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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편지

보내지 않은 편지

6. 진우의 편지함

by 몽유

진우는 요즘, 휴대폰을 잘 들여다보지 않는다.

연락할 사람도 줄었고,

답장을 기다릴 누군가도 없다.

하지만 어느 날은

문득, 그 앱을 열게 된다.


메일함.

보낸 편지는 하나도 없고,

‘임시 저장’ 폴더만 점점 늘어난다.

그곳엔 서연의 이름으로 시작되는

수많은 초안들이 눌려 있다.


[보내지 않은 편지 초안 / 11월 3일]

서연아, 오늘은 네가 좋아하던 카페에 갔어.

무심코 창가 쪽 자리에 앉았는데,

예전엔 늘 네가 먼저 창을 보며 웃었지.

나는 그 웃음을 뒤따라 웃었고.


[보내지 않은 편지 초안 / 12월 24일]

메리 크리스마스.

그 말이 이젠 조금 비어 있어.

내가 가장 너에게 말하고 싶었던 계절이

이젠 나한테만 돌아와.


그는 그 편지들을 한 번도 완성한 적 없다.

어떤 문장은 끝이 흐려지고

어떤 문장은 시작이 불안정하다.

모두 다, 전송 버튼 앞에서 망설인 말들.


진우는 가끔 문자를 다시 읽는다.

이제는 ‘서연’이라는 이름이

더 이상 새 알림 창에 뜨지 않지만,

과거 메시지들은

삭제되지 않은 채

조용히 그를 응시하고 있다.


"오늘, 너 조용했지?"

"괜찮아. 그냥 피곤했어."

"다음에 이야기하자."


그 ‘다음’은

결국 오지 않았다.

문장은 그렇게

절벽 끝에서 멈춘 채,

그들을 이별로 이끌었다.


편지함엔 그런 말들이 많다.

하지 못한 사과,

전하지 못한 그리움,

뒤늦은 이해.


진우는 편지를 다시 열었다.

지금이라면

무언가를 보낼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곧,

그는 화면을 꺼버렸다.

자신의 말이

서연의 시간에 더는 닿지 않는다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밤이 깊어지고,

진우는 불 꺼진 방 안에서

휴대폰을 가만히 내려놓았다.

그 안에는 아직도

그가 건너지 못한 말들이

어두운 강처럼 흐르고 있었다.


진우는 눈을 감았다.

편지를 보내는 대신,

마음속에서 조용히

그 이름을 한 번 불러보았다.

속삭이듯,

마지막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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