋다는 둥 덩달아 점심을 해결하는 사람들의 입에 발린 말도 한편으로는 듣기 좋았을 것이다.
도시락을 지참해야 하는 유치원과 학교 행사를 아이만큼이나 기다리던 남편이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 되던 봄에 혼자 지방으로 내려갔다. 갑자기 임용되면서 고민할 새도 없이 가게 된 것이다. 아이의 도시락은 그 후로도 때가 되면 계속 만들었지만 남편에겐 한 번도 싸주지 못했다.
올봄부터 남편은 대학원 수업 때문에 토요일에도 출근한다. 토요일이라 학교 식당도 문을 열지 않고 빠듯한 시간 때문에 학생들과 대충 먹거나 집에 와서 늦은 점심을 해결할 때도 있다. 그래서 오랜만에 도시락을 싸주기로 큰!! 아주 큰 마음을 먹었다.
메뉴는 샌드위치와 샐러드다. 가장 만들기 쉽고 맛있고 든든한 감자 달걀 샌드위치와 베란다 실험실에서 수확한 싱싱한 샐러드. 거기에 방울토마토와 닭가슴살을 더했다. 견과류를 잘게 잘라 올리고 치즈까지 갈아 넣으니 제법 그럴듯해 보였다. 수업 듣는 학생들 몫까지 만들었다. 맛은 보장 못하지만 어쨌든 점심 한 끼는 고민 없이 해결되는 거니까.
베란다 실험실 표 무농약 샐러드
출근 준비하면서 남편이 진통제를 찾았다. 갈비뼈 근처가 뜨끔뜨끔 아프다면서. 약을 찾아 주며 또 한바탕 잔소리를 날렸다. 두통 치통 생리통도 아니고 이게 진통제로 해결 볼 일이냐고... 지난번에도 그 얘기 한 것 같은데 왜 아직도 병원에 안 가냐고...
남편은 도시락을 들고 다른 토요일과는 달리 가볍게 출근했다. 예전에는 아들을 위해서 싼 도시락을 남편이 얻어먹었다. 오늘은 처음부터 남편을 위해서 도시락을 쌌다. 아무리 선비 사주라지만 나이 들어가는 남편은 가끔씩 왠지 안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