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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유 Apr 28. 2024

직장 전절제수술을 받았다


직장을 몽땅 잘라내었다!

수술실에서 나와 회복실에 얼마나 있었는지 난 알 길이 없다. 몇 시간이 지나고 경과가 좋아졌으니 일반병실로 옮겼겠지. 

일반병실로 옮긴 후에 또 몇 시간이나 흘렀는지 내가 기억하는 건 희미한 의식의 끈을 붙잡고 마취에서 깨어난 이후이다.

멍하니 눈을 떴을 때 곁에는 언제부터 내 얼굴을 내려다보고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사랑하는 아내와 어머니의 모습이 눈에 들었다.

병상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장인어른께서 서성이고 계셨다.

하지만, 이 모든 내 기억도 깨어나고 한참 후에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가공된 듯도 한데, 맞은편 병상에 내 또래의 중환자였던 그가 있었던 것은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뒤에 알아챘으니 내 기억이겠다.


눈을 뜨자마자 주제도 몰랐던 난 몸을 일으키려고 했는데, 내 몸은 나와는 생각이 달랐는지 전혀 움직여 주질 않았으니 괜히 고개만 들었다 놨다를 몇 차례.

그렇게 달그락거리니 눈짓을 하며 날 봐주었던 그가 병상을 올려주라 말했고, 그의 어머니가 레버를 돌려 침대상체를 세웠는데 끊어질 듯 통증이 밀려왔다.


그래도 상체를 세우니 통증과는 별개로 내 몸을 살펴볼 여유가 있었고, 몇 개의 호스가 배꼽 주변을 동여맨 붕대에 가려져 덮여 있었다.

배꼽 왼쪽에는 검붉은 핏물과 함께 배속에서 흘러나온 액이 담긴 작은 통이 매달려 있었고, 오른쪽에는 혹시나 수술 중에 달 수도 있다는 인공항문은 다행스럽게도 보이지 않았다.

주치의가 내 부탁을 들어준 것인지, 선배들과 후배의사들의 협박 같은 부탁을 들어준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수술은 잘 되었다고 했다.


나중에 아내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수술 도중에 부르더란다. 수술이 잘 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는데, 아내와 어머니는 수술이 잘못된 줄 알고 덜컥 겁부터 났었다는데, 그도 그럴 것이 이런 수술장에서 모니터링도 처음이었으니.




과부사정은 홀아비가 안다!

암튼, 그렇게 눈을 돌려 이리저리 살펴보니 고개도 조금씩 움직여지고 몸의 다른 부분들에도 사라졌던 힘이 돌아오는 듯했다.

맞은 편의 그와 그의 어머니와 인사를 나눴는데, 거제 삼성중공업 사외협력업체 샵장에서 취부일을 했다고 한다.


그날도 그렇게 작업을 하다가 기계조작을 잘못했는지 철판에 깔려 갈빗대가 부러지고 장기를 찌를 지경에 이르면서 생명이 위급했다고 한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그는 다른 특별한 문제는 없었고, 부러진 갈비뼈 수술도 잘 되었다고 했으니 지금쯤이면 그가 나보다 더욱 건강한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막 깨어났을 때도 그는 상체에 두텁게 붕대를 감고 있긴 했지만, 그 모양새에 비해서는 움직임이 좋아 보이기도 했던 듯하다.


둘 다 말이 많지는 않았지만, 그날부터 과부사정은 홀아비가 알아준다고 그와 나는 서로를 조금씩 챙겨가며 알아갔다.

동병상련의 아픔이라고 그의 어머니와 내 아내도, 이따금씩은 어머니까지 함께 하며 우리 둘의 흉을 보기도 했다.


비슷한 나이 또래였던 그는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으며 홀어머니와 함께 하동 고향집에 살다가 거제로 왔다고 했다.

거제의 조선소는 내가 일했던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 두 개가 있고, 두 조선소는 각각 사내 협력업체, 사외 협력업체와 함께 배를 짓는 시스템이었다.

그리고, 협력업체들은 일정한 물량의 생산을 담당하는 물량팀이라는 인력을 따로 운용하기도 했다.

아마도 그 물량팀 일원으로 생산물량을 수주받은 사외 협력업체에서 일을 하였던 듯했다.


따로 어디가 아파서라기보다는 암조직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은 것이었고, 약물 몇가지를 투여하고 있었지만, 수술 이후 얼마간은 몸이 회복되는 속도가 더욱 빨랐다.

회복되면서 움직이는 것도 그보다는 수월했기에 병동 전체도 모자라서 옆 병동까지 주삿바늘을 꽂은 채로 운동이라는 이름으로 순찰을 돌기 시작했다.


시장엔 장을 보러 나온 사람들로 붐비고, 운동장엔 경기를 보러 온 사람들로, 학교엔 학생들로 붐비듯이 사람이 있을만한 곳 어디나 사람들인 것은 마찬가지인데, 병원엔 어떻게나 그렇게 많은 아픈 사람들이 누워있는 것인지.

소아청소년과엔 아이들로, 신경과엔 나이 지긋한 할배ㆍ할매들로 간간이 울리는 응급신호까지 정신을 빼 놓기도 했다.




문합부위가 터졌다!

그러던 어느 날 언제였는지 정확하지 않은 기억속의 날에 배꼽 왼쪽의 수액통의 색깔이 붉은 빛이 아닌 짙은 녹빛으로 바뀌어 있었다. 

점차 색깔이 안정되어 간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은 것이 불과 며칠전인데, 분주하게 움직이며 왔다갔다 했던 의사들이 기억나고 그 옆에서 잔뜩 굳어있던 아내와 장인어른 표정이 기억속에 있다.


죽음의 공포가 직접적으로 엄습해 온다는 것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종양제거수술 하러 들어갈 때와는 확연히 다른 무거운 분위기가 내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다.

직장 전절제 수술을 받은 지 2주가 지나던 어느 날이었다. 수술 문합부위가 제대로 아물어 연결되지 못하고 터진 것이다. 드물지 않게 이따금씩 일어나는 일이라고 했다.


수술 문합부위가 잘 아물어 아무런 문제가 없는 환자수만큼이나 문제가 생긴다고 했다.

하는 수 없이 또 수술대 위에 누워서 정신 없이 몇 시간을 보냈더니, 문합부위를 다시 꿰맸다고 하고 소장을 잘라서 인공항문인 소장루를 달았다.

기어코 장루를 한 것인데,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아무 것도 없이 주사로 하얀 영양분만을 밀어 넣는다면 구태여 달아야 했을까 싶었다.


문합부위가 터지면서 복막에 누출된 오물을 씻어내고 복막염과 패혈증 때문에 독한 약물을 사용했는데, 첫 수술 이후부터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주삿바늘로 영양분을 공급했는데도 심한 구토에 힘들었다.

그리고 그 약물 때문인지 중간중간 기억이 온전치가 않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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