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무슨 미련을 남겨뒀길래 종일토록 허둥대는 모양으로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녔던 것일까? 어차피 우리가 함께 했던 시간이란 너와 나에게 그저 생의 한 자락이었다고 말해도 괜찮을 짧은 기억일 뿐인 것을. 못내 아쉬움이거나 미련뿐이라 해도 그것이 전부인 것을.
좋았던 기억과 싫었던 기억, 그 모든 기억이 우리가 함께 한 시간이라는 이유로 훗날에 생의 끝자락에서 돌이켜 볼만한 추억이 되는 걸까? 어쩌면 그런 추억이 될지도 모를 기억 속에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 너에게, 그리고 나에게 우리는 서로에게 소중한 존재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시간을 거슬러 가보면, 젖 먹던 힘까지는 아니겠지만 겨우 용을 쓰며 내딛는 한 걸음에, '내장을 칼로 후비는 아픔이 이런 것일 거야' 하며 몇 발자국 나서지도 못하던 그때. 갓난아이처럼 겨우 고개만 옆으로 돌리며 멍한 눈으로 병상에 누워 지내던 시간이 많았던 그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함께 했던 시간은 좋았던 기억과 싫었던 기억까지도 그 작은 공간에 담고 있었지만, 내 것인 양 여겼던 것들이 기꺼이 네 것이 될 수도 있었던 시간에 대한 나의 빈약한 기억은 온전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시간만은 온전하게 기억 속에 남아서 후회와 미련을 만들고 있으니 이것을 나는 또 어찌해야 하는 것일까. 한 사람의 삶이란 결국에는 기억 속에 남아있는 그것이 전부인 것을.
눈이 많이 내렸던 날이었다. 사각의 병원 창틀이 하얀 커튼 때문인지 내린 눈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조금 전까지 이승의 경계에서 이제 막 돌아오기라도 한 것처럼 창백했던 그날. 아직까지도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그 짙은 장면 속에는 나의 기억이 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기억 속을 다시 헤집어 봐도 내가 어디쯤에 있는지 찾을 수가 없다.
하얀 눈이 끈적한 눈물처럼 쏟아져 내리던 그날. 두 뺨을 흘러내리는 투명한 기억을 헤집으며 나를 찾아왔다던 너는, 우리의 관계는 너와 내가 함께 했던 그토록 많은 시간의 양과 비례하여 부질없음을, 그리고 헛헛함을 말했다.
그날 너는 나에게 사람의 삶이란 덧대어져 쌓여가는 창밖의 흰 눈처럼 발길에 차이는 흔하디 흔한 것임을 말했다. 우연히 너의 어깨너머로 시간이 스쳐가는 사람의 삶도 흔하지 않은 것임을 아는 나는 이제야 너의 말을 이해하려고 한다. 너무 늦은 것 아니냐는 말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쩌면 그 말은 서로의 관계를,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서로의 관계를 되돌리고 싶은 마음의 앙금이 남은 그들에게만 의미가 있을 테니까.
그날 너와 나는 우리들의 부질없는 관계를, 함께 했던 그토록 오랜 시간을 헛헛하게 보내 버리고 말았으니, 함께 만든 기억 속의 장면들이 어느 날엔가 한 번에 지워져도 알아채기나 할는지.
바람이 돌아나가는 차가운 계절을 지나 살며시 햇살이 내려앉는다. 나는 바쁠 것 없는 계절에 맞춰서 느긋하게 지나온 시간들을 들여다보고 있다. 거기에는 아쉬움과 미련이라는 낡은 감정의 잔상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 같지만, 언제나 온전한 것은 상처와 별개로 따로 떨어져 존재하는 것이다. 그것들을 나는 애써 부정하는 것뿐이다. 그리고, 그런 나의 생각과 사실이 가슴속 한구석에서는 후회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