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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한다는 것의 헛된 정의(定義)

by 몽유

풍찬노숙(風餐露宿)에 얼음을 갈아 만든 송곳 같은 바람이 폐부(肺腑)를 찔러대던 날들은 어떻게 지난 것인지. 남쪽 바다 어느 곳에서는 춘당매가 분홍 꽃자루 속에서 만첩백매(萬疊白梅)의 꽃술을 연지 이미 오래인데, 순백의 서화(瑞花)는 마치 계절을 잊은 듯이 이제야 그 투명한 꽃잎을 하늘거린다. 비록 끝내 어지러이 맴도는 기억을 지우고는 헛된 흔적도 남김없이 가져갔지만, 그 무슨 보람을 얻고자 한겨울 엄동설한을 그렇게 보내었던 것은 아니었으니. 그저 남겨진 자의 채무를 흉내 낸 죄의식을 덜고 나를 대신해 미래를 살아갈 이들에 대한 최소한의 염려가 전부였을 뿐이다.


사전적 의미에서 용서(容恕)란..."지은 죄나 잘못한 일에 대하여 꾸짖거나 벌하지 아니하고 덮어 주는 행위"라고 한다. 범한 자가 아닌, 범해진 자가 그의 자유재량으로 할 수 있는 행위. 범해진 자이기 때문에 가지게 된 상처를 스스로 치유하는 행위. 이제는 종종 그 의미가 전도되어 범한 자가 기꺼이 요구해도 어딘가 이상할 것이 없어 보이는 행위.

나는 그런 의미에서 용서를 '미운 아이 떡 하나 더 준다'는 마음으로 선심 쓰듯 그렇게 먼저 손을 내밀 수 있을까. 범한 자를 용서한다는 것은 그를 위해서가 아니라, 날 위해서 해야 하는 것이라며 나더러 먼저 손을 내미라고 한다. 그를 미워하고 원망하는 동안에 스스로 자신의 영혼을 괴롭히고, 갉아먹을 것이 아니라 치유할 수 있어야 한다며.


그러나, 과연 그렇게 범한 자를 용서해야 하는 것일까. 그렇게 용서함으로써 범해진 자의 상처와 미움과 원망이 그의 영혼을 괴롭히고 갉아먹는 순환을 멈추게 하고 진정으로 치유에 이르게 할 수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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