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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유 May 05. 2024

 장루를 하고서 퇴원했다


집으로 돌아왔다.

독한 약물에 취해 온전한 내 정신이 아녔을 그날에도 그토록 보고 싶던 내 아이들과 내 사랑이 함께 하는 정겨운 나의 집으로 돌아왔다.

집을 떠나, 거제를 떠나 몸속에 갖고 있지 않아도 좋을 혹 하나 떼어내려 나섰던 그 집을 4개월 만에 돌아왔다.


거제는 변한 것이 없는 듯했다.

내가 집을 나설 때 연노랑 가을의 모양을 하고 있던 옥포 뒷동산이 민둥산의 외양에서 한겨울의 쌀쌀한 바닷바람이 처연한 것 말고는 변한 것이 없었다.

이따금씩 들리던 옆집 아이들의 재잘거림도 그대로였고, 아랫집 아저씨와 아주머니의 산책하는 모습도 여전했다.

밤엔 조선소의 드릴쉽과 리그선의 불빛이 안벽에서 여전히 한낮인 것처럼 화려함을 뽐냈다.


어쩌면 변한 것은 나뿐이었다.

오른쪽 배꼽 옆에 덩그러니 매달려 있는 장루 주머니가 몇 달간의 금식으로 제대로 먹은 것이 없으니 홀쭉해진 내 모습과 대조를 이루고 있었는데, 보기엔 더 좋았다나 어쨌다나.

퍽이나 좋아 보였겠다.


죽음을 경험한 사람은 사고의 폭이 넓어지고, 포용력과 없던 아량도 생긴단다.

그래, 나도 그랬던 듯하단다.

그런데, 잠시 생각해 보면 난 사고의 폭이 넓어져서가 아니고 귀찮았던 듯하다.

포용력과 없던 아량이라... 글쎄다 싶다.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병원에 있던 때처럼 몸관리를 하려고 했으니, 제일 큰 관심사는 먹는 거였다.

병원에선 입으로 먹은 것이 아니라 주사로 영양분을 넣었는데, 이젠 주삿바늘을 빼냈으니 입으로 먹어야 한다.

처음엔, 음식물을 입에 넣고 씹는 일이 제법 어색하게 느껴졌는데, 너무 오랜만에 입으로 음식물을 씹었기 때문이다.

과하진 않게 좋았던 음식을 씹는다는 느낌, 이것이 음식을 먹는다는 그것인데, 지난 몇 개월은 그것을 잃고 지냈다.


음식을 즐겁게 먹을 수 있는 것도 복이라고 했는데, 그것을 제대로 누리지 못했으니 하지만, 정작 음식을 먹는다는 그것에 대한 걱정은 장루복원수술 이후에 더욱 본격적으로 고민을 하게 되었다.




대장암이 대개 그렇지만, 특히나 직장암은 변과 관련해서 많은 문제가 예후로 남게 된다.

변을 배출하기 전 최후의 장기에 문제가 생겼으니 그럴 수밖에 없지만, 그 고통과 모멸감이란?

다행스럽게도 이때는 장루를 하고 있어서 장루 주머니만 잘 관리한다면 특별히 문제가 발생할 일은 없었다.


다만, 아직까지도 납득이 잘 안 되는 것이 胃다.

지난 몇 개월간 아무리 음식을 안 먹었더라도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것인지, 단 몇 개월 위의 소화기능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마치 어린아이의 그것처럼 될 수 있다니.

방금 먹은 것이 전혀 소화작용을 거치지 않고 , 먹은 그대로 배출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을 장루를 통해서 전부 보고 있었으니.

이따금씩 장루 주머니의 오물을 비우고 나면 장루가 감싸고 있던 절단된 소장면을 씻어주거나, 닦아주기도 했는데, 왜 그렇게도 살가죽이 끔거렸을까.


장루복원수술받기 전의 숙제이기도 했던 음식물 섭취의 문제는 소식으로 결론지었다.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물의 양이 적으면 배출되는 것도 당연히 적을 것이므로.

ㅡ 시간이 지나고 일을 시작하면서 양이 조금 늘었다.

대신에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뜨거울 정도의 따뜻한 물을 자주 마시기로 했다.

매일 2리터 이상의 따뜻한 물을 마시기로 했다.

지금도 2리터 온수통을 들고 다니며 수시로 마신다.

그리고, 항상 몸을 따뜻하게 유지하기로 했다.

몸을 차갑게 하며 생활했다고 무지무지 혼났다.


그렇게 장루를 매단 채로 두 달가량의 시간을 보냈는데, 가벼운 산책을 다니기에도 왠지 불편하고,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타인의 시선이 신경 쓰이기도 했다.

그제야, 장루를 한 채로 나와 가족들의 생계가 달린 일을 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임을 알았다.

그래도 하는 수 없이 영구장루를 해야 한다면 , 또, 거기에 맞춰서 살아가기야 하겠지.




다음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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