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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유 May 01. 2024

죽음의 그림자는 깊은 잠이 아니었어!


죽음이란 단어가 가지는 무게감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있었지만, 복막염과 패혈증에 대한 걱정은 쉽사리 가시지 않았는데, 나보다는 가족들과 의사들에게서 그 걱정이 심했던 모양이다.

몸속을 휘젓고 다니던 독한 약성분 때문인지, 몸속에 들어간 영양분이 양에 차지 않아서 그랬던 것인지, 내 죽음과 관계된 일인데도 불구하고 정작 나는 남의 일인 양 걱정을 덜 했던 것 같기도 하다.


걸핏하면 약에 취해서 잤다고 하니 알 길이 없지만, 이따금씩 깨어있을 때면 뜬눈으로 밤을 새우는 아내와 가족들의 이야기.

이틀이 멀다 하고 왔다 갔다 하는 감염내과와 신경과 의사들의 모습에서 나에게 드리워진 짙은 죽음의 그림자를 볼 수 있었을 텐데 애써 외면했던 것인지 수가 없다.


더군다나 그렇게 정신이 없는 중에 웃음박사 황수관 박사님이 패혈증으로 사망했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그날 밤중에 얼마나 많은 눈이 내렸는지 모를 일이다.

새벽녘 희미한 병실 조명에 창 밖으로 투영되던 눈덩이들.

그 사이를 뚫고 지나다니는 승용차 불빛 속에서 요란스럽게 울리던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

그즈음 의사들의 출입이 더욱 잦은 듯도 했는데, 내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 그 때문인 듯도 하다.


이후에 약물의 강도가 두 차례 더 바뀌었다고 했고, 신경과에서 무엇 때문인지 검사를 받고서는 목의 경동맥에 젓가락 길이의 주사를 꽂았는데, 한참동안이나 바늘을 밀어넣는 광경에 그걸 보는 주변 사람들이 기겁을 했다.

오른쪽 눈가로 하얀 가운을 입은 수련의의 길다란 손가락이 몇 차례 왔다갔다 했을 뿐이지만.


여전히 주삿바늘로 하얀 죽 같은 영양분을 주입한 지도 꽤나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만큼 입을 통해 위로 음식물을 들인 것도 한참이나 오래전의 일이었는데, 여전히 구토는 힘들게 계속되었고, 인공항문인 소장루에는 금방 부풀어 오르는 가스 양과는 달리 적은 양의 오물이 배출되고 있었으며, 희한하게도 아무런 음식물도 내려가지 않는 아랫배에서 가끔씩 변의가 느껴지기도 했다.

물론, 화장실을 가도 아무런 볼 일도 볼 수가 없었지만.




해를 넘겼다!

고통도 계속되면 익숙해진다더니 정신없이 잘 때 외엔 습관적인 구토가 반복되던 어느 날부터는 그것도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다.

해를 넘겨 1월도 중순경이 되면서는 복막염과 패혈증이 잡혀 가는지 배꼽 옆에 달려있던 복수통에 흘러나오는 체액이 선홍색 핏빛으로 맑아지고 그 양도 일정하게 안정이 되어간다고 했다.


그동안에도 줄곧 난 몽롱한 정신으로 병상에 누워 있는 시간이 대부분이었지만, 쓰라린 장루주머니에도 잘 적응해 가며 간간이 휠체어를 타거나 조금씩 일어나 걷는 시간을 늘리기도 했고, 옛 제자들이 찾아왔을 때엔 제법 오랜 시간을 산책도 하며 성년이 된 제자들의 위로를 받기도 했다.


그즈음 온 세상을 하얀 눈 속에 파묻어 버릴 듯한 폭설이 내렸고, 그날 환우회에서 알게 된 대구의 서너 살 아래 동생이 제주도에서 요양 중 귀천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와 같은 직장암 3기중등학교 교사였고, 이제 곧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동갑내기 딸을 둔 것까지 꼭 닮은 친구였다.

수술 전 엇비슷한 시기에 병을 발견하고, 환우회에서 알게 되면서 우리는 병세와 함께 가정사, 특히 둘 다 딸바보라 서로의 딸아이 이야기를 자주 나눴었다.

그는 예쁜 딸이 책가방 둘러메고 초등학교 입학하는 것을 그렇게나 보고 싶어 했는데, 몸이 조금만 더 좋아지면 입학식 날에는 꼭 손 잡고 바래다주겠다더니 결국 그렇게 온 세상이 하얀 눈 속에 파 묻히던 날 먼저 떠나갔다.


난 그제야 진정 죽음을 생각하기 시작했던 듯하다.

잠에서 깨어 있는 시간 동안엔 아이들 생각만 했던 듯한데, 마음이 좋지 않았고, 그것이 스트레스가 되었는지 그 이후 며칠 동안 장유착에 의한 장폐색 증세로 고생을 했다.

의사는 장폐색이 심해지면 장천공 등으로 또 수술을 해야 할 수도 있고, 저혈성 쇼크로 사망할 수도 있으니 운동을 시키라며 가족들을 겁박했는데, 몸을 움직이는 것이 조금 나아지면서 병상에 누워있질 못하고 옆 병동까지 빠른 걸음으로 얼마나 걸어 다녔으며,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계단을 이용해서 얼마나 오르내렸는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런 운동은 크게 도움이 되질 않았고, 찜질팩을 이용해 보라는 장루간호사의 지나가는 듯한 언질에 황토찜질팩을 구입해서 차례 사용하고 나니 장유착증세가 호전되고 장폐색이 사라졌으니 참 고맙기도 하고, 우스꽝스럽기도 했다.


그렇게 장유착에 의한 장폐색 증상이 사라지고, 진즉에 호전되었던 복막염과 패혈증 확인 복수통도 제거했다.

이후에 몇 가지 검사를 하며 며칠 동안 경과를 살피더니 퇴원을 하게 되었는데, 직장암으로 인해 직장 전절제수술 차 입원한 지 4개월 만이었다. 그리고, 여전히 오른쪽 배꼽 옆에는 인공항문인 소장루는 부착한 채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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