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침묵하겠다

by 몽유

물안개는

일주(一周)하는

비가 아니라

목적지를 잃은

지난밤의 잔해다


눅진한 공기 속에

숨소리는 거칠어지고

풀잎은 침묵에 짓눌려

질식이라도 하듯

얼굴을 묻는다


햇빛은 아직 길을 못 찾고

어둠은 완전히 물러나지 않았다

새벽은 끝이 아니라

어제의 그림자가

지우지 못한 흔적처럼

들판을 더듬는다


온몸에 상처 입은

멧새 한 마리 날아들어

제 부리를 쪼고

그 울음마저 금세

안갯속에 젖어들더니

결국, 잠겨 버렸다


침묵은

사라진 끝이 아니라

끝이 무너진 자리에 피는

무형의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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