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서연의 서랍
서연은 요즘, 자주 서랍을 연다.
무언가를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언가를 더 이상 피하지 않기 위해.
그 서랍은 방 안에서 가장 조용한 장소였다.
말이 자라지 않고
침묵만 오래 눌러앉는 곳.
서랍을 열면
가장 위에는 낡은 엽서가 있다.
진우와 함께 다녀온 어느 바닷가에서
서연이 혼자 골랐던 그림엽서.
뒤에는
'잘 지내, 그 말이 그때는 참 쉬웠지.'
라는 문장이 적혀 있다.
보내지 않은 엽서.
사실은 자신에게 보낸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엽서 아래엔
노랗게 바랜 티켓 두 장.
영화는 생각나지 않는다.
다만 그날 진우가
팝콘을 쏟고 머쓱하게 웃던 얼굴은
아직도 생생했다.
기억은 그렇게,
사소한 풍경에 더 오래 깃드는 법이었다.
그리고
서랍 가장 아래,
접어둔 편지지가 있다.
쓰다 만 편지,
아직 봉하지 않은 말들.
진우야,
우리가 헤어진 날은 이상하리만큼 맑았어.
그래서 더 슬펐는지도 몰라.
비라도 왔으면
세상이 우리 대신 울어줬을 텐데.
그 문장에서 펜이 멈춰 있다.
이제는 다시 쓰지 않는다.
하지만 서연은 그 편지를 버리지 않는다.
버리는 순간,
그 감정조차 허락받지 못할 것 같아서.
서랍을 닫으며
그녀는 천천히 숨을 들이쉰다.
마치 아직도
그 안에 남은 말들을
천천히 들여다보는 것처럼.
서랍은 닫히지만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건 그녀가 선택한 방식이다.
사랑을 끝내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고,
때로는 공간이 필요하며,
어쩌면 단 하나의 서랍이
그 모든 시간을 품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밤이 오고
서연은 다시 등을 돌려 누운 채
천장 쪽을 바라본다.
이젠 등 너머에 진우가 없다는 걸
익숙하게 받아들이지만,
문득,
누군가의 온기 대신
자신의 숨결이 돌아오는 이 정적이
가장 서글프게 느껴진다.
서랍 안의 것들은
그녀를 붙잡지도, 놓아주지도 않는다.
그저,
그 자리에 그대로
다만 시간이 천천히 앉아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