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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편지

보내지 않은 편지

7. 너 없는 계절들

by 몽유

봄, 네가 떠난 뒤 첫 계절


꽃은 피는데 나는 지지 않았다.

그게 이상했다.

서연은 처음으로

봄이라는 것이 덜컥 무섭다고 생각했다.

다들 다시 시작하는 계절이었지만

자신에게는

무언가가 되돌아오지 않는 계절이었다.


카페에 앉아 있으면

진우가 앉았던 자리를 눈으로만 더듬곤 했다.

그 자리에 아무도 앉지 않아 안도하면서도

누군가 앉으면

그 낯선 실루엣에 마음이 저릿했다.


그 해 봄,

서연은 새로운 향수를 샀다.

진우가 알지 못했던 냄새로

자신을 감싸기 위해서.



ㅡㅡㅡ


여름, 네가 없다는 사실이 피부에 닿을 때.


진우는 여름이 원래 이렇게 무거웠는지 몰랐다.

습기보다 더 끈적한 기억이

팔뚝과 등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는 여름밤마다 창문을 열었지만

그 어디에도 서연의 기척은 없었다.


진우는 혼잣말을 배웠다.

대답 없는 질문을 내뱉고

자신이 그 대답을 대신하며 하루를 넘겼다.


누군가에게는 이 계절이 바다였겠지만

진우에게는 정지된 시간이었다.

에어컨 바람,

텅 빈 그릇,

씻지 않은 컵.

모든 게 말없이 진우를 보고 있었다.



ㅡㅡㅡ


가을, 문득 너를 닮은 사람을 보았다


그날, 서연은 퇴근길에

진우의 뒷모습을 닮은 사람을 보았다.

걸음걸이, 옷의 주름,

어깨너머의 고요한 분위기까지.


숨이 멎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 남자가 고개를 돌리는 순간

서연은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그건 진우가 아니었고

진우일 수도 없었다.


낙엽이 무수히 떨어지던 가을,

서연은 혼자 영화관에 갔다.

자막 위로 눈물이 흘렀다.

스크린 때문이 아니라

문득 그 자리에

진우가 있었던 기억이 겹쳐졌기 때문이었다.



ㅡㅡㅡ


겨울,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 계절


진우는 첫눈을 보지 못했다.

아니, 보지 않으려 했다.

그 계절이

너무 조용해서,

기억은 더 쉽게 눈처럼 내려앉았다.


12월이 되면

모두가 누군가를 기다린다고 말했지만

진우는 이제

기다리는 게 아니라

견디는 쪽이 더 익숙해졌다.


그는 가끔 서랍을 연다.

그 안엔

보내지 못한 편지 한 장과

버리지 못한 사진 한 장이 들어 있다.


그것들을 꺼내 보지 않는다.

그저

거기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어느 한 귀퉁이에서

자신이 여전히 누군가를 기억하고 있다는 것,

그 사실 하나로

진우는 겨울을 조용히 견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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