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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유 Apr 24. 2024

직장암 3기라니!


이틀  아내와 함께 집을 나서는데, 먹은 것도 없는 데다가 밤새 내시경 약을 물에 타서 마시고 속을 비웠더니 온몸에 힘이라곤 없었다.

잠 한숨 못 잔 내가 안쓰러워 보였는지 장난질이라곤 모르는 사람이 장난을 다 치고, 어쩌면 나보다 맘이 안 좋았던 것은 그 사람이었을텐데.


병원에선 내시경을 하고 잠시 쉬었다가 몽롱한 정신이긴 했지만, 의식이 돌아오자 조직검사 결과가 나와보면 확인이 되겠지만, 직장암이 분명하다고 했다.

그동안의 임상경험으로 2기 이상이라고만 말을 했는데, 조직검사 결과에 따라 병기가 깊을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중에 진료검사서와 소견서를 써주겠다며 몇몇 병원의 유명의사들 이름을 나열했고, 어느 의사랑 무슨 관계이고 하며 말을 이어 갔는데, 그 이후의 말은 제대로 들리지가 않았다.


나와 아내는 그래 그럴 줄 알았어... 하는 마음이었을까.

둘 다 아무런 말이 없었다.

진료실 문고리를 밀어 나오는데, 내 머릿속엔 온통 아이들 얼굴만이 가득했고, 그제야 눈이 젖어들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암진단을 받고 왜 우는가 했더니 비로소 그 기분을 알 수가 있었다.

진료실을 나와 얼마나 앉아 있었고, 아내와 무슨 말을 했었는지 그 또한 기억이 없다.




의사인 고교후배를 통해서 선후배 의사들에게 이미 소문이 나 있었던 터라 병원과 수술 잘하는 젊은 의사까지 알아봐 놨었고, 수술만 받으면 되는 듯했다.


조직검사 결과가 나오는 날에 검사결과지와 소견서 그리고, 몇 가지 서류를 들고 선후배들이 추천한 병원을 찾았다.

그날 당장에 입원을 했고, 주치의로 수술을 시행할 의사와도 짧지 않은 시간 문진을 하며 얼굴을 익혔다.


나보다 두 살이 많았던 대장항문외과 교수가 주치의였는데, 여태껏 수술을 했던 환자들 중에서 가장 부담스러운 환자란다.

도대체 뭐 하는 분이길래 그렇게 많은 선후배 의사들이 반협박을 하는지 궁금했다며 장난기 섞인 농담을 했다.


입원을 한 후 며칠 동안 무슨 검사가 그렇게나 많은지 검사 받으러 다니다가 진이 다 빠질 정도로 갖가지 검사를 했다. 입원 전 거제에서 며칠전에 했던 내시경 검사를 또 했는데, 정말이지 내시경 약물 그건 마실 것이 못돼더라.

그런데도 나중에 또 한 번 더 마셔야 했는데, 그땐 정말이지 배선실에서 몇 번이고 버릴 뻔 했다.




며칠 뒤에 조직검사 결과 3기 a로 분류가 된다고 했다.

암세포가 항문에서 불과 4-5센티가량 떨어진 부위까지 퍼져 있는데, 크기도 그렇지만 너무 가까이 붙어 있다고도 다.


확언은 할 수 없으나, 항문괄약근 등 항문에도 암세포의 침윤이 있을 수도 있다며, 소장을 이용해서 인공항문인 장루를 만들어 달아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래서 몇 차례의 방사선요법 후 암세포를 조금 작게 만든 후에 수술을 하는 방법도 있다고 하며 권했던 듯 하다.


언뜻 떠오르는 몇 명의 의사지인들 중 며칠전에 다녀갔던 선배와 두 명의 선배에게 내 상태를 설명하고, 이렇다는데 어떡했으면 좋겠냐고 조언을 구했으나, 그 결정은 온전히 내 몫이었다.


방사선요법의 장단점에 대해서도 충분히 설명을 듣고, 심각하게 고려했지만, 방사선요법 없이 수술을 하기로 결정했다.

인공항문인 장루는 수술경과를 보고 또 어찌해야 할지 결정해도 되는 것이니 달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인공항문인 장루를 달고도 정상적 생활을 꾸려 나가시는 분들이 계시지만, 40대 초반의 한창 경제활동을 해야 하는 나이인데, 아무래도 부담스러운 심정이었다.


주치의도 이런 내 심정을 각별히 신경을 써주는 듯도 했다.

수술 전 주치의와의 진료상담 시간엔 병과는 관계없는 사적인 대화도 제법 주고받은 듯한데, 그것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수술 직전일엔 아이들이 어머니 손을 잡고 병실로 왔었다.

섯 살 꼬맹이는 환자복에 콧줄과 주삿바늘 몇 개를 꽂고 병상에 앉아있던 아빠가 낯설었는지 뚱해했다.

유난히 영특했던 딸아이는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두 살 터울의 제법 누나 티가 나기도 했었는데, 가만 생각해 보면 그때 이미 뭔가를 알아채고 있었음에 분명하다.

아이들에게는 그때 함께 하지 못했던 5개월의 시간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해 보면 미안한 마음밖에 남은 것이 없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일찍 차디찬 수술대에 실려 갔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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