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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세 번째 계절

by 몽유

비가 내리지 않는 봄날이었다.

꽃들은 바람에 깨어나기도 전에

먼지 속에서 피었다.

서연은 그런 봄이 낯설었다.

그래서인지,

카페 안에서 진우를 다시 보게 되었을 때,

그 순간마저 마치

계절이 빚은 착시처럼 느껴졌다.


진우는 예전보다 말랐고,

눈빛은 다소 느려져 있었다.

서연은 그 눈을 마주 보다가

문득 자신도 조금 흐려졌다는 걸 깨달았다.


"잘 지냈어?"


말을 건 건 서연이었다.

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럭저럭. 너는?"

"나도. 그냥 그렇게..."


그렇게, 서로의 안부를 묻는데

계절 하나쯤 걸렸다.

둘 다 뜨거운 음료를 시켰다.

하지만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다.


카페 유리창 너머,

목련이 떨어지고 있었다.

하얗게 진 꽃잎이 바닥에 닿을 때

서로의 시선이 다시 겹쳤다.

말은 없었지만,

그 고요는 단지 어색함만은 아니었다.


진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

"가끔 너 생각났어. 이상하게,

네가 웃는 장면만 계속 떠올라서

좀, 이상했어."


서연은 창밖을 향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나도 네 꿈을 꾸었어.

근데 넌 아무 말도 안 했어.

입술만 움직였고...

그래서 더 슬펐어."


한참, 둘 사이엔 그 꿈의 침묵이 흘렀다.

그러다 서연이 웃었다.

작은, 지친 웃음.


"그땐 말이 너무 많았거나,

너무 없었거나...

어떤 말은 너무 늦었고,

어떤 말은 아예 태어나지 못했지."


진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손에 쥔 컵을 가만히 돌렸다.


그들은 그날 아무 약속도 하지 않았다.

다음에 만나자고 말하지 않았고,

서로를 더 알겠다거나,

과거를 다시 묻지도 않았다.


다만, 그 오후의 공기와

식지 않은 커피 사이에

둘은 같은 기억을 공유하고 있었다.


카페를 나서던 순간,

진우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그날, 너 울었니?"


서연은 걸음을 멈추지 않고 대답했다.

"응. 근데,

그보다 더 울고 싶었던 건

그날 이후였어."


진우는 멈춰 서서

그 뒷모습을 오래 바라보았다.


봄의 끝자락.

그들은 다시 만났고,

다시 떠났다.

다만 이번엔,

조금 더 가벼운 마음으로.


세 번째 계절이 그들을 스쳐 갔다.

다음 계절이 오기 전까지,

그들은 자신을 돌아보는 방법을

조금씩 배우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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