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진우의 밤
서연아,
나는 아직도 밤이 무서워.
너 없는 밤이 아니라,
내가 혼자인 걸 확실히 아는 이 시간들이.
오늘은 꿈에서 네가 웃고 있었어.
익숙한 풍경이었는데,
어딘지 낯설었고,
너는 분명히 내 앞에 있었는데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어.
입술이 움직이는데
그 소리가 물속으로 꺼지는 것처럼.
눈을 떠보니 새벽 네 시였고
방 안은 말라 있었어.
어둠마저 메마른 날엔
기억이 더 선명하게 꿈을 닮곤 해.
혹은 꿈이 기억을 흉내 내는 걸까.
너와 마지막으로 걸었던 그 거리,
나는 아직도 그 길을
매주 한 번씩 지나가.
무의식적인 발걸음인지,
일부러 그렇게라도
너와 같은 시간을 반복하는 건지
이제는 나도 모르겠어.
그날, 너는 아무도 없는 골목에서
천천히 내게 이별을 말했지.
나는 울지도 않았고
붙잡지도 않았어.
그건 용기가 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 준비한
예정된 순응이었을 뿐이야.
서연아,
우리의 관계를 되감아 보면
몇 개의 장면만 또렷해.
처음 손을 잡았던 날.
처음 싸우고 돌아섰던 밤.
그리고, 네가 커튼 사이로 비치는 햇빛을 가르며
'괜찮을까, 우리가'라고 말하던 얼굴.
그 모든 순간이
지금의 나를 지탱해.
기억은 잊는 게 아니라
안고 살아가는 것 같아.
가끔 그 무게가 너무 무겁지만,
그 무게 없이 내가 나인 것처럼 살 수 있을까?
서랍 안에,
너와 함께 읽던 책 한 권이 있어.
그 책갈피엔 네 손글씨로
이런 문장이 적혀 있었지.
"이별은 무너짐이 아니라, 조용한 기울어짐."
그때는 몰랐어.
우리가 이미 기울고 있었던 것을.
서연아,
이 편지는 너에게 닿지 않을 거야.
나는 단지, 이 밤이 나를 삼키기 전에
조금의 언어를 던져보는 거야.
혹시, 너도 이 밤 어딘가에서
나를 잠깐이라도 떠올리고 있다면,
그걸로 충분해.